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광화문광장.

솔직히 고백하면 국정교과서나 세월호같은 큼직한 (그리고 내 직접적인 관심사인) 사안들 말고는 이번 집회는 누가 주최하는지, 정확히 어떤 안건들을 다루는지는 파악조차 하지 못한 채로 길을 나섰다. 다만 완전한 정답을 찾을 때까지 확신없는 침묵 속에 잠겨 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취재를 핑계로 일단 나가보기로 했다. 방에 앉아서 고민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나가서 들어나 보자. 듣고 판단하자.

한시 반 쯤 도착한 종로 3가는 평소와 같은 모습이었다. 예쁘게 차려입은 커플들은 데이트 중이었고, 맥도날드는 늘상 그렇듯 나이드신 어르신들로 붐볐다. 걸어가면서 두리번거렸다. 조금씩 눈에 띄었다. 회색 조끼, 머리에 질끈 맨 빨간 띠, (정확한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어느 노조의 깃발과 그 아래 선 노조원들. 누군가는 이를 놓고 불온의 냄새가 난다고 할 것이다. 그래, 불온이었고, 나는,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설레기 시작했다. 집회 시위에 자주 나가지는 못했지만 시위라는 말을 들으면 늘 설레는 것이다. 아- 드디어 오늘일까? 모일까? 바뀔까? 그 날이 오늘일 수 있을까? 변화를 향한 막연한 열망.

광화문이 가까워질수록 분위기는 더욱 날카로워졌다. 누군가들의 날선 감정들을 보고 있으면 휩쓸려서 같이 울컥하게 된다. 모여있는 노조원들 앞에는 무엇때문에 거기 있는지 알 수 없는 ‘폴리스라인’이 씌여진 노란 플라스틱 저지대가 놓여있었고 인도에는 헬멧과 방패로 무장한 경찰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정말로 불온이라고 불러 마땅한 것이 어수선하게 공기중을 떠돌아다녔다. 그것이 – 분위기가, 감정이, 에너지가, 뭐라고 명명할 수 알수 없는 하여튼 그것이 – 내게로도 거세게 밀려들어왔다. 나는 친구의 손을 절실하게 매달리듯 꽉 쥐었고 되는 대로 지껄였다. 그렇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하이바 너머로 보이는 얼굴들은 다들 앳되었다. 의경인 내 친구들 몇은 종로에서 근무했었고, 근무하는 중이었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눈물이 자꾸 치밀었다.

나는 멘동과 함께 오후 네시 반쯤 광화문 광장으로 나섰다. 시내 곳곳에 나눠서 열리는 집회는 네 시에 광화문에 집결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광장은 휑했다.

31제일 먼저 우리 눈 앞에 보였던 것은 이순신 동상을 마주하고 세종대로 사거리를 길게 늘어서 막고 있는 경찰차벽이었다. SNS로 경찰들이 미리 차벽을 치고 있다는 건 확인했지만 그것을 눈 앞에서 맞닥뜨리는 건, 그리고 내가 갈 길이 막혀있는 모습을 보는 건 또 달랐다. 차벽 너머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경찰차와 차 사이에는 한 사람만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통행로가 뚫려있었고 방패를 든 경찰들이 그 앞에 주르르 서서 사람들을 안내했다. 안내받는 기분보다는 감시받는 기분이 들었다. 흰 우비를 뒤집어 쓰고 사복을 입었지만 분명히 경찰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빨간 불이 들어오는 캠코더를 들고 있었다. 틈새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정면으로 잡는 위치였다.

차벽을 통과하면 시위대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우리의 예상은

보기 좋게 틀렸다. 차벽 너머, 동화면세점 앞은 휑뎅그렁하게 비어있었다. 폴리스라인이 겹겹히 쳐진 탓이었다. 동화면세점 건물 앞에는 작은 집회가 두 개 열리고 있었다. 광화문까지 들려오던 요란한 소리의 진원지였다. ‘국정교과서 반대 반대 집회’. 그 앞에도 경찰들이 늘어서 있었다. 집회측에 등을 돌리고 방패를 도로로 향하고. 경찰들의 ‘보호’를 받는 집회는 참으로 ‘평화롭고’ 모범적이었다.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사학년이라는 어느 학생이 연단에 올라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그런데 저들은 우리 대한민국이 뿌리부터 잘못되었다고 말합니다!” 하고 외쳤다. 멘동은 “맞는 말 하네, 그러니까 바꾸겠다는데 왜” 하고 대답했다. 사람들은 박수와 함께 태극기를 흔들었다. 보기좋게 세팅된 플라스틱 의자들은 삼분의 이가 비어있었다.33

