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경제학자인 대니얼 카너먼에 따르면 “장기간에 걸쳐 자제력을 요하는 환경에 노출된 사람은 자아고갈 상태에 빠진다”고 한다.

가령 맛있는 음식, 멋진 옷, 자동차, 집 등 유혹이 넘쳐나지만 가질 수 없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욕망은 줄어들지 않는데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자제해야 하는 상황은 수없이 많다. 이런 유혹을 피하려고 내리는 결정에 우리의 뇌는 많은 수고를 한다.

이러한 수고가 반복됨에 따라 의지력은 점점 소진되어 버린다. 이러한 상태를 ‘자아 고갈’이라고 한다.

-빚 권하는 사회, 빚 못 갚을 권리 中, 제윤경 저


휘황찬란한 대도시에 살아가면서 안분지족의 큰 도를 행함이 마땅할 터이나 개중에 나 같은 미천한 중생은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가 찢어지듯 어마무시한 정신적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종국에는 에라 모르겠다~하고 정줄을 놓아버릴 수 있단 말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매일 마주하는 풍경이 주인도 못 알아보고 짖어대는 잡견 2마리와 제철 채소뿐인 우리 엄마가, 지출이라 해봤자 쥐꼬리만 한 월급통장 내에서 행하는 나를 두고 패리스 힐튼급 과소비의 여왕으로 몰아붙이는 데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나 보다.

이번 추석 명절이라고 엄마의 잔소리 레퍼토리가 달라졌을 리 만무하다.

요즘 많이들 접해봤을 흙수저 빙고게임이다.

요즘 많이들 접해봤을 흙수저 빙고게임이다.

삶의 스트레스 대부분을 먹는 걸로 위안하였던 필자는 특히 “고기요리를 할 때 국으로 된 요리로 자주 먹는다”에서 깊은 깨달음과 자아 반성이 있었던바, ‘이번 추석은 우리 소고기 함 구웁시다!’하고 호기롭게 외쳤다가 월급의 1/7을 소고기값으로 헌납해야 했다. 그러고도 나의 이런 대책없는 과소비와 무절제한 삶에 대한 일장연설을 들었음은 물론이다.

시작은 이러하다. “우리 때는 말야…”

월급의 반을 저축하고 어쩌고저쩌고 했다는 고대 그리스로마 신화급 현실감 떨어지는 얘기들…. 인트로에서 자체 음소거를 진행하기 때문에 수많은 반복에도 불구하고 뒷부분은 늘 오리무중이다.

가끔은 나 대신 엄마가 한 번  살아보라고 쏘아붙이고 싶지만 그랬다간 잔소리에 도돌이표가 추가된다는 걸 알고 있다. 무서운 일이다. 그렇지만 정말 지금의 어른들에게 치매 예방 차원에서라도 상상력을 한번 발휘해보란 말씀을 드리고 싶다.

만약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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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금 대출은 과거 7.8% 금리로 대출받아 2.9%의 저금리로 전환신청을 하였으나 연체를 이유로 거절당했다. 승인이 되었다면 연 이자부담이 29만원 줄었을 것이나 꼼짝없이 기존의 금리대로 1.399만원의 대출금을 갚아야 한다. 문제는 취업의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장은 알바라도 해야 한다.

-틈틈이 구인사이트를 뒤지다 걸리는 회사에 면접이라도 보러 갈 요량으로 하루 6시간 주 6일 근무하는 곳에 가면, 식사 시간도 챙기지 못할 만큼 눈도 뜰 새 없이 바쁜 데다 월급날엔 사장님이 나보다 더 우거지상을 하고 힘든 사정을 호소한다. 열흘을 더 기다려야 돈이 생긴다 제길슨…

-소득의 1/3을 잡아먹는 고시원 방은 창문이 없어서 한밤중에 자다 깨면 화들짝 놀라 휴대폰 액정화면이 가리키는 시계를 들여다보게 한다. 눈이 떠진 김에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난다. 내 방 라인에는 화장실이 없어서 화장실과 추가요금 3만원이 딸린 건너편 라인 고시원으로 두 개의 문을 통과해야 한다.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려 절로 눈치가 보인다. 다음 달엔 필히 건너 라인으로 옮겨야겠다.

