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글쓴이가 요새 연애 상대에 대한 심한 집착과 제재가 아름답고 당연한 것인 양 포장되어 매체를 타는 경우가 잦아 답답해서 모 대학 대나무숲에 제보했던 글입니다.1)댓글로 들어오셨던 질문들, 하나하나 댓글을 달 수 없어 이 글에 뱀발로 달아 놓았으니 만약 제 답이 궁금하신 분들은 뱀발까지 제발! 빼놓지 말고! 읽어 주세요!!


넌 내 거야. 

넌 내 거라는 말, 많이들 들어보셨을 겁니다. 사랑하는 사람한테, 아니면 적어도 대중 매체를 통해서요.

넌 내 거야!

넌 내 거야!

언제부턴가 ‘넌 내 거야’라는 표현이 섬뜩하게 느껴졌습니다.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서 만나야 할 상대가 내 소유물이라니요. 진지충이다, 관용적 표현 가지고 괜히 저런다는 분들 많을 겁니다. 그런데 ‘넌 내 거니까 다른 남자(여자)랑은 연락하면 안 돼’, ‘이성이 있는 집단이랑은 밥 먹는 것도 안 돼’ 등의 글이 자주 보이는 걸 보면 ‘넌 내 거야’가 단순히 ‘널 사랑해’의 관용적 표현이라고만 볼 순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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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뭘까요. 상대방을 내 것으로 만들어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만드는 게 사랑일까요? 여사친 남사친과 밥을 먹고 놀러 가는 것이 애인을 배신하는 행위인가요. 전 과 특성상 고등학교 때도 대학도 여자 비율이 높아 여자사람친구가 많습니다. 자연스럽게 엠티도 가고, 동아리 활동하다 보면 밤도 새고, 밥도 같이 먹지요. 하지만 저도 그게 이상하다 생각하지 않고 애인도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애인이 남자사람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하더라도 ‘응 잘 놀다 와 술 많이 먹지 말고’하고 끝내고요. 서로 믿으니까요.

애인이 아주 친한 남사친이 있는데, 처음에는 조금 샘이 났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내가 샘이 난다고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를 버리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생각했기에 내버려 뒀습니다. 가만히 지켜보다 보니까 슬슬 믿음이 생기더라구요. 오히려 제가 믿어주니까 애인이 먼저 오늘은 00이랑 만나 야구를 보러 가기로 했다는 둥 숨기지 않고 모든 얘기를 꺼냅니다.

인터넷을 보면 ‘애인이 싫어해서’ 이성인 친구와의 만남을 아예 가지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종종 보입니다. 그런 이야기엔 ‘멋있다’, ‘당연히 저래야지’라는 반응이 댓글로 달리죠. 13

아니요, 그건 멋진 게 아닙니다. 오히려 애인의 인간관계를 반토막 내버리는 이기적인 행위인 거죠. 이성이건 동성이건 친구는 친구로 대하되 선을 넘지 않고, 애인과의 관계에 최선을 다하며 애인과 친구 관계 둘 다 잡는 사람이 대단하고 멋진 겁니다. 

사랑과 우정을 모두 잡는 그대, 멋지다..!

사랑과 우정을 모두 잡는 그대, 멋지다..!

그래도 난 내 애인은 전혀 이성과 접촉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분들. 자신이 중고등학교 친구, 동네 친구, 대학 동기, 대외활동하며 만난 친구들과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되돌아보세요. 단 한 명의 이성도 없나요? 그건 아닐 겁니다. 설사 없더라도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갔을 때를 생각해 보세요. 일 때문에라도 이성인 동료와 친하게 지내야 할 경우가 생깁니다. 세상의 절반은 남자 절반은 여자인 만큼 어딜 가든 어떤 집단에서 활동을 하든 이성과 아예 부딪힐 수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싫을 수는 있죠. 하지만 그 싫다는 내 기분과 애인이라는 명분이 사랑하는 이의 인간관계를 반토막 낼 권리를 주진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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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반은 남자, 반은 여자. 모든 남자(여자)와의 관계를 끊으라는 말은 애인의 인간관계의 반을 없애버리라는 말, 즉 ‘불가능한’말이다.

넌 내 거야.

요새 애완동물도 산다고 하지 않고 입양한다고 하죠. 애완동물은 물건이 아니니까요. 그렇다면 애인은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그건 집착입니다. 연인 사이의 과도한 집착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는 주변 친구들만 봐도, 하다못해 아홉시 뉴스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 범인들은 ‘사랑해서 그랬습니다’라고 하죠.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범죄

이 범인들은 ‘사랑해서 그랬습니다’라고 하죠.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범죄

 여자친구가 고등학교 동창들과 친하게 지내는데, 그 그룹의 절반이 남자라 싫다고 안 만났으면 좋겠다고 투덜대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는 그 친구와 저, 그리고 그 친구의 고등학교 동기이자 제 대학 동기인 여자 사람이 앉아 있었고요.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저와 제 대학 동기가 ‘그럼 지금 넌 여기서 왜 우리랑 만나고 있는데?’ 하니까 그 친구는 당황하더군요. 애인의 이성인 친구라고 하면 친구보다 ‘이성’이 먼저 보이고, 내 이성인 친구는 이성이기 이전에 ‘친구’니까요.

바꿔 놓고 생각해 보세요. 당신을 위해서라면 애인이 당연히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 ‘남자들’ 혹은 ‘여자들’은 당신 애인에게는 그냥 ‘친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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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무리 6이라고 설명해도 9라고 알아듣니… 잠깐… 6이랑 9…?

