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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김기덕 감독을 좋아한다. 누군가는 그의 영화의 근친상간적 요소, 말초적이고 선정적인 장면에 불쾌함을 느낄 수 있겠지만 그처럼 영화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폭력성을 대담히 폭로하는 감독은 몇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누군가가 그의 영화를 싫어한다고 해도 이해할 수 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 차이니까.

주체성이 담긴 메시지와 자아

그러나 장면, 장면이 아닌 메시지를 보려는 시도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중문화가 온전한 예술로 평가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유가 처음으로 프로듀싱한 앨범 CHAT-SHIRE는 그가 아티스트로서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와 그의 자아를 담고 있다. ‘스물셋’의 후렴구에서 드러나듯 아이유가 이번 앨범을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나는 여우도 아니고, 곰도 아니다/ 모순된 모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라는 것이다. 사실 누가 그렇지 않겠는가, 인간은 누구나 모순적이다. 그때 그때 여우같은 모습, 곰같은 모습을 선택적으로 보일 뿐이다. 그런데 아이유는 아이돌이라는 이유로 혹은 어린 여가수라는 이유로 ‘색안경’을 끼고 ‘뭐든 한쪽을 골라’ 보려는 대중에게 지쳤던 것 같다. 그에 대한 영리하다면 영리하고 영악다면 영악한 대응은 그들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난 당신 맘에 들고 싶어요/ 자기 머리 꼭대기에서 놀아도 돼요?’ 그것은 차라리 생존 방식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대중은 그의 ‘영악한 생존 방식’에 돌을 던질 자격이 없다. 대중은 아이유에게 순수하지만 은근히 섹시한, 그러나 아이의 모습을 간직한 여동생의 이미지를 원했고, 아이유는 그에 대응한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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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 '스물셋'의 MV 중

아이유, ‘스물셋’의 MV 중

‘스물 셋’의 뮤직비디오 장면이다. 아이유가 사과를 넣어 풍만해 보이는 가슴으로 포즈를 취한다. 그 뒤 초조한 듯 자신을 지켜보는 허수아비를 돌아보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좋지 않다. 이 장면은 여러가지로 해석될 여지가 있지만 아이유가 가슴에 사과를 넣은 것이 누군가의 마음에 들고 싶어서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내가 이번 아이유의 앨범에 놀란 것은 늘 대중들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 아이돌의 숙명임에도 객체로 남아있기를 선택하지 않고 주체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고 한 그의 시도 때문이다. 그것은 아이돌이 아닌 아티스트로서의 선전포고까지로도 보인다. 아이유, 아니 이지은은 늘 너네 맘대로 판단하는 것, 너네가 원하는 대로 보여야 하는 것을 나 역시 알고 있어, 그리고 나는 그것에 대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어, 라고 이번 앨범 전반을 통해 말하려는 듯 보인다. 안경을 쓰지 않고 적당히 밑지며 적당히 받아치며 살겠다는 다짐을 담은 ‘안경’, 공격 받아 마땅한 악역에 대한 선입견에 질문을 던지는 ‘레드퀸’도 그녀의 ‘진짜’ 생각을 담은, ‘스물셋’과 같은 메시지를 담은 일종의 변주곡이다.

너네가 원한다며?

그런데 아이유를 바라보면서 섹시를 모르는 소녀에게 느껴지는 은근하다 싶은 야함을 캐치하며 독자적인 노선이라고 인정했던 대중이, ‘레옹’의 마틸다 컨셉에 환호하고 열광하던 대중이1)아닌 게 아니라 지난 가을, 길거리 여자들 열의 여섯 정도는 초커를 하고 다녔다, 이제는 ‘로리타 컨셉에 대해 해명하라’고 요구하며 거센 비난을 하고 있다. 마치 아이유가 모든 것의 원인인 것처럼. 그들은 정작 그 모든 여자 아이돌들의 컨셉 – 이를테면 걸스데이의 기저귀 패션 – 에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으면서 이미 로리타 컨셉을 아무렇지 않게 소비하고 있었으면서 말이다.

이건 정말 해괴망측한데..?

이건 정말 해괴망측한데..?

그들은 아이유의 이번 앨범을 두고 영악하고 소름끼친다고 이야기한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고 있었다면 나았을 것이다. 그동안 아이유가 냈던 노래처럼 대중들이 보고 싶어하는 모습만 보여줬으면 그간의 로리타 컨셉이 까발려지는 일도 없었을지 모른다. 아이돌과 대중의 관계에서 아이돌은 절대적으로 약자의 위치다. 그간 유명 아이돌의 열애설에 아이돌이 각각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떠올리면 쉽게 알 수 있다. 아이돌은 자신의 의견을 내서는 안 되는 존재이며, 설사 의도치 않게 대중의 기대와는 다른 사생활이 공개라도 될 시에는 자숙하며 죽을 죄를 진 듯 행동해야 한다. 그런데 아이유가 아이돌과 아티스트의 경계에 있다는 특수한 그의 지위를 이용해서 대담히 대중을 지칭한 순간,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가 내고 싶었던 목소리는 부메랑이 되어 그에게 돌아왔다.

직접 작사한 ‘안경’에서

웃고 있는 그 표정 너머에/ 진심까지 꿰뚫어 볼 순 없어요/ 그저 따라서 웃으면 그만

공들여 감춰놓은 약점을/ 짓궂게 찾아내고 싶진 않아요/ 그저 적당히 속으면 그만

까만 속마음까지 보고 읽고 싶진 않아

라고 노래한 아이유는, 어쩌면 그에게 순수한 아이와 섹시한 여성을 동시에 바라는 대중의 모순적인 요구를 알고 있었음에도 ‘속고 속이고 그러다 또 믿고’ 하며 본인 나름 최선의 대응을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요구에 대한 비판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지금, 우리는 그들이 한때 공모자였음을 인정하고 성찰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미 명백한 비난의 대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 ‘영악함’을 드러낸 아이유 말이다.

 

편집 및 교정 / 커밋

글 /개씨 

   [ + ]

1. 아닌 게 아니라 지난 가을, 길거리 여자들 열의 여섯 정도는 초커를 하고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