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그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지난 12월 28일, 한국과 일본 양국 정부가 ‘위안부’1)본래 위안부라는 표현은 ‘위안부’ 피해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 일본측에서 쓰기 시작했다. 이를 밝히기 위해 우리나라에서는 ‘위안부’에 작은 따옴표를 붙여 쓴다. 문제에 합의했다. 수십 년간 한국과 일본이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던, 그만큼 예민하고 중대한 문제가 박근혜 정부 임기 3년 만에 해결됐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위안부’ 문제에 대해 피곤할 필요도, 피곤할 수도 없는 국민이 됐다. 국가적인 배상도 아닌, 피해 여성들을 위한 인도적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일본 정부는 10억엔을 제시했고 우리 정부는 이 돈에 모든 역사적 갈등을 덮기로 합의했다. 결국 국제사회에서 그들이 그토록 발뺌했던 ‘위안부’ 문제에 우리도 맞장구를 쳐준 것이다.

‘위안부’를 기억하기 위해 세워진 소녀상도 이제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을 수 없단다.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위치한 소녀상이 공관의 안녕과 위엄을 해친다는 이유다. 일본이 불편하게 생각한다는 이유로, 그 누구보다 우리가 지켜야 할 소녀상을 옮긴다는 게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우리가 ‘위안부’를, 그 시절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추모할 권리마저 빼앗긴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화나는 건, 이렇게 문제가 많은 합의인데도 ‘불가역적이고 최종적인’이라는 문구 때문에 더 이상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다. 대학생들이 길거리로 나가 소녀상을 지킨다고 해도, ‘위안부’ 할머니들이 수많은 기자회견장 앞에 서도, 벌써 25년이 된 수요집회가 앞으로 다시 25년간 열린다고 해도, 일본의 입장은 쉽게 바꿀 수 없어 보인다. 결국 우리 정부는 이제 일본과의 ‘위안부’ 및 역사적 문제에 있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눈치 보이는 위치에 놓였다. 급기야 일본은 ‘위안부’의 강제성마저 부인하고 나섰다.2)<일본 “위안부 강제연행 증거 없다” 공식입장 UN 제출>, jtbc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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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상이 그렇게 중요한가?

그렇다, 그렇게 중요하다. 일본이 굳이 합의문에 소녀상과 관련된 내용을 포함시킨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자리한 소녀상은 양국 모두에게 어떤 의미로든 중요한 조각상이다. 단발머리 소녀상 뒤로 드리운 할머니 모습의 그림자, 그 외에 조각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부러 해석하지 않더라도, 그 조각의 존재만으로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해왔고 해나갈 수 있다. 지금은 가능성이 거의 희박해졌지만 우리나라 정부가 ‘위안부’ 관련 기록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던 움직임도 이 때문이다. 누군가가 계속 기억하도록, 감히 잊을 수 없도록, 그리하여 이러한 역사가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어떠한 역사적 문제를 책임질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독일의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수요집회의 소녀상 (사진/Simon for Misfits)

수요집회의 소녀상 (사진/Simon for Misfits)

역사 문제는 말 그대로 ‘역사’ 문제이기 때문에 누군가 계속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쉽게 잊히고 만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이 대한민국의 바쁜 일상 속에서 몇십년, 몇백년이 된 역사 문제를 고민하는 것은 너무 한가로워보이는 일일지도 모른다. 당장의 취업, 결혼, 육아 등 모든 문제가 내 눈 앞에 닥쳐있는데 우리의 역사를 바로잡자는 것은 여유 있는 자들의 사치스런 고민 아니냐는 말도 왠지 아주 부정할 수가 없다. 옆 나라가 아무리 역사 왜곡을 할 지언정 나에게 실제적인 불편을 주지 않는데, 왜 우리가 역사 교과서를, 그런 합의를 막아야 하냐고 말하는 게 어쩌면 지금 현시대의 가장 평범한 한국 사람일 수도 있다. 제대로 된 역사 교육을 시켜주지 않아서 이따금씩 얄팍한 민족 감정에 기대 일본에 화내는 게 전부라고 우리 스스로를 깎아내린다고 해도, 이에 논리적으로 어떤 증거를 대고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게 지금 대한민국 역사 인식의 가장 정확한 현주소이기도 하다.

역사 문제는 또 다른 역사를 낳는다

역사 문제는 경제적 지원을 약속했다고 해서, 또 어떤 정책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단숨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역사 문제는 갈등 상황이 발생한 직후부터 국가 간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히게 되고 각 국가의 통치자에 따라 갖가지 해석이 덧붙여지게 된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다시 한 번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지금껏 ‘위안부’ 문제에 대해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로부터 확실한 사과를 받아내지 못한 것에 대한 해결책이 고작 경제적 보상과 양국의 이해에 그친 것은 그래서 더 안타깝고 화나는 일이다.