청계광장 교차로 앞에는 두번째 차벽이 있었다. 그 너머에서 시청광장에서 행진해왔을 시위대의 소리가 들렸다. 당연하게도 길은 막혀 있었다. 꽤 많은, 적어도 이삼십여명은 되어보이는 사람들이 각자의 이유로 경찰들에게 항의하고 있었다. 일부는 정말로 지나가고 싶었을 것이고, 일부는 시위에 합류하고 싶었을 것이었다. 소용이 없었다.

우리는 높은 벤치에 올라가 차벽 너머의 상황을 찍어보려고 했다. 경찰차는 정말로 높았고 보이는 것이라곤 시위대가 흔드는 깃발 끄트머리 뿐이었다. 깃발이 아니었다면, 소리가 아니었다면 거기에 사람들이 있다는 것조차 알 수 없었을 것이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집회란 자기 목소리를 낼 권리를 가진 시민들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장 아니었나. 대한민국 헌법에 모든 국민은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며! <집회를 통하여 국민들이 자신의 의견과 주장을 집단적으로 표명함으로써 여론의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집회의 자유는 표현의 자유와 더불어 민주적 공동체가 기능하기 위하여 불가결한 근본요소에 속한다>면서!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다. 완벽한 단절이었다.

우리는 방향을 바꿔 청계광장 쪽으로 향했다.

텅 빈 청계광장 교차로는 경찰들에게 점거당해 있었다. 경찰차 바퀴들에는 두꺼운 밧줄들이 묶여있었고 무장한 경찰들을 소화기나 용도를 알 수 없는 연장들을 쥐고 있었다. 하루종일 폴리스라인의 등 뒤만 보고 온 날이었다. 벽은 아주 높았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넘지 못할 정도로 높았다. 무엇을 막으려는 것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청계광장쪽 역시 경찰들이 늘어서 있었다. 내 눈 앞에서 길이 막혔다. 채널A 건물 옆 난간을 통해 몇 사람이 저쪽으로 건너가자 어떤 경찰이 ‘올라가서 막아’ 라고 지시했고, 곧 다른 경찰이 건물 난간을 기어올라갔다.

광장에서 시위대가 이쪽으로 행진해 오는 것을 맞아 취재할 계획이 어그러진 것도 모자라, 애초에 시위대 코빼기도 구경하지 못하게 생겼다는 생각에 우리는 다급해졌다. 뭘 해야하지? 뭘 취재하지? 무슨 말을 해야하지? 일민미술관 앞에서 친구를 만났다. 광화문에 나왔다가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경찰들이 길을 다 막아서 어디로 가야할 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지하철 5호선이 광화문 역에 서지 않고 통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경찰들이 해치광장으로 통하는 9번 출구를 막아서 사람들이 역사 안에 갇혀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1방향을 바꿔 혜화쪽에서 올 시위대들이 있을 종로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몇몇 어르신들이 교통안내를 하는 경찰관 하나를 붙잡고 통행 불편을 항의하고 있었다. 경찰관은 ‘저희는 윗선에서 시키는대로’만을 반복했다. 정말로 경찰들은 윗선에서 시키는대로만 했을 것이다. 이 사태를 불러온 것은 개개인들의 경찰이 아니라 그들 뒤에 숨어있을 권력이었다. 그것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은 그렇게밖에 항의할 수 없었다.

종로쪽으로 가는 길 역시도 일찌감치 막혀 있었다. 교묘하게도 주차해놓은 버스 틈새를 넘겨다봤는데, 그 쪽 역시도 텅 빈 공간에 형광색 번쩍이는 조끼를 입은 경찰들만이 서 있었다. 뭐라도 찍어야 할 것 같아서 그 틈새를 핸드폰으로 촬영했다. 찰칵찰칵 소리가 나자 틈새 맞은편에서 경찰들이 이쪽을 들여다보더니 곧 방패로 틈새를 가렸다. 아니 뭐가 있어서 가리는건데? 공무 집행에 떳떳하다면 찍히지 못할 이유가 없는거 아니야?