-인간적인 일상과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가끔씩 친구들과의 모임에 합류한다. 내 몫의 밥값을 계산하고 남은 잔고를 확인하는데 친구 중 하나가 다음주에 생일이라는 비보를 전해 듣는다. 다행히 소액결제카드가 있으니 저렴하면서도 값을 고려해 골랐다는 티가 나지 않는 선물을 찾아내야 한다.

-취업을 위해 진행하는 스터디모임에서 면접대비 학원을 별도로 다닌 친구의 합격 소식이 들려온다. 무려 1회에 30만원을 호가하는 학원이다. 또 다른 이는 면접에서 호감을 주기 위해 심심했던 눈에 입체감을 주고 나타났다. 어차피 생활비 대출을 고려 중이었다. 거기에 100만원을 더 얹는다고 큰일이 날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청춘을 살아야 한다면?

빚 더하기 빚은 일상에서 수없이 이루어진다. 물론 엄마 때는 면접대비 학원이나 성형 대출 같은 것이야 없었겠지만, 요즘은 차고도 넘친다는 게 함정. 등록금을 위해 알바를 전전하는 학생 수만큼이나 스펙을 위해 어학연수, 해외 배낭 여행을 떠나는 학생 수도 넘쳐난다. 부모님은 신혼여행으로 온양온천을 다녀오지 않았던가 말이다.

우리는 흔히들 고도의 압축성장이라고 표현하는 시대를 지나왔다. 그 누구의 경험도 나의 것과 같지 않다. 그렇기에 지금의 청년 세대를 이해하기 위해 어렴풋한 자신의 청춘을 더듬어 보는 일은 불필요할 것이다. 심지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자리에서 드문드문 보이는 청년 개개인이 겪은 삶의 진폭 또한 불과 10여 년 전의 그것과 다를 수 밖에 없다. 비극은 우리가 그것을 자주 잊는다는 데 있다.

우리는 자신의 뺨에 닿는 바람만을 느낄 수 있다. 타인의 뺨을 스치는 바람은 알 수가 없다.04

한창 일본의 감성적 소설들이 유행하던 때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어느 책에서 본 구절이다.

보는 각에 따라 달리 보이는 달처럼, 지금의 청년들은 누군가에게 생존권(의식주+ 더 나은 삶을 위해 교육받을 권리)을 획득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세대로, 혹은 무분별한 소비욕을 가진 철없는 이들로 비칠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IMF 이후의 노동유연화 정책으로 인한 젊은 세대의 고스펙 취업난에 부채감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며, 혹자는 험한 일 한 번 안 하고 쉬운 길만 가려 간다고 청년들을 손가락질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멀리서 보면 휘영청 어여쁜 달도 가까이서 표면을 들여다보면 울퉁불퉁 거칠게 생겨먹었다. 매끈하게 보이는 것은 그만큼 지구와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거리가 멀수록 완벽해 보이는 것이다. 심지어 추석명절에 너나없이 소원빌기 배틀이 벌어지는 보름달도 제일 밝은 달이 아니라 한다.

「팔월 십육일 달빛이 가장 맑다 [八月十六夜月色最淸] 」 -다산 정약용의 시

청년들이 거친 얼굴을 숨기느라 고생하는 것이 안쓰러운 까닭이다. 세상은 이성으로 느끼고 만지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다.

중요한 건 우리가 지금 같이 살아간다는 것을 잊지 않는 일이다.


필자가 소속되어 있는 ‘금융정의연대'(www.kofica.or.kr)에서 ‘청년 부채 실태조사’의 일환으로 인터뷰이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신원은 절대 비밀로 하며, 인터뷰 해주신 내용은 청년 부채 문제 개선을 위해 소중히 쓰도록 하겠습니다.

서울에서 거주 or 직장생활 or 재학 중인 만 19~34세 미혼 청년들 중 한국장학재단 이외의 기관에서 학자금 대출을 받으신 분,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리신 분 등 카드값이나 대출금 상환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모든 분을 대상으로 진행됩니다.

상담에 응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소정의 문화상품권과 함께 ‘재무관리상담 서비스’를 제공해드립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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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및 교정 / 저년이

글 / 안물안궁, 컹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