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졸업장 받으러 가는 길

언덕 너머 몇 달 전까지 다녔던 고등학교가 보였다. 교무실에는 오랜만에 보는 담임선생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졸업장을 건네주며 선생님이 물었다.

“그래. 인자 뭐 할끼고?”

“재수할겁니다.”

“그래. 인자 니는 뭐든 할 수 있을 거다. 니는 공부 그만두기 아깝다, 임마.”

졸업장을 들고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래. 이제 시작이야. 재수를 하고, 한의대에 가는 거야. 고생도 했으니 형도 허락해 줄 거야!

집에 도착하자 마루에 큰형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다, 켄타야.”

그때 난 아무것도 모른 채 활짝 웃었다.

“다녀왔습니다!”

형은 날 보고 차를 마시며 빙긋 웃고는 식탁에 앉으라고 말했다. 날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탁자에는 내 몫의 찻잔도 놓여 있었다. 차를 따라주며 형이 물었다.

“그래 켄타야, 이제 뭘 할 계획이니.”

“음…, 형은 아닌 거 같다고 하겠지만, 난 재수를 하고 싶어. 우리집 형편 안 좋은 것도 알고 있으니 최대한 돈 안 드는 쪽으로 준비해볼게.”

“무엇을 위해서 재수를 하고 싶니? 재수는 어디까지나 수단에 불과하잖니.”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반사적으로 대답을 하려는 순간, 목구멍에서 말이 딱 막혔다.

하려고 했던 말은 ‘한의학을 현대 과학으로 재해석해서 한의학의 가치를 높이고 싶어’였다. 그러나 내가 정말 과학을 운운해도 되는 걸까? 나는 왜 이걸 하고 싶은 거지? 그저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직업들 가운데, 적당히 내 취향에 맞는 걸 고른 건 아닐까?

시선을 내리깔고 애꿎은 차만 들이켜자 조용히 형이 말했다.

“없나 보구나.”

형의 말에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돈 벌어보니 느낌이 어떠냐? 이 돈, 함부로 쓸 수 있겠니? 많은 돈이 아니지만 네가 받은 107만 원에는 너의 노력과 말로 표현하기 힘든 많은 것들이 들어 있을 거다. 동시에, 많은 돈이 아니니 이 107만 원 중 10원 까지도 너에겐 귀한 돈이겠지…. 소중하고 부족하니 네가 진정 어디에 쓰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을 거다. 나도 그랬다. 힘들게 돈을 벌고, 또 그 돈이 많은 돈이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었지.”

잠시 말을 멈추고 형은 생각을 정리하는 듯 눈을 감았다. 숨을 몇 번 고르곤 다시 말을 이었다.

“시간도 같다. 나는 네가 일을 하며 부족한 시간을 쪼개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조금씩 시작해 보았으면 한다. 그렇게 한정된 돈과 시간을 통해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해 나갔으면 좋겠다. 기억해둬. 비운 뒤에야 보이는 것이 있다는 것을.”

형은 그 말을 끝으로 빙긋 웃고는 뒷산에 물을 뜨러 가자고 했다. 산에 오르는 내내 생각해 봤지만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 건지. 무엇을 할 때 좋은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 좋고 말고를 정하는 것은 내 마음인데. 정작 당사자인 내가 내 마음을 알 수 없었다. 아니, 애시당초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 적은 있었나. 지금까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 것인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좋은 일을 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가슴 속이 답답해 차가운 산물을 크게 들이켰다. 어찌 되었건, 내일 새벽이면 출근이다. 멀찍이 지는 노을 해를 바라보며 열심히 해야지. 다짐했다.

다시, 출근이다

새벽 5시에 눈을 뜨고 서둘러 출근을 준비했다. 어제 형과의 대화가 머릿속에 남아 있었지만, 그 생각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유니폼을 가방에 넣고 서둘러 통근 버스가 오는 곳으로 갔다. 겨울 바람에 발을 동동 구르다 보니 어느새 차가 왔다. 버스를 타고 1시간 정도 지나자 공장에 도착했다. 어제 인사드렸던 조장님께 도착했다고 전화를 드렸다. 10분 정도 지나 조장님은 나를 데리고 식당으로 가셨다. 뷔페식의 깔끔한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예상을 뛰어넘는 좋은 식당과 음식에 많이 놀랐다.

