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답인생이다.

최근 무언가에 시도해보거나 성공해본 기억이 요즘 잘 없다. 어른들은 지금 이럴 때가 아니다, 빨리 열심히 뭐라도 해보라고 하지만 할 마음이 안 생긴다. 이유는 나도 모른다. 그냥 하기 싫다. 그냥 맛있는 거 먹고 술 먹고 춤추고 여행할 때가 제일 좋다. 나만 노답?8_8?

먹고..춤춘다

먹고..춤춘다

나에게는 친구 ‘’이 있다. 안은 중학교 친군데, 이상하게 성격이 안 맞는 거 같은데 뭔가 잘 맞아서 여기저기 함께 같이 다녔다. 물론 걔도 노답인생이다(…) 안과는 지난 1월 동남아 배낭여행-홍콩~태국~라오스~베트남-을 함께 했다. 물론 우린 술만 먹고 춤만 추고 잠만 잤다. 안도 나도, 분명 잘 살아왔는데, 언젠가부터 무언가 길을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그런 스물 다섯의 안은, 스무 살이던 어느 날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고 항상 지리산에 가고 싶다고 했었다. 스무 살인 나는 지리산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가자고 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그렇듯 당장 먹고 똥쌀 시간이 바빠 지리산은 잊었다.

그러던 어느날, ‘’와 산책을 하다 내가 지리산 종주해보고 싶다고, 농담 반 진담 반 외쳤다. 막 던졌는데 어린 시절 지리산 종주 경험이 있던 우가 덥석 물었다. 그 길로 안에게 전화했고 안은 신나했다. 우는 친구 ‘’에게 전화를 걸었다. 착한 이에게 동네 좀 큰 산 정도라고 말했더니 이 사람은 진짜 낚였다. 이렇게 나와 안, 우와 이는 함께 지리산 종주를 가게 됐다. 이번 글에서 종주 전 반드시 체크해야 할 준비물이나 종주 루트 등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하고 다음 편부터 본격적인 종주기에 들어가겠다.

대피소 예약을 해야 된다규?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놓치는 부분은 지리산에서 1박 이상의 종주 계획을 세운다면 반드시 지리산 국립공원 웹사이트에서 대피소 예약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종주 도중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가끔 대피소 비용을 아끼거나 짜릿한 경험을 위해 비박을 시도하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정말 인생이 짜릿해질 수도 있다. 비박은 자연환경에도 매우 좋지 않다. 대피소 예약은 상시 가능하지 않다. 원하는 종주 날짜에 맞춰 대략 2~3주 전쯤 예약 페이지가 오픈된다. 수강신청만큼 치열하진 않다. 사실 그날이 학교 수강신청날과 겹쳤는데 졸업 예정자인 나는 이들의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 대피소 예약을 자처했으나 늦잠을 잤다(정말 노답인가). 결국 이가 수강신청 후 곧바로 대피소 예약에 성공했다.

종주 루트는 사실 구글에 검색만 해봐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루트 역시 조금씩만 다르지 거의 비슷비슷하다. 하지만 처음 검색해보면 어디가 어딘지 감이 안 잡힌다. 어쨌든 루트에 대한 감을 잡는데 도움이 되기 위해 설명충 등판.

우리는

성삼재 출발→노고단(아침)→연하천(점심)→벽소령(저녁 및 첫날 숙소 및 아침)→세석(점심)→장터목(저녁 및 둘째날 숙소)→로터리산장(아침)→중산리 터미널

로 2박 3일 종주 루트를 짰고, 벽소령 대피소 하루, 장터목 대피소 하루로 예약을 했다. 비용은 두 대피소 합쳐 16,000원으로 자취방 월세 하루치보다 훨씬 싸다..18..

뭘 가져가야 되셈?

사실 안과 이와 우와 나는 모두 비슷한 노답 인간들이라 대피소 예약만 해놓고 손을 놓고 있었다. 그러다 떠나기 며칠 전 이대론 정말 개노답인생이 될까봐 부랴부랴 준비를 시작했다. 준비물은 크게 1) 부랴부랴 집에서 훔친 것들 2) 미리 큰 대형마트에서 본 장 3) 당일 빼먹은 것들을 산 급장 으로 나눌 수 있다. 등산인 만큼 돈을 굳이 많이 쓸 필요가 없기 때문에 집에서 훔쳐오거나 주변에서 빌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 간략히 준비물들을 나열하고 설명충 다시 등판.

먼저 우리가 부랴부랴 집에서 훔쳐온 부랴부랴 준비물들은,

각자 수저, 코펠, 캠핑용 버너 및 바람막이 판, 각종 조미료(참기름, 간장, 소금, 다진 마늘), 휴지, 물티슈, 수건, 담요, 과도, 개인용 물통, 두툼한 양말, 두꺼운 웃옷, 등산화, 긴바지, 갈아입을 여분 티셔츠 정도 였다.

수저는 필수다. 인도식으로 먹을 거 아니면.. 캠핑용 버너는 화력을 체크해보고 가져가도록 하자. 지리산의 경우 고도가 높아질수록 바람이 귓방망이를 날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바람막이용 철판은 반드시 필요하다. 가져가지 않으면 진짜 불이 안 붙어서 밥을 못 먹을 수 있다.

