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대해적시대

네 이 대해적시ㄷ…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어릴적에는 카세트 테이프 데크나 CD 플레이어로 음악을 들었다. 물론 그때도 불법 복제는 있었다. 그래도 그 ‘해적판’을 들을때 ‘돈을 (덜) 주고 사서 듣는’게 있었다. 학교 앞 문구점에서 ‘거금 3천원’이나 주고 사온 카세트 앨범이 정품인지 아닌지는 잘 몰라도, 나는 돈을 주고 샀으니까 떳떳했고, 문구점 주인은 저렴한 가격 덕분에 아주 잘 팔렸으니 두루두루 행복했다. 어떻게 보면 도둑질에도 상도의(?)가 있던 시대라고 해야하나.

시골 촌구석이던 우리집까지도 인터넷망이 밀려오던 2000년대 초, 음악은 더 이상 돈 주고 사서 듣는 것이 아니게 되었다. MP3라는 것이 있다는데, 인터넷에 가보면 공짜로 지천에 널려있고, 가져다 쓰는 방법도 어렵지 않고, 아무튼 용량도 작고 좋다는 것이다. 나도 역시 그랬다. 게임도 영화도 음악도 돈 주고 산 적이 별로 없다. 간혹 사치를 부리고 싶은 허영심이 생기면 정품을 샀다. 들어보고 너무 좋아서 미칠것 같으면 도토리를 주고 사서 BGM으로 깔고, 적당히 좋은 건 파일로 따로 잘 모아서 학교갈 때 듣고, 안 좋으면 휴지통에 넣고 비웠다.

네네. 다운로드 한 방이면 모든 게 가능한 대-단한 인터넷 월드. 사진 = Sourcefed



어느 날 돌아보니 나는 뭘 하고 있었나 싶었다. 포토샵도 불법, 오피스도 불법, 심지어는 OS도 불법인 컴퓨터 앞에서, 돈 주고 산건 하나도 없는 MP3 파일들을 애지중지한답시고 폴더 별로 정리정돈하고 있자니 모든게 헷갈리기 시작했다. 내 구매력에 비해 이 행복을 누리는게 정당하지 않지만, 나는 그 행복이 소중했다. 내가 가진 돈의 전부였던 방세, 식비, 교통비, 전화요금, 책값에 비해 나는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있었다. ‘문화적으로 도움을 받아야 할 소외계층’이라는 자기합리화를 기치로 도둑질을 하고 있는 것에 불과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월급을 받게 되면서, 나는 오랜 죄책감을 어떻게든 해볼 요량으로 내가 원래 갖고 있던 음악들을 다시 ‘정품’으로 사기 시작했다. 흡사 ‘음원 세탁’을 하는 기분으로, 류이치 사카모토와 칸노 요코를 잔뜩 사들였다. 한달에 만원 정도를 내면 매달 150곡씩 다운로드를 할수 있는 이용권을 끊어서 도매가로 후려쳤다. 한 곡에 100원도 안되는 어마무지한 할인율이었다. 음원을 구매하는 과정에는 전혀 위법성이 없었다. 나는 또다시 이게 뭔가 싶은 기분에 빠졌다.

 

 

필요한건 돈과 덕(력)

하루는 영화관에서 <Intouchables>(국내에선 ‘언터처블: 1%의 우정’이란 제목으로 개봉했다.)를 보고 너무 감동한 나머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내내 흘렀던 그 곡은 꼭 돈을 주고 사야겠어!’ 하는 마음으로 검색을 했다. 오프라인 매장에도 없고, 온라인 음원 사이트에도 아직 들어오지 않은 걸 알게되자, 내 두 손은 본능적으로 토렌트 검색을 했다. (…) 요즘 구글에서는 다음과 같은 검색 결과를 쉽게 볼수 있다.

 

미국 디지털 밀레니엄 저작권법(Digital Millennium Copyright Act)에 의거하여 Google에 접수된 불만사항에 따라 이 페이지에서 n개의 결과를 삭제했습니다. 원하시면 ChillingEffects.org에서 삭제 사유가 된 DMCA 불만사항을 보실 수 있습니다.

