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서를 쓰다 보면 항상 비슷한 부분에서 글이 턱 막히곤 한다. 바로 단점 소개하기다. 단점은 말 그대로 단점인데 그걸 왜 굳이 소개해야 하는 걸까. 그래도 칸을 비워둘 수 없으니 곰곰이 생각해보기로 한다. 자기소개서에 적당한 단점은 무엇인가. 다들 공감하겠지만 이 문항이 어려운 이유는 스스로를 완벽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다. 너무 사소하지 않으면서 적당히 인간미가 느껴지는, 분명한 결함이지만 그럼에도 나를 여전히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줄 만한 것. 하고 많은 단점 중에 이 조건에 맞는 단점을 찾기란 스스로에게서 대단한 장점을 찾아내는 일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없는 척 숨기자니 뒤늦게 들통 나 실망시킬 것 같고. 솔직히 말하자니 나를 좋아해주지 않을 것 같다.

 

1person

감히 말하건대, 축하해줄 거리를 찾는 것보다 부끄러워 할 거리를 찾는 게 훨씬 어렵다. 남에게 말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 (오은, <1년> 중에서. 사진/한명 for Misfits)

‘올바른’ 자기소개서

요즘 우리 정부가 ‘올바른’ 자기소개서를 쓰는 데에 여념이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 분명히 역사 교과서를 집필한다고 했는데 지켜보고 있자니 이건 아무래도 자기소개서에 가깝다. 아니나 다를까 이 자기소개서 역시 단점을 쓰는 게 영 만만치 않은가보다. 누구한테 잘 보이려는 건지 당최 종잡을 수가 없지만 우리가 의도하든 하지 않았든 일본 정부는 많이 좋아할 것이다.  그것은 제가 확실히 알겠습니다. 국민들에게, 또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그나마의 단점마저도 그럴싸하게 포장해버리는. 덧붙여 현 정부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말까지. 완벽하게 찌질한,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자기소개서의 정석이다. 이런 자기소개서로는 채용이 될 리가 만무하다.

당연한 얘기지만 역사 교과서는 말 그대로 ‘교과서’여야 한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정도는 객관적으로, 있는 그대로 전달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어떻게, 왜’에 대한 해석은 차치하더라도 엄연히 존재하는 사실을 마치 없었던 것처럼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올바른 역사 교과서’는 감히 ‘교과서’이길 포기하고 오로지 올바르기만을 강요하고 있다. 자라나는 학생들이 나라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면 안 된다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어떠한 결함도 용납할 수 없다는 듯이 마음대로 역사를 편집하고 재단한다.

덮어둔다고 없어지나요.

결국 우리는 정부로부터 어떠한 역사적 과오에 대해 반성할 수 있는 권리마저 박탈당하고 만 것이다.

역사가 부끄럽다고 숨겨버리면 우리는 과거로부터 도대체 무엇을 배울 수 있단 말인가. 당연히, 모든 것이 완벽한 나라는 없다. 애초에 완벽이란 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가진 결함을 조금 숨긴다고 해서 내가 완벽한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오히려 위선적이고 진실 되지 못한 사람이 되는 것처럼, 나라의 결함 역시 숨긴다고 해서 숨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끄러운 부분을 꽁꽁 숨겨두다 또 한번 망신 당할 일을 만드는 것보단 사람들에게 내가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게 도와달라고 하는 편이 훨씬 낫다.

그러니까 우리는 오늘보다 내일의 모습을 기대하기 위해, 속도가 더디더라도 조금씩 나아지기 위해 많은 사람들 앞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설 수 있어야 한다. 한껏 치장한 모습이 아닌, 본연의 모습으로 말이다. 행여나 잘못된 방향으로 길을 걸어갈 때 단 한명이라도 나한테 ‘올바른’ 방향을 알려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화려하게 포장된 역사 교과서가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어 하는 건 ‘올바른’ 방향이 아니라, 우리는 지금까지 항상 올바르게 걸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니 어떠한 의문도 품지 말라는 안일한 애국주의에 불과하다.

본인이 사랑하시는 대한민국이 아버지 시절부터 일궈진 어떠한 결함도 없는 대단한 나라라고 생각하신다면 역시 평전을 쓰심이 옳다.

