“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목요일에 봅시다. 아, 시위 가는 학생들은 다음 주에 보고요.”

유럽에서의 컬쳐 쇼크를 말하자면 손에 다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지만, 그 중 제일은 어느 목요일, 학생들이 아무도 오지 않았던 정치학 강의실이었다. 교수님이 지난 수업에서 이 말씀을 하실 때까지만 해도 ‘무슨 시위지?’ 하는 의문만 잠시 들었을 뿐 별 생각이 없었다. 물론, 교수님이 시위하는 학생들까지 챙겨서 부러 다음 주에 보자는 인사를 남기시는 것도 의아했지만 정치학 과목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근데 목요일에 강의실을 갔더니 정말 사람이 없었다. 문 앞에는 나 같은 교환학생들만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성이고 있었다. 잠시 후 교수님이 오시더니 여섯 명 뿐이니 진도를 나가는 대신 작은 강의실에 가서 토론 수업을 하자고 하셨다. “시위를 가기 위해 학생들이 수업을 안 온다” 한국에선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의도적으로 수업을 거부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일반 시위를 참석하기 위해 학교 수업을 빠진다니. 도대체 내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시위를 가는 건 좋지만 수업을 빠지면서까지 가야하나, 싶었다.

알고 보니 학제 개편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리는 거였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정부가 등록금을 더 많이 내야하는 구조로 학제를 개편하려 한다고 했다. 그래봤자 스페인의 등록금 수준은 우리나라의 1/4 수준이긴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수업 중 단과대 건물을 지나는 시위 행렬의 소리가 들려왔다. 정부는 교육 복지에 더 신경을 써라, 등록금을 더 낼 수는 없다, 대충 이런 요지였다. 백여 명의 학생들이 현수막과 깃발을 들고 길에 나섰다. 백여 명, 결국 모두가 시위를 간 건 아니란 얘기다. 단과대 건물이 텅텅 빌 정도로 어느 수업 하나 제대로 진행되고 있지 않은데 시위엔 고작 백여 명 뿐이었다. 누군가는 시위를 핑계로 집에서 편히 쉬고 있다는 얘기다.

누가 우리를 무관심하게 만드는가

젊은 세대를 둘러싼 가장 정치적인 이슈 중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정치적 무관심’이다. 누군가는 자신의 무관심을 합리화하며 살고, 누군가는 그 몫까지 다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무관심과 싸우며 산다. 스페인 역시 그다지 다를 게 없다. 한 가지 다른 건 스페인 대학생들은 시위날 강의실을 비울 수 있는 ‘깡’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학생 중에 아무리 정치에 관심이 있고 시위를 나가려는 의사가 있다고 하더라도 수업을 빠질 수 있는 학생이 몇이나 될까.

귀찮아서. 너무 극단적이어서. 이것 말고도 시위를 안 가는 이유는 각자 다르겠지만 아마 공통적으로 한국 대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은 쌩뚱맞게도 ‘남한테 뒤쳐질까봐’일 것이다. “수업을 빠지면 그 진도는 어떻게 따라가지? 시위 갔다 왔다고 노트 필기 빌리기도 웃긴데. 교수님한테 말한다고 출석을 쳐주진 않겠지?” 마음을 어지간히 굳게 먹는다고 해도 수업 시간에 있는 시위를 참여하려면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난 뒤여야 한다. 사실 수업시간에 있는 시위는 애초에 고려대상도 아니다. 무슨 시위가 일어나는지조차 알 겨를도 없는 게 한국, 아니 헬조센의 대학생이다.

스페인 대학생들이 부러운 건, 시위 핑계를 대고 수업을 빠질 수 있어서가 아니다. 내가 부러운 건 강의실에 앉아서 듣는 전공 수업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시위’라는 배움의 장소가 있고, 그걸 존중해주는 교수가, 사회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다른 학생들이 시위에 간 사이 난 앞서 나가야겠다, 학점을 위해 공부를 해야겠다, 진도를 꼭 다 따라잡아야겠다, 생각하는 학생들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물론 필자 눈에 얘네는 경쟁을 안 해도 너무 안 하는 것 같다. 스페인 애들은 노오오오오력이 부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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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시위를 나가면 채증까지 당하니 먹고 사는 길마저 막힌다. 이게 다 정치엔 신경 끄라는 그 분의 깊은 뜻이다.