 

나는 결국 그 음반을 찾고 찾다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에서 구매할 수 있었다. (물론 작정을 했다면 끈질긴 검색 끝에 MP3 파일을 기어코 손에 넣었을 것이다.) 컴필레이션 성격의 OST 앨범이었으므로, 영화에 삽입된 11곡 중 지풍화 형님들의 2곡 만큼은 기준 가격인 $1.29 USD, 나머지는 $0.99 USD로 책정된 구성이었다. 보통 미국 아이튠즈 스토어는 곡당 가격이 $1.29선, 일본 아이튠즈 스토어는 ¥250선이다. 평소 음악을 들을때는 앨범 단위로 듣는다는 나름의 원칙 때문에, 11곡 총 $10.99 USD를 결제했다. 당시의 환율에 해당하는 금액이 계좌에서 빠져나갔다. 그제서야 무언가 균형이 맞춰지는 기분이 들었다.

iTunes에서는 이렇게 음악이 팔리지요. 사진 = iTunes Store 캡쳐

도저히 ‘이용권’을 두고는 한 곡에 600원씩 따박따박 결제하는 바보짓은 절대로 못하겠으면서, 아싸리 ‘제 값’과 ‘이용권’의 사이의 고민이 불가능한 마켓에서는 왜 난 뿌듯했던걸까. 사실 지금도 어떤 음원이 아이튠즈 스토어에도 있고 국내 음원 사이트에도 있다면 당연히 전자를 선택한다. 통신비나 취향의 문제 때문에 무제한 스트리밍 서비스는 이용하지 않는다. (물론 내가 K-Pop을 압도적으로 많이 듣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이용했을 것이다.)

 

요즘 시장은 이상한 교환을 한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실 말도 안되게 놀라운 선택들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몇가지 신박한 것들만 간추려 설명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1.  군만두 한 접시를 돈 주고 사먹을지, 아니면 중국집을 군만두 가격에 무제한으로 이용할지를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 (아니면 어떤 메뉴든 ‘시식만’ 할 수 있는 방법도 찾아보면 있다)
  2.  굳이 돈을 주고 사겠다면 ‘파격 할인 쿠폰’이 떡하니 매대 위에 함께 비치되어 있다. (요즘 빙과류는 ‘권장소비자가격’마저 거세된지 오래라던데.)
  3.  단편소설집 한 권에 실린 열 편 남짓의 작품들 중, 마음에 드는 한 작품만 따로 뜯어내서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소비자들에겐 천국이나 다름이 없다! 이렇게 소비자 친화적으로 굴러가는 시장이 세상천지에 또 어디있단 말인가. 싸게 팔겠다는데 굳이 비싸게 주고 사는 것이 오히려 밤피짓이다. 게다가 ‘나는 이 곡만 좋고 나머지는 그저 그래서 돈이 아까운데…’ 라고 느끼는 사람에게 딱이다. 원하는 것만, 필요한 것만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는 시장이 대체 뭐가 어떻다는 거야?

 

기왕이면 공정무역 커피를 드세요

문제는 유통사가 파이의 형태를 제멋대로 결정하고, 파이의 많은 부분을 가져간다는 것이다. 커피처럼 가공 및 유통 단계에서 부가가치를 더하는 구조도 아닌데, 농민의 삥을 뜯는 실력 하나는 여느 프랜차이즈 못지 않다. 그쪽은 이 동네보다 훨씬 일찍부터 공정무역 운동을 시작했다. 이곳 음원시장도 창작자들이 참다 못해 일어났다.

어쨌거나 그 곡을 ‘듣는’ 것도 저작권료 수입의 일부일진대, 우리나라 음원 사이트에서 ‘무제한 스트리밍’은 기본 옵션의 느낌만 난다. 출처=Mnet ‘월드컵 8강진출 기원 이벤트’ 이미지 캡쳐

무제한 스트리밍 요금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논의는 꽤 오래 됐지만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건 가수 싸이의 음원 수입이 공개되면서다.싸이는 미국에서 56억원, 영국에서 17억원을 벌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1억원도 채 못 벌었다. 삼일회계법인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온라인 음원 수입의 곡당 평균 저작권료는 다운로드가 10.7원, 스트리밍은 0.2원 밖에 안 된다.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싸이의 음원 수입은 3600만원에 그쳤다.

