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축제 언제 해?”

다섯 살 즈음 되어보이는 꼬마가 창문에 붙어 칭얼대며 물었다. 12월 5일 오후 한 시, 동화면세점 근처 KFC. 미스핏츠 특별취재팀은 천진난만한 꼬마의 질문에 눈길을 교환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응, 오늘 하는 건 축제가 아니라 시위란다.” 시위 취재 준비물로는 인터뷰를 위한 스케치북과 마커 외에도, 캡사이신에서 나를 보호가기 위한 마스크와 물대포를 대비한 카메라 방수팩과 우비. 핫팩. 지난 11월 14일에는 취재 끝무렵에 심한 두통을 앓았으므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진통제와 감기약까지도 고루고루 챙겼다. 마지막으로는 목에 프레스증을 걸었다. 지난 시위때 이 프레스증은 우리의 취재할 권리를 보장해주지 못했다. 경찰은 비웃듯 우리에게 ‘한국기자협회의 공식 기자증’을 요구했고, ‘좋은 데서 찍으시라’며 우리를 현장 바깥으로 몰아냈다. 말하자면 이 프레스증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독자들이 많지 않은 미디어지만 오늘 이곳에서 언론으로서 해야 할 우리의 역할을 충실하게 하자는 작은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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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미스핏츠 특별취재팀

오늘은 또 어떻게 될까, 어쩐지 비장해진 마음과 자그마한 희망을 품고 우리는 거리로 나섰다.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동화면세점 앞의 좁은 공간에서는 집회를 반대하는 집회가 열리는 중이었다. 플랜카드의 빨간 글씨가 눈에 띄었다. “나쁜정치, 국회개혁으로 바로 잡자!!” 어이쿠, 웬 일로 옳은 말씀을 하시나 고개를 끄덕이다가 깜빡 속을 뻔 했다. “민생/경제 외면도 모자라 불법폭력시위 부추기는 나쁜정치, 국회개혁으로 바로 잡자!!” 저기, 오타 난 것 같아요. 불법폭력시위를 불법폭력진압으로 고치면 되시겠습니다.

시청광장으로 향하는 길에 본 광화문은 3주 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우선 차벽이 없었다. 시청으로 가는 길목길목에는 사람들이 모여 작은 집회를 열고 있었다. 먼저 국정교과서 반대 집회가 있었고, 종교인 모임이 있었고, 전국언론노동조합 사람들도 있었다. 바닥에는 ‘임시 치료소’를 안내하는 표지가 붙어있었다. 손에 작은 피켓과 꽃다발을 든 한 여성분이 우리에게 집회 장소로 가는길을 물었다. 교통안내하는 경찰들만이 간간히 눈에 띄었다. 3주 전에는 집회 시작도 전부터 차벽과, 높다란 폴리스라인과, 살수차와, 소화기와, 밧줄들과, 헬멧과 방패와, 용도를 알 수 없는 도구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던 곳이었다. 그 곳에서 꽃다발을 든 사람을 만났다. 기분 좋은 설렘이었다. 우리는 시청광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지난번의 무기력함을 딛고 과연 몇 명이나 광장으로 나올까 했던 고민이 무색하게도 시청광장은 사람들로 복작였다. 광장 한 가운데에 공사중인 스케이트장을 피해 마련된 단상에는 금속노조 사람들이 늘어서 있었고, 곧이어 농민들을 비롯한 사람들이 속속들이 집회 장소로 도착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사람들은 저마다 하나씩 가면을 쓰고 있었다. 하얀 민무늬 가면, 영화 V for Vendetta로 유명한 가이 포크스 가면부터 때이른 산타클로스까지. ISIS라며 체크무늬 스카프로 눈만 남기고 얼굴을 꽁꽁 감싼 사람도 있었다. 그 가면들은 채증이 무서워서 얼굴을 가리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가면을 쓴 것 만으로도 훌륭한 자기주장이 되었다. 마치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분을 비웃고 있는 것 같았다. 언론노동조합 가면의 입에는 검은색 테이프가 X자로 붙어있었다. 자리에 함께 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아버지를 대신해, 아버지의 얼굴을 크게 인쇄해 쓰고 온 대학생도 있었다. 재미있는 가면들과 마주칠 때마다 취재중이었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깔깔 웃었다. 유쾌한 창의력 대장들! 하지만 개인적으로 꼽은 이 날의 인기상은 닭대가리 탈에게 돌린다.