사과 받아야 할 사람이 사과가 아니라는데도, 경제적 보상이 아닌 법적 책임을 져달라는 데도 양국 정부는 합의라는 이름으로 더 이상 ‘위안부’ 관련 문제를 국제사회에서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위안부’ 문제를 위해 오랜 시간 싸워온 할머니들은 또 한 번 나라로부터 보호받지 못했다는 기억을 안고 살아가셔야 한다. 이 합의문으로 우리는 다시 한 번 현대사의 한 부분에 큰 상처를 남기고 만 것이다. 아무리 많은 국민들이 반대 의견을 내고 길거리에 나와 시위를 한다 해도, 설사 이런 국민적 여론이 한일 양국을 다시 회의장에 세운다고 해도 한 번 남은 상처는 끝내 흉터를 남기고 말 것이다. 그만큼 돌이키기 어려운 게 역사와 관련된 외교 문제다.

누구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누구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그래서 더더욱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누군가가 “역사적 책임을 지겠다”고 하는 것은 그건 어떤 합의를 끌어내거나 다시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없도록 불가역적인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이 사건을 오래 기억하겠다”는 뜻이어야 한다. 우리가 가해자의 입장이었든, 피해자의 입장이었든, 슬픈 역사는 반드시 오래 기억돼야 한다. 아픈 상처를 계속 찌르겠다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그만하자”는 무책임한 말이 나올 수 없게, 모두가 이 역사를, 우리 모두의 슬픈 기억을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역사적 문제를 청산한다는 표현이 영 불편하다. 아무리 마음 아프고 그 분의 말씀대로 부끄러운 부분이라 하더라도 역사 문제는 몇 마디 얘기가 좀 오갔다고 치워버려도 되는, 다시 꺼내보지 않아도 되는, 불가역적으로 ‘청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지금껏 오래 곪아온 흉터라면, 이따금씩 그 상처가 욱신거릴 때마다 다시는 그렇게 다치지 말자고 다짐할 수도 있어야 한다.

아무도 얘기하지 않아도, ‘아로새길 것’

어느 나라의 역사 인식이 높다는 것은 사실 그리 거창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대하는 태도와 종종 비교되는 독일의 역사 인식은 사실 정말 성실하게 모든 과오를 ‘기억’하려는 것에서 나온다. 최근 메르켈 총리는 홀로코스트와 관련된 작품이 걸린 전시장을 직접 찾아 나치즘의 끔찍한 역사는 우리의 ‘국가 기억’에 남을 것이라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 메르켈 총리가 이런 언급을 한 건 처음이 아니다. 또, 독일의 정치가들 중 이런 발언을 한 것 역시 메르켈이 처음이 아니다. 독일인들은, 심지어 그들이 이 나라를 단결시키고 애국심을 끌어올리려 하는 정치인이라 하더라도, 본인들의 역사 속 이 오점을 오래 기억하지 않는다면 결코 성숙한 시민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국제 사회가 독일의 이러한 역사 인식이나 대응을 무려 ‘칭찬’하는데도 자신들의 역사에 부끄러워하고 이러한 대처 역시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끼는 독일의 태도는 여전하다. 막대한 경제적 배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독일인으로 태어난 개개인이, 나치즘의 역사를 공유하는 가해국가의 국민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들의 죄책감은 누군가가 감히 덜어낼 수 없는, 메르켈의 말대로 ‘국가 기억’에, 독일인들의 머릿속에 아로새겨진 무엇이다.

우리가 지금 ‘위안부’를 대하는 양국 정부의 태도에 가장 강력하고, 성숙하게 대응하는 것은 이 합의를, 그리고 이 합의가 이뤄지기까지 우리의 모든 역사를 오래오래 기억하는 것이다. 지금 그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몇 달 진통을 치르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이 문제가 잊히는 것, 그래서 다시 경제적, 외교적인 우호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다. 또 더 이상 이 역사의 당사자들이 남아있지 않을 때까지, 역사가 말 그대로 과거의 오랜 기억으로 청산될 때까지 조용하게 침묵하는 것이다. 어떠한 역사적 분쟁이 더 이상 현재진행형일 수 없을 때, 그 책임은 고스란히 남은 자들에게 주어진다. 그리고 그 책임들 중 가장 무거운 건,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하는 건, 이 역사를 오래도록 기억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스스로의 기억 속에 아픈 역사의 상처를 아로새기는 것이다.

 

편집 및 교정/요정

글/한명

   [ + ]

1. 본래 위안부라는 표현은 ‘위안부’ 피해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 일본측에서 쓰기 시작했다. 이를 밝히기 위해 우리나라에서는 ‘위안부’에 작은 따옴표를 붙여 쓴다.
2. <일본 “위안부 강제연행 증거 없다” 공식입장 UN 제출>, jtbc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