식사를 하고 우리는 사무실이 있는 곳으로 갔다. 내가 일할 곳은 HRD라는스마트폰 기판을 만드는 부서의 일부인 ‘노광실(露光)’이었다. 대략 15명이 한 조가 되어 3조 2교대를 한다. 하루에 일하는 시간은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 아침 8시~저녁 8시까지 일하는 주간 조로 4일을 일하고, 이틀을 쉬고 다시 저녁 8시~아침 8시까지 일하는 야간 조에 투입되는 식이었다. 근무시간은 12시간이지만 출/퇴근 시간이 길어 사실상 일을 위해 하루 15시간을 쓴다. 그래도 배탈 때를 생각해보면 이렇게 일하고 한 달에 140만 원이면 좋은 조건인 것 같았다. 7시 45분이 되자 조장님이 조례를 위해 사람들을 모으셨다. 잠시 전달사항을 말씀하시던 조장님은 나를 소개했다.

“여러분. 20살 짜리 신입사원 온다고 말했지? 자 켄타야. 인사해라”

“안녕하세요. 켄타입니다. 20살이고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순간 사람들 사이로 당황하는 술렁임이 일었다. 당황한 표정으로 서로 소곤소곤 귓속말을 했다. 희미하게 사람들의 귓속말이 들린다.

“야…, 조장이 20살이라고 하지 않았어? 진짜 20살? 나보다 나이 많은 거 같은데?;;”

“무슨 20살이라는 애가 서른은 넘어 보이냐?”

“야. 저 사람 옆 반 조장 아니었어? 조장인줄 알았는데???”

usami

그래요… 배 타면서 얼굴이 많이 상했으니 그럴 수 있어요… 그래도 저 스무 살인데, 서른은 좀…

무난하지 않은 첫 인사 후, 나는 하나하나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내가 일하는 곳은 기판에 알맞은 회로용 도료를 칠하고, 열 건조 시키고, 다시 코팅을 하는 곳이었다. 노광실은 양압1)주변보다 기압을 높게 유지해 바깥의 먼지나 이물질이 들어오지 않는 방. 클린룸이라고도 한다.으로 유지되는 곳이라서 모두 방진복을 입고 일해야 했다. 노오란 조명에 건조한 공기로 가득한 노광실은 어쩐지 들어가기만 해도 피곤한 곳이었다. 그래도 처음 보는 기계가 많아 신기했다. 모든 일이 새롭고 재미있어 나는 신나게 일했다. 매뉴얼을 빌려가며 집에서 정독하며 공부하고 싶었는데 아직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리고 첫 휴일을 받았다. 주간 조로 출근해 다음 근무 조는 야간조. 즉, 3일 뒤 저녁에 출근한다. 퇴근 후 집으로 가는 길. 2.5일이라는 휴일을 어떻게 보내는 것이 좋을지 고민했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는 무엇일까.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 것일까. 이 일도 재미있어 보이고, 저 일도 재미있어 보여 정작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 수 없었다.

입사 전 날 형과의 대화가 다시 떠올랐다.

‘결국 뭘 하고 싶니?’

나는 그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오랫동안 해온 고민이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이제 이 고민에 끝을 내고 싶었다. 더 이상 이런 고민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 또래에게 뒤쳐지고 싶지 않았다. 대학에 갔다는 것은 자의든 타의든 자신의 분야를 선택했다는 것. 나는 아직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도 정하지 못했다.

저녁을 먹고 방에 앉아 생각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새벽 1시. 새벽 2시…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고민하고 고민했지만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앉아 있었다. 잠시 동안  고민 한 일은 지금까지 수도 없이 있었다. 이번에는 결론이 내려질 때 까지 잠들고 싶지 않았다.

어느덧 동이 터왔다.