그 이후로 잠시 이순신동상 앞에 모여서 폴리스라인에 막혀서 역시 집회로 진입하지 못한 가두 취재팀과 잠시 모였다가 개별로 흩어졌다. 아까 막혀있었던 종로 쪽을 다시 가 봤다. 르메이에르 빌딩 앞 횡단보도를 기점으로 폴리스라인에서 시위 참가자들과 경찰들이 대치중이었다. 기침이 났다. 추워서 감기가 들려나 했더니 공기가 따끔거리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마스크를 꺼내 썼다. 역시 폴리스라인 뒤였고, 그 너머는 깃발 끄트머리들만 보일 뿐 상황이 전혀 파악이 안 됐다.

24벽 뒤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경찰들이 물대포를 쏘는 모습을 보았다. 이제껏 나는 물대포 물대포 해서 정말로 소방차를 끌어다가 소방호스로 뿌려대는 건줄 알았지. 경찰 로고를 단 살수차는 사람을 쏘기 위해, 시위를 탄압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기계였다. 이 정도로 본격적일 줄은 몰랐다. 멘동은 물에 최루액을 섞어서 물줄기가 파랗다고 화를 냈다. 그런 것을 눈 앞에서 처음 보았다. 어떤 단어로 써야 할 지 모르겠다. 폭력? 야만? 미친 짓? 시위 현장의 처참함에 대해서는 사진으로 많이 봐 왔지만, 아니, 적어도 눈사람들이 물줄기를 맞고 쓰러지거나 피를 흘리는 모습은 없었으므로 내 눈으로 보이는 처참함은 사진들보다 덜한 것이었지만, 현장에서 그 무게를 실감하기는 처음이었다. 무거웠다. 지나치게 육중한 것에 짓눌리는 기분이었다. 뭘 해야 할 지 생각하기는 커녕 무슨 생각을 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멘동과 둘이 광화문 광장을 둘러싼 폴리스라인의 지도를 그려보았다. 이순신 장군상이 보는 방향을 따라 서면, 앞으로 태평로는 청계광장 교차로에서 이중으로 막혔고 (나중에 듣기엔 그 뒤로도 차벽이 두 개 더 있었다고 했다) 청계광장쪽도 막혔다. 왼쪽의 세종로는 르메이에르 빌딩 앞에서 막혔다. 오른쪽 새문안로는 금호아시아나 본관 앞에서 막혔다. 차벽 사이에 한 사람이 간신히 지나다닐만한 통로를 뚫었고 경찰들의 감시 하에 사람들은 간신히 틈새를 지나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 넓은 도로가 휑하니 빈 것이 신기했는지, 그 도로를 둘러싼 경찰차들이 신기했는지 몇 명의 외국인 관광객들이 핸드폰으로 사방을 찍고 있었다.

등 뒤의 광화문 광장은 세종대왕상 바로 뒤에서 막혀있었다.

32폴리스라인은 양쪽으로 길게 뻗어있었는데, 한쪽으로는 세종문화회관 옆 골목을 끼고 반대쪽으로는 주한미국대사관 앞 골목까지 늘어서 있었다. 진득한 연고같은 기름을 바른 차벽은 이쪽을 향해 세워져 있었다. 다른 세 방향의 폴리스라인이 광화문광장으로의 진입을 막는 것이었다면 이 폴리스라인은 광화문 광장에 혹시라도 집결할 시위대가 광화문쪽을, 그러니까 청와대쪽을 향할 것을 막는 바리케이드였다. 정말로 시위대가 청와대를 향했고 혹여나 있을 안전상의 문제로 그것을 제지하기 위해 경찰과 충돌이 있었다면 그것은 이 지점이었어야 했다. 적어도 광화문에서는 모일 수 있었어야 했다. 물론 그 폴리스라인은 시위대의 깃발 하나도 구경 못 한 채 해체되었을 것이다.