닭가면 '저때문에 고생이 많습니다'사진 /다홍

닭가면 ‘저때문에 고생이 많습니다’사진 /미스핏츠 특별취재팀

차벽이 없었으니 사람들은 꽃을 들었다

대오를 좁혀도 사람들이 광장에 다 들어오질 못하자, 마이크를 잡은 사람이 경찰에게 도로를 집회에 내어줄 것을 요청했다. 형광노란색 제복을 입은 경찰 한 무리가 우르르 뛰어오더니 노란 팻말로 폴리스 라인을 쳤다. 집회를 제한하는 건가 싶었는데, 집회가 아니라 차량을 제한하는 것이었다. 몇몇 시민들이 손이 모자란 경찰들을 도왔다. 프레지던트 호텔 앞 도로까지 사람들이 가득 찼다.

집회 장소 주변은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 방패를 들고 선 경찰들이 한 무리 있기는 했지만 지난번만큼 기합이 들어간 상태가 아니었다. 경찰들은 행진 대오를 앞서며 도로를 열고 차량을 통제해 주었다. 시위대에게 길을 안내해 주기도 했다. ‘채증’하고 크게 씌여진 옷을 입은 경찰들은 켜지지 않은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동료와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아하, 원래 공식 채증은 저런 식으로 이루어지는구나. 보이는 면면들마다 지난 시위때와는 너무도 달라서 문화컬쳐를 느꼈다. 아니, 같은 나라 같은 장소가 맞는가… 시민교육의 현장같았다. 여러분, 집회결사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의 시위는 이런 것이랍니다. 공권력은 시민들의 표현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를 이렇게 보장해야 한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차벽은 없었다. 차벽이 없었으니 신음소리도 비명소리도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대신 우리가 내는 목소리가 들렸다. 차벽이 없었으니 지나가는 시민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행진을 구경했다. 물론 차벽이 없었으니 지나가는 사람들의 길이 막혀 불편한 일도 없었다. 차벽이 없었으니 다치는 참가자도, 다치는 경찰도 없었다. 차벽이 없었으니 언론사들은 차벽 위에 올라서 시민들을 내려다보는 대신 행진과 눈높이를 맞추어 카메라를 들었다. 차벽이 없었으니 차벽을 치우기 위한 밧줄도 없었고, 물대포가 없었으니 횃불도 없었다. 차벽이 없었으니 사람들은 꽃을 들었다. 3주 전에 보았던 광기와 폭력은 없었다. 이미 수많은 언론사들에서 보도했듯, ‘평화로웠다’.

“나는 민주주의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걸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려고 이곳에 있습니다”

오후 네 시, 한바탕 탈춤과 사물놀이가 있은 뒤 백남기 농민이 입원해 있는 혜화를 향한 행진이 시작됐다. 행진의 선두에는 초록색 바람개비를 든 대학생들이 섰다. 뛰는 게 힘들다며 웃는 학생들의 손에서 바람개비가 팔랑팔랑 즐겁게 돌아갔다.

한바탕 축제였다. 행진 대오 중간중간에 풍물패들이 놀았고, 들리는 가락에 맞춰 어깨가 들썩거렸다. 가다가 을지로 쪽 청계천 근처에서는 아예 탈춤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자리에 와서 처음으로 흰 천을 쥐어 본 사람들도 모여 다함께 흥겹게 덩실덩실 뛰었다. 아, 너무 신나잖아! 오늘은 특이사항도 없어보이는데 그냥 여기서 취재 끝내고 같이 뛰면 안 될까? 그래도 애써 발걸음을 재촉해 혜화까지 왔는데, 더는 못 참고 ‘놀아’버리고 말았다.

 "놀아오 차벽 막혀 누구나" 사진/블리

“놀아오 차벽 막혀 누구나” 사진/미스핏츠 특별취재팀

혜화역, 행진의 집결지 근처 마로니에 공원에는 집회에서 놀고싶은 어른이들을 위한 작은 놀이판이 펼쳐져 있었다. 땅따먹기가 있었고 줄넘기 줄이 돌아가고 있었다. 시위가 차벽에 막힐 것을 대비해 놀아볼 계획이었나보다. ‘근데 만약에 차벽을 설치 안하면 어쩌지?’ 다행스럽게도 차벽이 없는 시위가 되었지만. 행진에 참여했다가 한숨 돌리던 사람들이 줄넘기를 뛰고 있었고, 나도 결국 참지 못하고 카메라를 던져놓고 뛰어들었다. 진행자가 인터뷰를 요청하길래, 인터뷰 하러 왔다고 대답했다. 그러면 줄넘기를 뛰며 인터뷰하란다. 그래서 정말로 했다.

