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개의 자소서를 쓴 남자
프롤로그

 

난 비범했다

“우……유!”

외할머니 품에 안겨 있던 세 살배기 아이가 뜬금없이 외쳤단다. 얘가 갑자기 뭘 보고 우유를 찾나 싶어 시선이 가 있는 곳을 바라보니 창문 너머 마당 밖 정문 앞에 서울우유 트럭이 서 있었다고 한다. 아마 트럭 옆면에는 커다란 서울우유 로고와 함께 그 아래에 ‘서울우유’라는 글자가 박혀 있었을 거다. 그런데 운전수는 운전석에 가만히 앉아 있을 뿐 아직 내려서 짐칸에서 우유를 꺼내고 있지는 않았단다. ‘음……응??’ 순간 외할머니 머릿속에는 ‘설마’와 ‘혹시’가 동시에 스쳐 지나갔단다. 현실적으로는 ‘설마’ 쪽이 맞을 가능성이 높긴 했겠지만 손자 둔 할머니의 마음은 그래도 ‘혹시’를 확인해봐야 했을 터……. 할머니는 거실 탁상 위에 놓인 광고 전단지 한 장을 집어 들고는 한 글자 한 글자 손가락으로 짚으며 내게 보여주셨단다. 내 입에서 기적의 소리가 튀어나오기를 간절히 바라셨을 거다. 그런데 웬걸?! ‘설마’가 맞았다. 세 살짜리 애기가 누가 가르쳐준 적도 없는 한글을 혼자 깨치고 있었다.

 

마이웨이

난 잘났어!


그때부터 난 줄곧 ‘잘난 놈’이었다. 일곱 살 때는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앞집 살던 한 살 많은 형을 워낙 좋아하고 따랐던지라 그 형이 배우던 바이올린까지 따라 배웠다. 그 형이 배우던 똑같은 선생님에게 레슨을 받기 시작했는데, 맡은 지 두어 달 만에 날 포기해버렸다. “얘는 제가 가르칠 애가 아니에요.” 그 뒤로도 같은 이유로 여러 선생님 사이를 떠돌았고, 결국 정착한 곳은 한 한예종 교수 문하였다. 교수에게 레슨받기 시작한 초등학교 1~2학년 때 즈음부터 난 한예종 입시 준비에 돌입했다. 연습이 너무 힘든 나머지 초등학교 4학년 때 전공을 그만두고 취미로 돌려버렸기에 결과적으로 한예종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만약 그때 그만두지 않고 그 이후로도 계속 잘 풀렸다면 난 지금쯤 ‘사라장’처럼 뭔가 좀 있어 보이는 느끼한 서양식 이름으로 유명해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중학생 때 2년간 미국에서 이민 생활을 할 때도 난 평범치 못했다. 공립 중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지 단 두 달 만에 ESL1)‘English as a Second Language’의 약자로, 비영어권 국가에서 넘어와 미국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는 학생들이 거치는 프로그램이다. 대상자는 필수과목(영어, 수학, 사회, 과학)들을 ESL 학생들만 모아놓은 별도의 수업에서 배우고, 영어 실력이 일정 이상으로 올라가면 ESL에서 나와 일반 수업을 듣게 된다. 당시 ESL을 떼는 데 걸리는 평균 기간은 2~3년 정도였다.을 떼고 GT2)‘Gifted and Talented’의 약자로, 쉽게 말해 ‘수재 반’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팀으로 들어갔다. 당시 그 지역에서 두 달은 최단 기록이었을 뿐만 아니라 곧바로 GT로 넘어간 예도 없었다. 선생님들에게 총애를 받던 난 학교 대표로 온갖 경시대회에 참여하며 학업을 이어갔다. 한편 바이올린 활동도 계속하면서 그 지역에서 유명한 미국 대학 교수에게 레슨을 받았고, 학교 오케스트라에서는 악장3)현악 오케스트라 연주자 전체를 대표하는 리더 자리다. 영어로는 ‘Concert Master’라고 하는데, 풍물패에서 상쇠를 꽹과리만 맡을 수 있듯이 오케스트라 악장은 수석(1등) 바이올린이 맡는다. 악장은 연주곡에 따라 별도의 솔로 파트를 연주하기도 하고, 공연 시작과 끝에 대표로 인사를 하는 등 여러 상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도 지냈다. 여가 생활로는 디아블로2를 가장 즐겼는데, 한 디아블로2 커뮤니티에서 디아블로 관련 창작 소설을 연재했고, (운영진에게 매우 졸라서 얻은 거지만) 그 사이트에서 난 세 번째이자 마지막 전용 소설 게시판 소유자가 됐다.