르메이에르의 폴리스라인 뒤편으로 촛불들이 모이는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그쪽으로 움직였다. 몇십여명, 많아도 백 명 남짓한 인원이었을 것이다. 광화문과 세월호 광장에서 행렬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참지 못하고 촛불을 들고 모여든 것이었다. 경찰들이 급박하게 뛰어다니며 새로운 폴리스라인을 만들고 있었다. 우리는 경찰들의 뒤를 쫓아 뛰어갔고 결과적으로는 두 폴리스라인 사이에 끼인 꼴이 되었다.

7경찰들은 세 방향을 막았다. 종로 쪽에는 벽을 세웠고, 우회해서 르메이에르와 광화문D타워 사이의 좁은 골목쪽으로 밀려오는 사람들은 스크럼을 짜서 막았다. 정확히 몇 명이나, 얼마나 많았는지는 보이지 않아서 볼 수가 없었다. 두 방향에서 격렬한 충돌들이 있었다. 벽 너머로는 물대포를 쏘아댔고 오른쪽에서 “쏘지마! 쏘지마!” 하고 응수했다. 물대포는 점점 더 격해졌다. 오른쪽에 사람들은 점점 더 많아졌고 일순간 인도를 다 점거한 것 처럼 보였다. 따라서 경찰들도 조급해졌다. 구분하기 쉽게 핑크색 마름모꼴 무늬를 단 여경들, 빨간 스티커를 단 부대들이 충원됐고 무전기를 통해서 다른 곳에서 인원 지원을 바란다던가, 여기서 인원을 빼면 무너진다던가 하는 소리들이 들렸다. 희미한 희망이 보였다. 폴리스라인은 아까보다 기울어져 있었다. 경찰들이 버스 바퀴에 매단 밧줄에 달라붙어 줄다리기를 해댔고 반대편에서는 버스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무너질까? 뚫릴까? 경찰들은 소화기를 가져다놓았고 밧줄을 차에 묶었다. 우리는 닥치는대로 일단 찍었다. 뭐라도 찍어야지 싶었다. 무늬 없는 밋밋한 검은 제복을 입은 어린 경찰이 다가와서 기자십니까? 하고 물어봐서 프레스증을 보여주었다. 무전기로 기자시랍니다. 하고 보고했고 폴리스라인 차 위에 올라간 사람이 이쪽을 내려다보며 무전기에 대고 뭐라고 짜증을 냈다.

상황이 점점 더 어지러워졌고, 이번엔 나이가 많아보이는 경찰관이 다가왔다. 기자협회의 기자증을 요구했고 기자증 대신 명함을 보여줬다. 기자증도 없이 명함으로 뭘 기자라고 증명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기자라고 자처하니 ‘안전하게’ 모시겠단다. “찍지 말라는게 아니에요. 저기 스타벅스 2층 올라가서 찍으시라고.” 여기는 위험하니까, 각목들이 날아오니까. 멘동은 촬영 중인 핸드폰을 들고 꽤 오래 버텼다. 나는 무서웠다. 저희 안전 저희가 책임지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저쪽엔 다른 팀이 있습니다 말고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원래 경찰이 신분검사 할 때는 관등성명 먼저 요구하랬는데, 하는 생각이 났지만 말할수가 없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다른 사람들이 끼어들었고 뭐가 문제냐, 기자가 찍겠다는데, 시민에게는 원한다면 원하는 곳에 있을 수 있는 권리가 있는거 아니냐, 하고 나 대신 항의해주었다. 나는 입을 다물고 그 장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녹음중인 핸드폰만을 꽉 쥐었다. 무서웠다.