(쿵) (쿵) “어디서오셔써여어어어어엌!!!!!” (쿵) (쿵) “시골에서! (쿵) 왔습니다아아아앜!” (쿵) (쿵) “여기서뭐하세여어어어어어ㅓ어엌!!!” (쿵) (쿵) “바끄녜퇴진(쿵)외치러왔습니다아아아아앜!!!!” (쿵) (쿵)

참말로 재미있었다. 시위대는 자유가 보장된 공간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북을 두들겼다. 흔히 생각하는 집회의 형태를 벗어나 각자가 즐거울 수 있는 방식으로 시위에 참여해 목소리를 내는 것은 몹시도 멋진 광경이었다.

지우와 세일러문 사진/수련

지우와 세일러문 사진/미스핏츠 특별취재팀

정말로, 지우와 세일러문의 말대로 민주주의는 재미있는 것이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재미를 누리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행진의 선두는 두 시간을 걸어 여섯시 즈음에 목적지인 혜화에 닿았다. 하지만 사람들이 어찌나 많았는지, 행진의 끄트머리는 아직도 시청을 빠져나오지 못 했다고 했다. 사람들은 모여 앉아 촛불을 켜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대학로부터 시청까지 길게 늘어선 행렬은 놀랍게도 두시간도 더 이어졌다. 참가자들이 모여 설 자리가 부족하자 경찰들이 폴리스라인을 열어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연단에서는 여러가지 발언들이 있었고, 마지막으로 누워 계신 백남기 농민에게 우리들의 목소리가 닿기를 바라며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주최측 행사는 여덟 시 반쯤 끝났다. 시민들은 부지런히 주변의 쓰레기를 주웠다. 무대가 해체되고 다시 차들이 도로를 달리기까지는 십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누군가의 말을 빌려, 즐거운 ‘민중총산책’이었다.

” 꽃을 들고 온 개신교 자매는 나에게 가볍게 평화를 기도하고 떠났다. 3주전의 아비규환이 마치 먼 과거의 일 같았다. 시위대 맨 앞에서 터벅터벅 혜화로 향하는 그 순간까지 나를 막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가 시위대에 섞여 걸어가는 나에게 꽃 한 송이를 선물했다. 나는 그 꽃을 실시간으로 친구들에게 자랑했다. 너무 추워서 커피도 한 잔 사마셨다.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혜화에 도착하고 마로니에 공원에서 사람들이 모여 신나게 노래부르고 웃고 떠들고 술을 마시는 광경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분명 3주전에도 울었던 것 같은데 사람은 슬퍼도 울지만 가슴이 찡해도 울 수 있다는 걸 간만에 느꼈다.”

 – 미스핏츠 특별취재팀 블리

력시위 불법시위 프레임을 걷어내면 각자의 이야기가, 목소리가 보이고 들린다

“폭력시위 불법시위 프레임을 걷어내면 각자의 이야기가, 목소리가 보이고 들린다. 그곳에는 농민도, 비정규직도, 그리고 학생도 있었다. 노동개혁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철회를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 대신 차벽이나 물대포는 없었다. 그들이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비로소’ 들을 수 있는 시위였다. 그래서 오늘의 시위에는 각자의 이유가 있었다. 시위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외치고 싶은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동안 (국가가) 들을 수 없게 막고 있던 목소리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잘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 들으라고 한 말은 듣는 것의 예의다.” 

– 미스핏츠 특별취재팀 두선

“집회의자유 보장하라 복면금지 철회하라”
“백남기를 살려내라 물대포를 추방하라”
“경찰총장 파면하라 국민 앞에 사죄하라”

이번 시위에 전면적으로 드러난 요구사항은 지난 1차 민중총궐기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들이었다.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모여들었다. 파란 조끼를 입은 금속노조 분은 노동개악을 저지하기 위해 포항에서부터 오셨다고 한다. 옷 위에 쌀푸대를 덧입은 농민분들은 농업의 평화를 위해 쌀 수입을 반대하러 이 곳에 오셨단다. 예술가들은 검열 반대를 외치며 이단옆차기 퍼포먼스를 했다. 세월호 유가족 분들은 노란 가면을 쓰고 참석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600일이 지났지만, 진실은 여전히 물 속에 가라앉아 있다. 토요일인데도 교복을 입은 학생들은 ‘민중총궐기 청소년 행동’에서 만난 친구들과 나란히 피켓을 들었다. “올바름은 국가 권력이 정하는게 아닙니다 –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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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이 우려했던) “박근혜는 퇴진하라”는 ‘과격한’ 주장도, “이석기를 석방하라”는 ‘불온한’ 주장도 물론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원래 시위란 국가권력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자신만의 이유를 외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데에 의의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내가 동의하건 동의하지 않건, 그들에게는 그들이 옳다고 믿는 바를 주장할 자유가 있다. 시인 김수영은 ‘김일성 만세’를 인정하는 것이 한국 정치의 자유라고 말했는걸!

