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똔의 술술술술 03

신촌 동네아저씨치킨, 한라산+생맥주

집이라고 집인 게 아니고, 집이 아니라고 집이 아닌 게 아니다. 내가 술을 마시고 싶을 때, 술을 내어줄 수 있는 그곳이 술집이다. 따라서 술집은 국에 밥을 말아 쌉쌀한 소주 한 잔에 밥 한 술을 넘기는 국밥집일 수도, 마음이 허한 새벽 맥주 한 캔을 손에 쥐어주는 편의점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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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수련 for Misfits)

아직도 소주를 맛으로 마실 수 없다니, 역시 나는 어린 모양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소주 중에서도 희석식 소주의 맛을 도통 알 수가 없다. 맹물과 그리 큰 차이를 느낄 수 없는 질감이 혓바닥에 닿는 순간 이어지는 알코올의 씁쓸한 맛과, 비우는 잔마다 칼같이 산술적으로 올라오는 취기. 주머니가 가벼울 때 값싸게 취하기 위함이거나 각자의 주량을 정확히 계량하기 위함이 아니고서야, 나로서는 여전히 소주를 찾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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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수련 for Misfits)

하지만 소주가 당기는 때가 결코 없지는 않다. 한국이 낳은 세계문화유산, 소맥이 있는 이상 소주를 맛으로 마실 수 없다는 문장은 소주만을 맛으로 마시기 어렵다는 말로 수정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언제였던가, 한국 맥주가 폭탄주 제조를 상정하고 만들어지기 때문에 맛이 없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렇다면 뒤집어 말해서 한국 맥주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도 폭탄주의 베이스로 섞어 마시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내 평생 맛본 걸출한 칵테일 중 하나는, 신촌 동네아저씨치킨에서 생맥주에 한라산을 말아 만든 소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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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수련 for Misfits)

신촌 동네아저씨치킨에 가면 생맥주에 한라산을 시킨다. 다른 지역 소주들도 구비되어 있고, 여러 소주들의 맛을 구별하지도 못하면서 왜 구태여 한라산을 고르는지 묻는다면 대답할 말은 없다. 심지어 나는 고향이 제주도도 아니다. 따라서 아마 그것은 시각적인 이유로부터 말미암는 것일 테다.

지구온난화로 해수면이 상승해 대항해시대가 열린다 한들 소맥만은 빙하기처럼 시원해야 한다. 평소 밍밍하다고 놀림받는 한국 맥주가 소주와 만나 목구멍을 막힘 없이 훑고 내려가는 순간의 감각이야말로 시원한 카타르시스 아닌가. 이때 소주병 중 유일하게 색이 들어가 있지 않은 순수한 유리병 속에서 찰랑이는 한라산의 투명함이라니! 보는 것만으로 가슴 속 답답함이 사라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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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수련 for Misfits)

그러나 소주를 눈으로 마실 수는 없는 법. 한라산으로 소맥을 말기 위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한라산을 서너 잔, 생맥주를 한 잔 따라낸다. 따라낸 소주와 맥주는 단번에 들이켠다. 술기운을 속에 조금 깔아놓는다는 느낌으로 말이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뚜껑 열린 한라산을 수직으로 생맥주에 꽂아넣는다. 꼴꼴꼴꼴, 소주가 맥주 속으로 흘러들어갈 때 수면으로 올라오는 황금빛 구슬 같은 거품이 그렇게 보기 좋을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한라산과 생맥주를 잘 섞어주어야 하는데, 역시 소주병으로 저어주는 게 제일인 듯싶다 마침내 소맥을 맥주잔에 따라 단숨에 원샷. 입천장에서 시작되어 대뇌피질까지 올라오는 짜릿하도록 차가운 마비감! 크으, 자연스러운 감탄사를 참을 수 없는 시원함이다. 더군다나 이 적절한 배합의 비율이라니. 밍밍하기만 하지도, 그렇다고 알코올 맛만 나는 것도 아닌, 정말이지 둘이 있어 훌륭한 조합이다.

물론 동네아저씨치킨에서 소맥이 다는 아니다. 원샷 이후로 슬슬 동네아저씨치킨의 안주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할 것이다. 그야말로 소맥을 위한 안주가 차례차례 테이블 위를 가득 채우기 시작한다. 커다란 접시 위에 수북이 나오는 치킨과 감자튀김은 눅눅하지 않은 식감이 달콤한 소스와 어우러져 청량한 소맥 한 잔을 곁들이지 않고는 참을 수 없을 것만 같다. 남자가 주문하면 스무 개, 여자가 주문하면 서른 개 나온다는 새우튀김도 소맥에 제격인 메뉴다. 정말로 남자가 주문하면 스무 개만 나오는지는 확인해본 적 없으나, 바삭한 튀김옷 속에 탱글탱글한 새우살이 터져나오는 맛은 소맥과 찰떡궁합인 데다가 물량도 압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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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양의 육회도 별미다. (사진/ 수련 for Misfits)

안주 맛이 좋으니 술맛이 나고, 술맛이 좋으니 안주 맛이 나는 동네아저씨치킨에 단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과식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주로 기름에 튀겨낸 맛있는 안주가 산처럼 나오는 데다가, 기름진 맛을 시원한 소맥이 씻어내리니 들어가는 대로 계속 먹게 될 수밖에. 하지만 술이든 안주든, 먹고 나서 후회할지언정 일단은 먹고 보는 게 답인 것 같다. 어차피, 특히나 맛있는 술은 마신 후의 후회보다 못 마신 후의 후회가 더 크지 않겠는가 말이다.

 

교정 및 편집 / 저년이

사진 / 수련

글 / 안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