17결국 우리는 인도로 쫓겨났다. ‘안전한’ 곳으로 모시겠다는 말이 우습게도, 우리가 쫓겨 간 곳은 몸싸움이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는 곳이었다. 한 겹도 안 되는 시민들이 등을 돌리고 경찰을 버티고 있었고, 경찰은 하나-둘-셋 하는 호루라기에 구호에 맞춰 이쪽을 밀어붙였다. 사람들은 무너지듯 밀려났다. 멘동은 흥분해서 방금 봤어요? 사람들이 아무것도 안 했는데 밀어붙인거? 이거 과잉진압이에요. 찍었어요! 하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이 더 놀라웠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데 밀어붙이면 안 되는 거야? 아무것도 안 했는데 캡사이신 뿌리면 안 되는 거야? 후에 집회가 끝나고 나서도 물대포 직사살수는 규칙에 어긋나는 일이며 차벽은 위헌이라는 말들에 나는 속으로 자꾸만 놀랐다. 사람을 향해 물대포를 똑바로 쏘면 안 되는 거야? 시위를 막기 위해 차벽을 세우는 건 법률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안 되는’ 일들이 이렇게나 많았다니. 물론 당연히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게 ‘안 되는 일’일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왜냐면 그런 일들이 내 눈 앞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었으니까. 사람을 향해 물대포를 쏘았고, 그렇게 맞은 사람이 거의 죽을 뻔 했고, 맨손으로 저항하는 사람들에게 캡사이신을 뿌려댔고, 위협적으로 카메라와 캠코더를 들이댔고, 그게 너무 당연하게 일어나고 있었으니까. 적어도 삐뚤어진 법률과 규칙에는 그래도 된다고, 시위니까 이렇게 무자비하고 막무가내로 탄압해도 된다고 적혀 있는 건 줄 알았다. 그래서 그렇게 하는 건 줄 알았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보장하는 규칙들이 있다니. 그리고 ‘경찰’이, ‘정부’가, ‘공권력’이, 그런 법규들을 스스로 거리낌없이 어기고 있다니.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22경찰은 차근차근 해산 권고와 해산 명령을 내렸다. 가야 할 길을 막았으므로 당연히도 사람들은 도로교통법을 위반한 채 도로 위에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는 3차까지 해산 명령을 내린 뒤 이제부터 불응하는 당신들은 현행범이라고 선언했다. ‘경찰 여러분, 지금부터 공식 채증을 하십시오’. 헛웃음이 났다. 그럼 이제까지 시민들의 얼굴에 들이밀고 있었던 그 카메라와 캠코더들은 다 뭐였는데? 뭐긴 뭐였어, 다 불법 채증이었지.

13내가 있었던 그 곳은 이 날 있었을 시위대와 경찰들 사이의 가장 덜 위험한 접전지였을 것이다. 경찰들이 대오 가운데로 한 남자를 잡아끌었고 또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가서 그 사람을 구해냈다. ‘하지 마요!’ 찢어지는 목소리들이 있었다. 시민들은 시민을 잡아가려는 경찰 뿐만 아니라 화를 내며 그 경찰에게 덤비는 시민도 함께 뜯어말렸다. 다들 한 마음으로 “폭력경찰” “물러가라” 하는 구호를 외쳤다.

눈에 캡사이신을 정면으로 맞았다.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화끈하게 타버리는듯 했다. 눈을 꽉 감았고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암흑이었다. 아 씨발, 이거 당해보니까 존나 아프네, 딱 그 생각밖엔 안 들었다. 물 필요하신 분 계세요? 뒤쪽에서 누군가가 외쳤고 멘동이 내 오른쪽을 붙잡고 여기 물 좀 주세요! 했다. 더듬거리는 내 왼손을 어느 여자의 목소리가 잡았다. 얼굴 기울여주세요. 누군지 모를 손이 내 머리카락을 걷어주었고 다른 손이 내 프레스증과 가방을 젖지 않도록 치워주었다. 반대쪽으로요. 뭘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한 번 물을 부었더니 눈을 뜰 수 있었다. 여전히 화끈거렸다. 만지지 마세요, 만지면 더 아파요.

다행히 이쪽은 소규모라 물대포까지는 동원할 수 없었다. 대신 경찰들은 캡사이신을 무차별적으로 뿌려댔고 멘동은 동영상을 찍었고 나는 핸드폰을 보호하듯 우산을 폈다. 경찰 방패 너머에서 무장을 한 손이 불쑥 튀어나와 우산을 우그러뜨려 뒤로 집어던졌다. 그 장면이 마치 슬로우모션처럼 선명하게 각인됐다. 그래, 무서웠다. 무서웠단말이야. 무서워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도와주세요!’라는 말에 기꺼이 몸을 던져 함께할 수 없었다. 그저 찍는다는 핑계로 한 걸음 물러서 있는 것이 전부였다.