이민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건 고등학교 1학년 시작 때였다. 답답해 보이는 외고를 마다하고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로 간 나는 매일 저녁 야자를 튀고 다음 날 아침 매타작을 당하는 평범한(?) 고딩 생활을 해나갔다. 하지만 역시 마냥 평범해지기는 어려웠다. 이상하게도 난 금세 학교에서 유명인사가 됐다. 영어, 바이올린, 축구, 장기, 그리고 보너스로 장착한 똘기로 얻은 ‘사이코’ 칭호까지……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특별히 공부를 이를 악물고 한 것도 아닌데 성적도 상위권으로 유지됐다. 결국 난 우리 학교 문과 남자 가운데 최고 성적으로 졸업했고, 소위 ‘SKY’라 불리는 세 명문대 중 한 곳에 합격했다. 그러면서 난 설레는 마음으로 화려하기만 할 것 같은 20대를 맞을 준비를 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20대 마지막 첫눈은 야속하게도 내 생일에 내렸다. 깜깜한 새벽에 가로등과 전조등에 의지해 차를 몰다가 앞 유리창에 떨어지는 가녀린 눈송이를 보고선 난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창문을 내리고 담뱃불을 붙일 수밖에 없었다. 착잡했다. 파란만장했던 20대 기억 구석구석에 배어 있는 역겨운 고독의 냄새를 투박한 담배 향으로 힘겹게 눌러야 했다. 유리창에 닿자마자 몇 초 안에 녹아버려 보이지 않는 나약한 눈송이들이 왠지 지난 10년 동안의 나를 보는 것 같아 괴로웠다. 그날 내린 눈은 허무하게도 아무것도 덮어 가리지 못한 채 내 기분만 들쑤셔놓고 사라졌다.

 

씨바...

씨바…


난 지금 29살……, 그리고 백수다. 1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냐고? 대강 이렇다. 학부 2년을 다니고 행정고시를 보기로 결심했다. 2학년을 마친 뒤 22살이 되면서 휴학을 하고 신림동에 입성했지만 2년 반 동안 내 인생 최고의 암흑기를 겪으며 합격에 실패했다. 24살 여름에 다시 자취방을 학교 근처로 옮겨 복학을 했고, 3학기를 더 다니다가 한 학기를 남겨놓은 채 다시 휴학을 하고 2012년 마지막 시험에 도전했다. 1차에 합격할 줄 알고 2차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4월에 발표된 합격자 명단에는 내 이름이 없었다. 더 이상 맛볼 좌절도 없던 난 5월에 공군 입대 지원을 해서 7월에 들어갔다. 다시 나왔을 때는 2014년 7월, 28살 여름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한 학기를 다니면서 비로소 취업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때부터 14년 하반기, 15년 상반기, 15년 하반기를 거쳐 여기까지 왔다.

세 시즌 동안 제출한 지원서는 모두 99개……. 이 가운데 서류 전형에서 탈락한 것만 무려 72개였고, 시험 전형에서는 절반 정도 합격했으며, 결과적으로 최종 합격한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어릴 적 여러 방면에서의 천재성(물론 매우 과장했지만) 따위는 내 일할 자리 하나 구하는 데 눈곱만큼도 도움이 되질 않았다. ‘SKY’라는 금빛 꼬리표가 그리도 무색할 수가 없었고, 만점에 가까운 영어 점수도 의미가 없었다. ‘학점은 기본만 챙기고, 대학에서는 사람 사귀는데 집중하면 돼. 어차피 SKY면 다 돼.’ 내가 2006년에 입학할 때 선배들이 해주던 말은 당시에는 나름대로 상식이었지만 이제는 버리지 않으면 내 자신을 시대 뒤처진 꼰대로 만들어버리는 낡은 옛이야기가 돼 있었다.