눈은 피로로 뻑뻑했고, 머릿속은 안개가 낀 듯 답답했다. 창문을 열고 옥상에 올라갔다. 새벽 바람이 갑갑한 머릿속을 시원하게 씻어주었지만 알아낸 것은 없었다. 스스로가 한심해 깊은 한숨을 쉬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아래쪽에서 요리하는 소리가 들려 주방으로 내려갔다. 형이 아침밥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형이 하던 일을 접고 가사를 본지도 벌써 몇 년이 지났다. 아무 말 없이 요리하던 형은 나에게 물었다.

“그래. 뭔가 알아냈니?”

형 목소리를 듣자 좀 전까지 스스로를 한심해 하던 내가 우습게 보였다. 그래, 20년 동안 몰랐던 걸 하룻밤만에 답을 내릴 수 있나.

“아니~ 아무것도 모르겠어. 그냥 머리만 아파. 그냥 바보짓 한 거 같아, 하하하”

진짜 모르겠어..

진짜 모르겠어..

형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오늘 콩나물국이 잘 만들어졌다고 따뜻한 국을 한 그릇 떠줬다. 따뜻한 국물이 빈 속을 덥히자 그제서야 정신이 좀 들었다. 아침 햇살이 마루를 따뜻하게 비췄다. 자기 몫의 국을 떠서 들고 온 형은 날 보고 한마디 했다.

“ 어제 네가 한 것도 사람들이 고민하는 하나의 방법이지만, 그 문제를 집착하지도 놓지도 않으면서 가만히 그 문제를 바라보고 있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란다.”

“…문제에 집착하지 않고 잊어버리지도 않는다고? 그게 가능해?”

“가능하지. 너는 어렵다고 느끼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게 맞는 거고. 그렇게 하면 어느 순간 답을 알게 될 거다.”

머릿속에 물음표만 가득했지만, 더 물어보기도 또 뭘 물어봐야 하는 건지도 알 수 없어 그냥 아무 말 없이 국만 삼켰다. 국을 먹자 긴장이 풀렸는지 나는 한참 동안 잠들었다. 오후가 되어 부스스 눈을 뜨자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뭘 해야 하는 걸까. 평소라면 친구들을 만나 놀러 다녔겠지만 배를 타러 가기 전에 잔뜩 폼 잡으며 “내년 5월에나 올 거야!”하던 내 모습이 생각나 도저히 만나러 갈 수 없었다.

다시금 마음이 초조해졌지만 형의 말을 떠올리면서 애써 마음을 가라 앉혔다. 초조한 마음에 하룻밤 내내 고민 해봤지만 얻은 것은 없었다. 이제 남은 방법은 형이 말한 대로 해보는 것 뿐이다. 솔직히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해봐야지. 우선은 아무 거나 해보고 싶은 걸 해보자.

다음 날이 되었다. 초조한 감정에서 빠져나오자, ‘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하나 둘 떠올랐다. 어젯밤 하루 종일 고민해서 알게 된 한 가지는나에게는 제대로 해 보지 못한, 그냥 막연히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제 수험을 하라고 강요하는 사람도 없으니, 여가 시간에는 그동안 쌓아두기만 한 ‘하고 싶은 것’을 해보기로 했다.

그 중 떠오르는 것은 책읽기였다. 나는 도서관에 다니기 시작했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제목이 끌리면 책을 뽑아서 보았고, 그렇게 보다가 다 보지 못하면 책을 빌려서도 읽었다. 생각보다 책 읽는 속도도 느리고, 중간 중간 다른 것도 하다보니책을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매일 조금씩 멈추지 않고 읽었다.

시간이 지나고 회사 사람들과도 친해졌다. 다들 20살이 되자마자 배를 탄 이상한 녀석에게 호기심 섞인 관심을 보였고, 나도 사람들을 딱히 싫어하지 않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친해졌다. 배를 타다 보니 일을 할 때 몸을 사리지 않고 하는 게 습관이 들어 사람들의 평도 나쁘지 않았다. 조장님과 반장님도 나를 좋아해 주셔서 나는 그럭저럭 회사생활을 했다.

 

편집 및 교정 / 커밋

글 / 켄타

   [ + ]

1. 주변보다 기압을 높게 유지해 바깥의 먼지나 이물질이 들어오지 않는 방. 클린룸이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