무제한 스트리밍 요금제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저작권료 징수 방식이다. 월 3000원을 내고 무제한 스트리밍 요금제에 가입하면 1800~2400원 정도가 권리자에게 돌아가고 이를 다시 저작권자가 300~400원(또는 매출액의 10%), 실연자가 180~240원(또는 매출액의 6%), 제작자가 1320~1760원(또는 매출액의 44%)씩 나눠 갖는다. 그리고 600~1200원 정도를 벅스나 멜론, 소리바다 같은 플랫폼 사업자가 가져가게 된다.

삼일회계법인에 따르면 무제한 스트리밍 요금제가 없고 다운로드 방식 판매가 보편화된 미국에서는 한 곡을 내려받는 데 최저 791원을 내야 한다. 캐나다는 804원, 영국은 1064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63원 밖에 안 된다. 실제로는 묶음 판매 등으로 훨씬 낮아진다. 수익배분비율도 문제다. 미국은 유통회사가 30%를 가져가고 나머지를 제작자와 권리자 등이 나눠 갖는데 우리나라는 유통회사가 40~57.5%를 챙긴다.

“정부가 음원 가격 정해주는 나라는 우리나라뿐” , 이정환 기자

네 바로 이 사진. 조합 설립 인!증! 사진 = 바른음원유통조합 페이스북 페이지

시나위의 기타리스트 신대철씨는 최근 ‘바른음원협동조합’을 출범시켰다. 지난 8월 20일, 페이스북 페이지 ‘바른음원유통협동조합 준비위원회(facebook.com/musiccoops)’를 통해 조합설립 신고확인증을 몸소 인증하셨다. 최근 손석희 앵커와의 JTBC 뉴스 인터뷰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음악생태계의 비정상적인 갑을관계를 올바르게 교정하는 것’을 그는 성공적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존재 자체가 신묘한 ‘현대카드 뮤직’

현대카드 뮤직은 내 기억으로도 런칭된지 3년이 넘은 음원 플랫폼이다. 인디 음악인들을 위한 음원 유통사라는 정체성이 흥미로운데, 아티스트가 직접 음원의 가격을 결정하게 하고 직접 음원을 등록하도록 하는 ‘음원 프리마켓’을 운영하고 있다. 유통 과정에서 필요한 수수료 정산 등의 비용을 제외한 수익 80% 전부를 창작자에게 돌려준다. 리스너들은 프리마켓에 등록된 음원을 구매할 때 ‘이용권’ 따위로 이용할 수 없다. 다운로드 구매 방식으로만 음원이 판매되도록 정했기 때문이다.

물론 ‘음원 시장의 지각 변동!!’이라며 대단하게 나와 놓고는, 역시나 어쩔수 없는건가 싶게도 여느 음원 유통사들처럼 스트리밍 서비스나 ‘이용권’ 서비스 등을 갖추고는 있다. 사실 ‘한국 전통의 음원 시장 형태’를 통해 거둔 수익으로 음원 프리마켓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일게다. 하지만 이렇게 꿈도 희망도 없는 시장을 상대로 오늘도 열심히 딴따라를 하는 ‘기초생활수급음악인’들에게 사회보장을 실현하겠다는 채널이 정부가 아닌 대기업 싹수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사실 현대카드가 여신전문금융회사라는 본업에 비해 더 잘하는 것이 마케팅임을 생각하자면, 사실 이 음원 프리마켓도 순수하게 소명의식으로만 운영하고 있는 것은 아닐것이다. (사실 현대카드가 직접 운영하고 있지도 않다. 아웃소싱이다.) 오히려 현대카드 뮤직이 내놓은 마켓 모델은 대단히 기형적이다. 서촌 어느 골목 안 주차장에서 소박하게 열리는 벼룩시장 같은 모습이기도 하다. 나 저번달에 거기서 수공예 팔찌를 2만원 주고 샀다. 그때 귀에 꽂고 있던 음악은 가격이 60원이었다. 대형마트에서도 팔찌 하나에 60원에 파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나보고 바밤바 사먹으러 백화점엘 가란 말이냐