그렇다고 핑계 댈 생각도, 세상을 탓할 생각도 없다. 난 지금 내 1년 반 동안의 취업 준비 경험,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꽃 피우지 못한 내 20대 청춘을 돌아봐야 할 시점에 와 있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왔는지(do)에 대한 반성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be)에 대한 성찰도 다시 해야 한다. 결국 이 글은 내 힘겨웠던 청춘을 회고하며 끼적이는 일기다. 다만 내가 이렇게 남에게 전하는 이야기로 남기고자 하는 건 내 경험(비록 성공기가 아닌 실패기일지라도)을 나누는 게 나와 비슷한 역경을 견뎌내야 하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초안을 쓰고 있는 지금은 2015년 말……, 이제 2014년 여름(때때론 그보다 더 이전)으로 돌아간다. 연재를 하다보면 어느 순간 글 속의 시간이 현실을 따라잡아 과거형에서 현재진행형으로 바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시제와 상관없이 난 되도록 상세한 이야기를 전하려 한다. 단순히 취업에 관련된 내용만 적는 게 아니라 준비 과정 동안의 내 인생 얘기를 전하려 한다. 취업에 관련된 정보를 얻고자 이 글을 읽어도 되고, 그냥 좀 어설픈 소설 읽는다는 기분으로 감상해도 된다.

난 내 스펙 관련 정보나 기업명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쓸 생각이다. 그래야 구체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의 소지가 있겠다 싶을 때는 기업명을 어쩔 수 없이 익명으로 해야 할 거다. 이해 바란다. 그리고 스펙은 물론이고 내 개인적인 경험까지 되도록 있는 그대로 쓸 생각인데, 부디 내 신상을 터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관심도 없겠지만……)

이력서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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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개똥그릇

편집 및 교정/이점

난 비범했다 /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Do You Speak English? / 지원서 #1
두근두근 첫 키스, 지겨운 뽀뽀 / 취준생박람회 / 취준생에게 현대자동차란?
너무 아픈 사주는 사주가 아니었음을 / 코스모스에도 가시가 있을까
취풍낙엽(就風落葉)
Dress Code / 日本も大丈夫。/ 미필적 겐세이
Expecto Patronum / 시한폭탄
SCSA가 뭔가염? 먹는 건가염? / 정신 나간 제정신
Make-Up Exam
개미論 / 생애 첫 면접 × 삼성 = ?
이름 모를 후배의 넥타이
Salut d’Amour
그대 부디 잘 지내시오
Inertia
응답하라 1998
초콜릿 크리스마스 트리
Failure Speech
Prophecy Fulfil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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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nglish as a Second Language’의 약자로, 비영어권 국가에서 넘어와 미국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는 학생들이 거치는 프로그램이다. 대상자는 필수과목(영어, 수학, 사회, 과학)들을 ESL 학생들만 모아놓은 별도의 수업에서 배우고, 영어 실력이 일정 이상으로 올라가면 ESL에서 나와 일반 수업을 듣게 된다. 당시 ESL을 떼는 데 걸리는 평균 기간은 2~3년 정도였다.
2. ‘Gifted and Talented’의 약자로, 쉽게 말해 ‘수재 반’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3. 현악 오케스트라 연주자 전체를 대표하는 리더 자리다. 영어로는 ‘Concert Master’라고 하는데, 풍물패에서 상쇠를 꽹과리만 맡을 수 있듯이 오케스트라 악장은 수석(1등) 바이올린이 맡는다. 악장은 연주곡에 따라 별도의 솔로 파트를 연주하기도 하고, 공연 시작과 끝에 대표로 인사를 하는 등 여러 상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