유명한 모 남자 배우가 방송에서 아내분께 청혼할 때 ‘너 내 거 하자’라고 했다는 걸 보고 불편함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하긴, 뭐 관용적 표현이니까. 내가 예민한 거겠지 하고 넘겼죠. 그런데 몇 분 뒤에 ‘아내가 000, 000 등의 남자배우와 대학 친구라 친한데, 대학 동창 모임에 나가서 그들과 대화하며 웃는 모습에 짜증 났다. 내 여자는 다른 남자한테 웃어 주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사회자가 ‘000씨는 여자분들이랑 술자리 등 마주해야 할 일이 있을 때 전혀 웃지 않으세요?’ 물어보니 

“전 웃죠. 전 괜찮아요. 전 남자니까.”

이뭐병…

이뭐병…

그런 말을 방송에서 당당히 할 수 있다는 점, 또 이를 ‘상남자’라며 포장하는 방송. 갑갑했습니다. 이건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매체상에서 흔히 남자는 ‘넌 내 거야’, 여자는 ‘난 네 거야’라고 한다는 점에서 이건 젠더 문제이기도 합니다. 작년에 우리나라를 강타했던 ‘썸’의 가사가 대표적입니다. 남자는 여자에게 “내 꺼인듯 내 꺼 아닌 내 꺼 같은 너”2)편집자 주: 비문입니다. 원래는 ‘내 거인듯 내 거 아닌’이 맞습니다. 가사이기 때문에 그대로 옮겨 적었습니다., 여자는 “니꺼인 듯 니 꺼 아닌 니꺼 같은 나”라고 하죠. 에이트의 이현이 부른 “넌 내 거 중에 최고~ 내가 가진 것 중에 최고”라는 노래 가사도요.

언어가 생각에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큰 만큼, 이는 사람들 마음속에 ‘연애하게 되면 여자는 남자 소유가 되는 거구나’라는 생각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아니, 이 가사들에 대한 문제가 한 번도 제기된 적 없다는 점에서 이미 사람들 머릿속이 ‘여자는 남자 것’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고 있을 가능성이 높죠. 어릴 적 인생 최초의 덕질을 하던 핑클의 진이누나랑 유리누나가 늘 상큼한 윙크를 날리며 불러주던 가사 구절이 이를 증명해주는 듯합니다. “난 니 거야~”

난 니 거야~ 이때는 그냥 우왕 누나 예뻐영 하악하악했었다. 이만큼 대중매체, 특히 인기가요의 가사가 사람에게 여과없이 흡수되는 정도는 크다

난 니 거야~ 이때는 그냥 우왕 누나 예뻐영 하악하악했었다. 이만큼 대중매체, 특히 인기가요의 가사가 사람에게 여과없이 흡수되는 정도는 크다

다시 돌아와서, 지난 글(순결이 뭔가요, 먹는 건가요?)에도 밝혔듯이 두 사람이 사귄다 해서 한 사람이 될 수는 없어요. 이미 수십 년을 따로 살아왔고, 결혼을 한다 해도 두 사람은 각자의 인생을 따로 살아갈 거예요. 절대 일치할 수 없는 두 삶을 ‘사랑하니까’라는 말로 억지로 일치하게 하려 해 봤자 상처만 생기고, 나중엔 그 상처에 염증이 생겨 돌이킬 수 없는 상태까지 갈 수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말로 사랑하는 사람을 옭아매고 소유하려 하지 마세요. 사랑은 의심과 간섭이 아닌 믿음으로 유지됩니다. 믿을 자신이 없다면 헤어지세요. 의심하는 이를 위해서도, 의심받는 이를 위해서도 그 편이 낫습니다.

뱀발

이 글을 대나무숲에 올리고 나서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 잘 봤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으로 타인의 사랑을 의심으로 비하하지 마세요’라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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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글에 대한 반박이 아니라 사랑은 믿음으로 유지된다, 는 ‘한 문장’에 대한 반박이라 믿고 싶습니다. 그건 내 주관이 맞으니까요. 다만 이분들이 ‘간섭’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정확히 모르시는 것 같아 간단히 설명드리려 합니다.

간섭하고 간섭당하는 게 좋다면야 누가 뭐랍니까.3)합의하에 하는 SM플레이는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닌 것과 같은 거죠 당하는 이가 좋아한다면 그건 간섭이 아니죠.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의심’과 ‘명령’을 일방적으로, 혹은 쌍방으로 가하는 것. 이것이 제가 말한 ‘사랑하는 사이에서 지양해야 할 간섭’입니다.

편집자인 저년이 님의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마칩니다.

‘엄마가 남자친구 사귀지 말라면 간섭이라고 싫어하면서 네 남친이 너랑 십년 알아온 애 만나지 말라고 하는 건 어떻게 고민할 수가 있냐… 엄마가 널 남친보다 덜 사랑하는 것도 아닌데…’

교정 및 편집 / 저년이

글 / 아날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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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댓글로 들어오셨던 질문들, 하나하나 댓글을 달 수 없어 이 글에 뱀발로 달아 놓았으니 만약 제 답이 궁금하신 분들은 뱀발까지 제발! 빼놓지 말고! 읽어 주세요!!
2. 편집자 주: 비문입니다. 원래는 ‘내 거인듯 내 거 아닌’이 맞습니다. 가사이기 때문에 그대로 옮겨 적었습니다.
3. 합의하에 하는 SM플레이는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닌 것과 같은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