사실, 국가가 주도하고 있는 이 헬조센의 경쟁사회에서 권력자가 누리는 가장 큰 이익은 경쟁으로 인한 유능한 인재 창출이나 국가의 성장원동력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을 정치에 신경 쓰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본인들의 통치 수단을 더 견고하게 하는 데에 구성원들의 무관심만큼 좋은 수단이 없다. 공부만 하게, 일만 하게, 먹고 사는 것만으로도 벅차게, 그렇게 우리의 눈을 한번 돌려놓고 나면 아무리 정치가 정치인들의 이익 싸움으로 변질된다고 해도 누구 하나 눈치 채지 못한다.

진보도 보수도 싫다니까요?

하지만 시위를 나가는 게 꺼려지는 이유는, 즉, 어떤 문제에 대해 정치적으로 무슨 얘길 하는 게 불편한 이유는, 이 뿐만이 아니다. “나갔다가 채증 당하면 어떡하지? 요즘 취업할 때는 그런 것도 다 본다던데. 나 빨갱이라고 생각하는 거 아냐?” 빨갱이, 대학생들이 정치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려고 하면 사회는 이런 낙인을 찍겠다고 겁을 준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우리가 하려는 말은 들으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빨갱이라는 말은 그렇게나 쉽게 뱉는다. 정치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디서 주워들은 건 많은, 진보적인 성향의, 다루기 힘들고 피곤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젊은 애들. 누군가 나한테 정치적인 성향을 물어볼 때 나는 항상 이런 편견과 싸워야 했다. 그래서 누군가 먼저 얘기를 꺼내기 전까진 정치에 무관심한 척, 그런 얘기는 잘 모르는 척 해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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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도 아니고, 보수도 아니에요. 그런 피곤하고 재수 없는 구닥다리 가치들은 다 제쳐두고 저한테 도움되는 사람 한 명 찾기도 바빠요.

지금의 한국 사회는 정치에 관심을 가지려거든 어떤 진영에 설 지부터 답하라고 한다. 진보냐, 보수냐, 이 질문으로 훌륭한 사회구성원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나눈다. 내 대답에 따라 사회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내가 일할 직장이 바뀌는 지금의 사회에서 정치적 성향을 가진다는 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진보를 택하든, 보수를 택하든, 누군가는 나를 비난할 것이기 때문이다. 청년들에게 이런 정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보다, 정치적 성향이 어떻게 되냐는 질문을 먼저 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정책을 그 자체로 바라보지 못하는데, 바라볼 수 없게 하는데 어떻게 좋은 정치가 나올 수 있을까.

변화를 가장 필요로 하는 세대이지만, 가장 힘이 없는 세대이자, 그 힘을 가지는 것조차 너무 벅찬 청년들에게 ‘정치적 무관심’은 ‘정치적으로’ 가장 안전한 선택지다. 내 먹고 살 길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진보냐 보수냐는 사상 검증을 당할 필요도 없다.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 괜한 말을 할 이유 역시 없다. 시위는 물론이고 투표일에도 가만히만 있으면 된다. 내가 공약집을 아무리 꼼꼼히 읽어보고 투표를 한다 해도 무엇 하나 바뀌거나 이뤄지지 않는다는 무력감도 느낄 필요가 없다.

청년 세대의 ‘정치적 무관심’은 분명 심각한 사회 문제다. 하지만 그걸 해결해야 하는 건, 그리고 해결할 수 있는 건, 청년이 아닌 한국 사회다. ‘요즘 젊은 애들’ 탓만 할 게 아니라 지금의 기성사회를 돌아봐야 한다. 권력자들이 청년들의 ‘정치적 무관심’에 얼마나 고마워하고 있는지, 왜 다들 청년들을 탓하면서 청년들의 목소리는 들으려고 하지 않는지, 무관심을 탓하면서 관심을 갖게 하려는 노력은 안 하는지 말이다.

곧 총선이 다가온다. 선거가 지나면 또 한 번 20대 유권자의 투표율이 문제가 될 것이고, 청년들의 정치적 무관심이 도마에 오를 것이다. 하지만 그 때 뿐이다. 아마 선거가 지나고 나면 당분간, 아니 꽤나 오랜 시간동안 높으신 분들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거다. 그래서 그 다음 선거가 돌아올 때 이 사회는 다시 한번 우리 젊은 세대에게 정치적 무관심에 대한 책임을 물으려 할 것이다. 이런 무책임한 기성 정치와 한국 사회에 정말 잘못하는 것은 기성 정치인들이라고, 더 이상 이런 잘못을 참지 않겠다고 말할 수 있는 가장 힘센 수단은 결국 선거다. 이렇게나 귀찮고 피곤한 정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투표를 하러, 시위에 목소리를 보태러 나가야 하는 이유다.  

 

편집 및 교정/요정

글/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