몇 가지 구호로는 정리되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이유들이 함께 했다. “미래를 위해서” 나왔다며 아빠 손을 꼭 붙들고 있던 아홉 살 민희(가명)가 있었고, 아빠가 좋은 구경 시켜준대서 따라 나왔다던 열한 살 세준이(가명)가 있었다. “궁금해서” 나왔다던 청년도, “빨갱이라서” 나왔다던 대학생도 있었다. 콧수염 안경을 쓴 두 친구는 “복면 금지? 그래, 나 잡을테면 잡아봐!” 하고 웃었다. 혹여나 있을 부상에 대비해 의료전공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구성한 임시 진료소가 있었다. 대오에 섞여든 사복경찰을 쫓아내고 시민들을 보호하던 인권침해감시단이 있었고, 경찰들의 취재 방해를 막기 위한 취재방해감시단도 있었다. 군인권센터에서는 “의경은 인간방패가 아니다”는 피켓을 들고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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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보칸… 포토…zone… 주어는…없습니다… 사진/미스핏츠 특별취재팀

물론 국회의원들도 있었다. 시청광장에서 약간 떨어진 무교로에는 평화지킴이를 자처한 모 대표를 비롯한 모 당 의원들이 공사다망하신 중에도 시간을 내어 현장에 나와서,  파란 목도리를 두르고 꽃 한송이씩을 쥐고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러니까, 웃고만 있었다. 경찰의 불법 진압을 좌시하지 않을거라는 의지를 그 해맑은 미소만으로 보여주고 싶었나. 한참을 방긋방긋 웃다 “대표님 사랑합니다!” “힘내세요!” 라는 함성에 가끔씩 인사도 하고 악수도 하는 모습이 마치 팬미팅을 방불케 했다. 한말씀 하실까 싶어서 한참을 기다렸는데, 관계자의 “말씀 별도로 없으세요 오늘. 다른 데서 하고 이동하신 거예요” 라는 말을 듣고는 돌아나왔다. 행복한 포토존이었다.  그 곳에 계신 당신의 이유를 묻고 싶었다.

어느 한 쪽도 ‘불법 진압’이나 ‘폭력 집회’의 프레임에 말려들지 않으려고 경찰도 시민도 이를 악물었던 집회였다. 덕분에 어떠한 잡음도 없이 끝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집회가 백남기 농민 문제와 살인진압을 전면에 내세우고 비판하지 않았다면, 이 행진이 혜화로 향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광화문과 청와대로 행진했대도 차벽이 없이 끝날 수 있었을까? 궁금해졌다. 오늘의 시위가, 다음 시위에서의 경찰의 평화로운 협조를 보장할 수 있을까?

사실 집회 시위의 목적은 요구나 주장을 널리 표현하는 데에 있지, ‘평화로운 시위’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니다. 경찰은 폭력집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몇 번이나 이번 집회를 막으려고 했지만, 시위대는 경찰 차벽만 없다면 충분히 평화로운 집회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해 냈다. 그렇게 겨우 시위대는 폭력집회의 프레임을 벗어났다. 반쪽짜리일지언정 이것은 분명한 성공이다.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이유로 한 자리에 모였고, 다채로운 목소리를 냈다. 그것이 진짜 성공이었다.

칭찬은 필요없다

TV에서도 신문에서도 칭찬 일색이었다. ‘평화적 집회’, ‘평화 시위’……. 온통 ‘평화’라는 말로 뒤덮인 헤드라인에서는 이번 시위의 주요 의제를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폭력 대신 ‘풍자’, 확 달라진 집회”.

1차 총궐기때 언론은 ‘폭력 시위’를 비판했고, 이번에는 ‘지난 14일 집회로 큰 교훈을 얻어’ 평화시위가 이루어졌다며 떠들었다. 하지도 않은 잘못으로 혼났다가 당연한 결과로 칭찬을 들은 셈이다. 과잉 진압이 없었으므로 잡음 없는 집회는 마땅한 수순이었다. 이 곳에서 언론이 해야 할 일은 그런 집회를 칭찬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 집회에 어떤 목소리가 나왔는지 전하는 것이다. 그것이 뉴스다.

현장에서 만났던 영국 BBC 기자는 “왜 이곳에 왔느냐”는 물음에 “We do news. This is news.(우리는 뉴스를 보도합니다. 이것은 뉴스입니다.)”하고 대답했다. 그의 뉴스는 “South Korea protest : Seoul rally against Park Geun-hye(서울에서 박근혜 반대 집회가 열리다)1)http://www.bbc.com/news/world-asia-35014582” 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다.

편집 및 교정/ 랫사팬더

글/ 다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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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www.bbc.com/news/world-asia-350145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