12‘물 필요하신 분 있으세요?’ 하는 목소리. 서로 물과 물티슈를 나눠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도 많았다. 어쩌다 왔어요? 시위하러 왔어요? 아, 저 그냥 구경만 하려다가 참을 수 없어서… 미스핏츠를 안다는 대학생도 만났다. 거기 글 시원하게 쓰는 데죠? 잘 보고 있어요! 인상깊은 순간이었다. 누가 조직해서 온 사람들이 아니었다. 혼자, 아니면 친구랑 둘씩 셋씩, 자발적으로 모여들었고 자발적으로 뛰어들었다.

정말로, 내가 있던 곳은 가장 덜 위험한 접전지였다. 각목도 횃불도 없었다. 촛불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들은 캡사이신을 뿌리고 방패를 앞세워 사람들을 밀어붙였고, 기어이는 시민들을 몰아내고 바리케이드를 치는 데 성공했다. 대치는 소강상태로 접어들었고 사람들은 조용히 노래를 불렀다.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산자여 따르라. 두 명이 다쳤고 (큰 부상은 아니어보였다. 그러지 않길 바란다) 앰뷸런스에 실려갔다. 사람들은 천천히 흩어졌고 한참 뒤에 다시 돌아왔을때는 그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경찰들은 훌륭하게 세종로를 점령하고 ‘지켜낸’ 셈이 됐다. 무엇으로부터, 무엇을 위해 무엇을 지켜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8중간에 주저앉아서 오래 쉬었다. 할 수 있는게 없었다. 다른 취재팀들은 태평로쪽에 나가 있었다. 카톡을 통해 사진과 소식들이 들렸다. 횃불이 등장했단다. 갈 수가 없었다. 그쪽에서 이쪽으로 오기가 어렵듯 이쪽에서도 그쪽으로 가려면 폴리스라인을 몇 겹씩 뚫어야 했다. 시위대가 폴리스라인을 무너뜨린다면 광화문으로 올 테니 여기에서 기다리면서 맞으려고 했는데… 간간히 나를 걱정하는 친구들의 연락이 왔지만, 나는 정말로 안전했다. 정말. 집회의 최전선이어야 할 광화문은 마치 태풍의 눈마냥, 가장 고요하고 안전했다. 어딜 가도 내가 볼 수 있는 것, 취재할 수 있는 것이 없었으므로 나는 그것을 핑계로 벤치에 앉아서 오래 쉬었다. 무력감이 밀려왔다. 내가 뭘 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그게 더 무서웠단말이야. 차라리 나도 물을 맞으며 현장에 있었다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뭐라도 찍고 뭐라도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현장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알량한 자기위로였을 것이다. 정작 그 자리에 갔다면 나는 또 거대한 폭력 앞에 어쩔 줄 모르고 짓눌렸을 것이다.

사람들은 세월호 광장 앞으로 모여들었다가 흩어졌다. 스크린에 팩트티비의 현장 생중계가 있었고, 우리는 스크린으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맞춰 함께 구호를 외쳤다. 그게 전부였다. 한참 서성이던 사람들은 밤 아홉시-열시 즈음해서 하나둘씩 사라졌다.

현장에 있던 취재팀들도 하나둘씩 폴리스라인을 우회해서 모였다. 밤샘 할까요? 했지만 이미 시위는 꺾였고 더이상 진척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폴리스라인은 뚫릴 기미가 없었고, 광화문에서 하릴없이 기다려봤자 시위대를 만날 일은 없어보였다. 취재팀은 열한 시 쯤에야 해산했다.

집에 도착하자 광화문에 취재 나갔다던 딸을 걱정하던 엄마가 나를 맞았다.

“아무리 길을 막은 건 막은거라지만, 그래도 시위대 너무했다. 어쩌면 각목을 휘두를 수가 있니.” TV에서는 방금까지 내가 있던 광화문을 ‘불법시위’, ‘폭력시위’ 그리고 ‘강경대응’이라는 단어들로 설명하고 있었다.