본인이 사랑하시는 대한민국이 아버지 시절부터 일궈진 어떠한 결함도 없는 대단한 나라라고 생각하신다면 역시 평전을 쓰심이 옳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어라

부끄러운 역사를 숨기지 말자고, 당당해지자고 말은 했는데 막상 우리나라의 부끄러운 역사를 떠올려보자니 열 손가락을 다 채우지 못한다. 무지가 만들어 낸 결과이기도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 봐도 우리나라가 가해자의 입장에 서있던 역사가 떠오르지 않았다. 맞다. 나도 국정교과서로 역사를 배웠다. 대학에 와서 역사책을 찾아 읽고 미디어의 숱한 글들을 접하기 전까지 나는 우리 국군이 월남전에 참전해 그렇게나 나쁜 짓을 많이 했는지 몰랐다. 물론 월남전 참전이 온전히 우리의 의지가 아니었고, 그 과정에서 우리 국군도 많이 희생당했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가해와 피해 사실 모두를 인정하는 것과, 가해 사실을 인정할 수 없어 피해 사실 마저 덮어두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월남전 참전 이후 고엽제 후유증에 시달리는 당시 참전한 군인에 대한 보상이 아직까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전쟁 당시 한국군과 베트남 여자들 사이에서 태어난 ‘라이따이한’ 문제도 여전히 남아있다. 이런 사실을 알기 위해선 고등학교나 대학교의 고등교육, 거기에 본인의 의지까지 필요하다. 국정교과서로는 이 중 무엇 하나 쉽게 배울 수가 없다. 고등학교까지 다 마쳐도 근현대사에 대해서는 무엇 하나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는 스무 살의 학생. 그게 지금껏 국정교과서가 키워온 ‘자라나는 인재들’이고 앞으로도 만들어나가고자 하는 인재상이다.

학생들은 바보가 아니야!!

학생들은 바보가 아니야!!

부끄럽고, 미안하고, 다행인 존재

여기서1)필자는 지금 스페인에 있다. 만난 독일인 친구들은 대개 독일인으로서 자신의 어떤 부분이 한 없이 부끄럽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나치즘과 홀로코스트 때문이었다. 독일인 모두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히 아니겠지만 내가 만난 친구들은 다들 자기 나름대로의 죄책감과 어떠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독일에서는 자신들의 역사적 과오에 대해 항상 반성하게끔 가르친다고 했다. 너무나도 끔찍한 일이고 다시는 일어나지 않길 바라기 때문에 나치에 대한 모든 것은 물론이고 그를 연상시키는 과격한 국가주의자들 역시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한다고 했다.

수업 시간에 자신들이 봤던 홀로코스트 다큐멘터리에 대한 감상을 얘기하기도 했다. 그 영상이 얼마나 사실적이고 무서웠는지, 그래서 본인들이 얼마나 슬프고 미안했는지에 대해 얘기했다. 덧붙여 자기 할아버지가 당시에 나이가 어렸던 게, 그러니까 그 끔찍한 사건의 가해자가 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도 했다.

사실 나는 나의 어떤 부분에 대해 부끄러움도 느낄 수 있고, 그에 대해 미안할 수도 있으면 좋겠다. 부끄러움도, 미안함도 없는 사람은 앞으로 부끄러워하고 미안해야 할 순간에도 쉽게 그 감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 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굳이 대단한 애국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내가 발을 딛고 선 이 나라가 끔찍한 사건의 가해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우리나라를 둘러싼 일본이나 중국에서 숱한 역사 왜곡이 일어나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도 똑같은 얌체가 돼서는 안 된다.

우리가 역사 교과서로 배워야 하는 것은, 이 나라가 얼마나 대단한 업적을 이뤄냈는지, 어떻게 내가 이 땅에서 이 모든 것을 누리고 사는지에 대해서만은 아니다. 부끄러운 역사든, 슬픈 역사든 간에 과거의 사실을 그대로 마주함으로써 그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그래서 우리가 써내려 갈 역사는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을 수 있도록 하는 것 역시 역사 교육의 중요한 사명이다. 미래의 내가 이기적이고 잔혹한 가해자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은 과거의 잘못을 배우고 반성함으로써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다. 나의 부끄러운 부분을 부끄럽다고 말할 수 있는 것, 그러나 나는 앞으로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는 것, 그렇기에 스스로를 지성인으로 인지하게 도와주는 것. 그것이 진정 ‘올바른 역사 교육’이다.

 

편집 및 교정/요정

글/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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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필자는 지금 스페인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