누가 뭐랬나. 바밤바랑은 완전 다른데 사람들은 몰라준다. 건물 한 채 올리는 비용보다 영화 한 편 찍는 게 더 비싼데도 사람들은 모른다. 달라는 돈을 꼬박꼬박 주지 않았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만약 아프리카에서 굶어 죽어가는 난민 아이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에서 정기 후원을 신청한다고 했을 때, 그 후원금의 어느 정도가 수혜자에게 직접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보통 우리는 2만원이면 2만원 전부가 서른 명의 아이들 한 달 분유값으로 오롯이 사용될거란 아주 순진한 생각으로 살아가기 마련이다.

라디오헤드는 2007년에 발표한 앨범 <In Rainbows>를 온라인 판매하면서, 구매자가 직접 가격을 써넣게 하는 대단히 대단하고 엄청나게 엄청난 짓을 저지른 적이 있다. 가격에 0을 입력해도 구매가 됐다고 하니, 얼마 못 벌었을 것 같지만… 자가 레이블로 발표 했다는 점을 고려했을때 MP3 다운로드 수익 700만 달러라는 놀라운 수치를 기록했다. (그건 라디오헤드니까 그랬겠지. 나도 안다.) 정가 출시했던 CD는 또 CD대로 수익을 냈다. 당신이 좋아하는 밴드가 그랬다면 당신은 어떻게 했을까? 우리가 스스로 마켓을 선택할 수 있다면 말이다.

라디오헤드 성님들이 이렇게 패.기. 넘치는 판매창을 만들었습죠. 물논 라디오헤드이기때문에가능한일이었찌……(주륵)

너무 오래전부터 망가진채로 많은 시간이 지나버려서 사실 어렵다. 제대로 디자인된 ESD(전자 소프트웨어 유통망) 산업이 들어서기도 한참 전부터 사용재가 공공재처럼 ‘당연하게’ 착취되던 풍토속에서, 애초부터 마켓 세팅은 거지같이 돼버렸고, 도제식 감수성만으로 음악을 해온 이들은 너무나 안일했다. 얼마나 늦었냐면, ‘이 돈으로 이걸 사는게 과연 이치에 맞는 일인가?’ 하고 소비자인 내가 다 의아해하기 시작한 지경이다. 개인이고 소비자인 일개 좁밥에 불과한 나도, 사실 내가 해줄 수 있는게 뭘까 하는 답답함만 있을뿐, 음악인들이 국민신문고에 청원글이라도 올려서 진작에 해결될 일이었으면 나도 지난 선거 때 심각하게 고민 안했다.

꼭 ‘아이튠즈 스토어가 제 값 치르기 좋으니까 거기서 사세요!’ 하는 뜻에서 앞서 그 일화를 소개했던게 아니다. 나로서도 어쩌다보니, ‘사고 싶은 신발이 국내에 정발되지 않은 바람에 해외직구를 하게된 것’과 마찬가지로 그랬던것 뿐인데, 음악을 구매하던 그 순간에는 뭔가 경우가 달랐다. 가치에 걸맞는 돈을 지불하려고, ‘판매자도 만족하고 나도 기꺼이 감수할 수 있게 결정된 가격으로 교환을 하려고 그 시장을 찾는다’ 라는, 소비자로선 당연히 단 한번도 해본적 없는 생각이 들게 했던 일화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싼게 좋지만, 촌에서 자라면서 ‘정부가 한국의 쌀 시장을 어떻게 희롱했는지’를 남들보다는 조금 더 가까이에서 봤다. 너무 먼 얘기가 됐으니 쌀 얘기는 안 하겠다. 사실 나도 이젠 쌀밥 잘 안 해먹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