9엄마, 진짜 폭력은 그런게 아니었어. 각목도 횃불도 아니었단 말이야. 사람들이 가야할 길을 막고 있었어. 경찰차가 사람들이 가야 할 길에 버티고 서서 그 목소리들을 틀어막고 있었다구. 그게 폭력이었어. 누가 먼저 때렸냐가 중요한게 아니야. 때리는 것만이 폭력은 아니야. 애초에 국민으로서 가져야 할 당연한 권리를 불법으로 만들어 버렸다니까. 진짜 무서웠던 건 물대포도 캡사이신도 아니었어. 경찰이, 공권력이, 이 나라가, 맨손인 사람들을 향해 그런 것들을 휘둘렀다는 것이 무서운 거였어. 엄마, 거기엔 법도 규칙도 없었어. 법과 규칙을 지켜야 할 사람들이 그걸 어기고 있었단 말이야. 미디어로 보던 것과 결코 달랐어. 악의와 분노때문에 공기가 따끔거렸어, 엄마. 나는 무서웠어. 그리고 나는 거기에 짓눌렸어. 제복을 입은 폭력 앞에서 나는 무력했어. 취재를 핑계로 카메라 뒤에 숨었어.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아무것도 없었고, 엄마,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가장 무서웠던 것은 무력감이었다.

‘폭도’나 ‘전문 시위꾼’이라는 단어로는 그 곳에 모인 십만여 명의 사람들을 설명할 수 없었다. 토요일인데도 교복을 입고 나온 고등학생들이 있었다. 그냥 지나가다가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합류한 사람들이 있었다. 광화문에 나왔던 사람들은 한 자리에 모이지조차 못했다. 텅 빈 광장을 지키는 것은 경찰들 뿐이었다. 이 날 시위에 나갔던 친구와 만났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다만 위로받기 위해 서로 끌어안고 오래 울었다.

18같이 취재를 간 두선은 “한참을 시위대 쪽에서 촬영하다가 폴리스라인 위쪽에 시선이 닿았다. 소위 말하는 ‘메이저’ 언론사의 기자의 카메라는 경찰쪽에서 시위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폴리스라인 안쪽에서 아주 안전하고, 비겁하게.” 라고 썼다. 현장을 생중계하던 오마이뉴스 기자는 물대포를 맞았고 YTN 기자는 YTN이라는 이유로 쫓겨났다. 언론장악은 무서웠다. 불법시위와 강경진압, 폭력시위 대 폭력경찰의 프레이밍에서 의제는 이미 잊혀졌다. 미스핏츠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다 잠을 설쳤다.

취재팀과 취재후기를 나눴다. 우리는 모두가 ‘무력감’에 대해서 말했다. 취재팀의 아니아니는 이렇게 썼다:

” 민중총궐기 다음날인 오늘. sns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전략이 부족했고 민첩하게 행동해야 했고…’ 등등의 충고를 보고 있자니 무력해진다. 그냥 쌀농사 짓다 키운 자식같은 쌀이 제값을 못 받고 창고에서 쌓여가는 모습이 안타까워 나온 사람들이다. 농부, 비정규직, 실업자, 부당해고자 등 평범한 사람들이 ‘못 살겠어서’ 모인 자리다. 구호가 메세지가 뚜렷하지 않았다는 첨언도 그만 했으면 한다. 왜냐면 ‘못 살겠다’가 구호니까. 다양한 삶을 버티며 살아가던 사람들이 이렇게 살다간 죽을 것 같아서 나온 자리이니까. 물대포는 너무 세고 폴리스라인은 너무 높고 줄줄이 늘어선 차벽은 시민들에게 말한다. 여기 가만 있으라고. 더이상을 바라면 안 되는 게 지금 네 위치라고. 거대한 권력 앞에 무력감은 또한번 나를 짓누를 뿐. “

다만 이것이 민중총궐기가 남긴 전부가 아니었으면 한다. 무엇이 옳은 지는 모르겠지만, 무엇이 틀린 지는 확실히 알았다. 12월 5일 나는 또 광화문으로 나갈 것이다.

 

편집 및 교정/ 랫사팬더

글/ 다홍

사진/ Simon 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