지리산 종주 중 유념해야 할 것 중 하나는 ‘쓰레기통이 없다’는 사실이다. 국립공원이고 등반이 존나 힘든 만큼 그 지리산을 직접 올라가 쓰레기통을 수거하실 환경미화원도 극한알바도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대피소에도 쓰레기통이 없으며 음식물 쓰레기통만 마련돼 있다. 이 말은 결국 종주 중 발생하는 모든 쓰레기를 우리가 이고 지고 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쓰레기를 최소화하는 것이 좋기 때문에 휴지를 비상용으로 가져가되 똥쌀 때 빼고는 많이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반면 물티슈는 뤼얼 럽..♡ 오만 데 다 쓴다. 종주 중 유념해야 할 두 번째는 식수에만 사용해야 할 정도로 물이 매우 찔끔찔끔 나온다는 것. 그래서  샤워는 개뿔 세수도 못한다. 몇은 눈치를 보며 고양이 세수를 하지만 그마저도 사람이 많이 몰리는 시간엔 절대 안된다. 따라서 샴푸질도 폼클렌징질도 안되고 원칙적으론 치약질도 안된다. 그러다보니 선크림도 바르지 않았고1)어차피 나무가 우거져 그렇게 햇빛이 심하진 않다 밤에 잘 때도 세수 대신 물티슈로 얼굴을 닦아야 했고.. 발도 닦아야 했고.. 몸의 어딘가도 닦아야 했고.. 그러다보니 물티슈는 꼭 챙겨가길 바람…

개인적으로 담요는 굳이 들고 가지 않아도 될 거 같다고 생각한다. 부피를 많이 차지하는데 부피치고 그렇게 따듯하지 않은 것 같고, 대피소에서 2천원 주고 어차피 빌려야 하기 때문에. 추위를 많이 탄다면 들고 가기를 추천한다. 물통 역시 종주 틈틈이 계속 마셔줘야 하기 때문에 대피소 식수대에서 물을 받아야 하는데, 물통이나 0.5L 생수병에 담아가면 좋다. 우리는 개인용 물통 포함해 1L에도 담았고 0.5L에도 담아 물을 많이 마셔줬다. 그래도 워낙 땀을 많이 흘리다보니 수분이 몸에 부족해 배변 활동이 잘 안 된다. 나 같은 경우, 먹으면 바로 화장실을 가는 유명한 똥쟁인데도 불구하고 정말 고생했다. 물을 최대한 많이 먹읍시다.

정말 힘들었다. 푸세식 화장실 위에서..

정말 힘들었다. 푸세식 화장실 위에서..

등산화를 신고 다니기 위해서는 도톰한 양말이 좋고, 자는 동안 춥기 때문에 발이 시리지 않도록 여분의 양말을 가져가면 좋다. 우리는 8월 말인 한창 더운 여름에 갔지만 잘 때 추워서 깼다. 내부에서도 히터를 틀어주지만 한계가 있다.

의 경우는 당시 여름이었고, 지리산은 덥거나 살짝 시원한 정도였기 때문에 땀이 흡수가 잘 되는 반팔 티셔츠를 세 장 정도 가져가 매일 갈아입어줬다. 다만 높은 고도의 경우 온도가 급격히 떨어져 땀이 식으면서 감기에 걸릴 수 있었기 때문에 맨투맨을 챙겨 필요할 때 티셔츠 위에 입어줬다. 나는 긴 레깅스에 반바지를 입었고 안과 이 모두 긴 바지를 입었다. 반면 우는 당시 되게 애매한 5부도 아니고 7부도 아닌 바지를 입었었는데 많이 불편했다고, 긴바지를 가져왔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그럼 뭘 먹나요 뀨잇쀼뀨>_<?(설렘)

다음은 떠나기 전 미리 코스트코에서 봤던 장 목록이다. 총 금액은 5만 2천원 정도가 들었다. 사실 대형마트에서 보는 장은 보통 먹을 것을 위한 장인데, 미리 2박 3일 동안의 식단을 짠 후 장을 봐야 한다. 또 고려해야 할 점은, 위에서 말했듯이 설거지도 할 수 없고 쓰레기를 다 챙겨야 하기 때문에 설거지 하기 힘들거나 쓰레기가 지나치게 많이 나오는 식단은 지양하는 것이 좋다.

첫날

아침: 게살필라프, 고추참치

점심: 햇반, 삼겹살, 감자면, 잎새주   

저녁: 햇반, 삼겹살, 베이컨 김치볶음, 잎새주, 럼

둘째 날 

아침: 미역국, 게살필라프

점심: 햇반, 카레, 짜장, 짜파게티, 잎새주, 럼

저녁: 햇반, 김치찌개(라고 쓰고 김치죽), 잎새주, 럼

셋째 날

아침: 짜장 얹은 짜파게티

구매 내역은 사실 세세하게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많은 양의 베이컨과 베이컨과 베이컨과 삼겹살…ㅎ.. 아무래도 음식을 해 먹기 보다는 레토르트 제품을 먹는 것이 훨씬 편했기 때문에 직접 쌀로 밥을 하기 보다는 햇반과 카레, 짜장, 참치통조림, 냉동 볶음밥을 샀다. 게살필라프는 코스트코에서 유명한 그 필라프다. 나는 낙지필라프를 먹고 싶었는데 돈이 없어서 싼 게살을 샀다.(힝) 식단을 짤 때에는 아무래도 상하기 쉬운 음식부터 먹는 것이 좋은데, 둘째날 아침에 먹었던 게살필라프가 이미 좀 뭔가 이상했었다. 근데 그래도 먹었다. 이제는 날씨가 추워져 다를 수도 있겠지만, 여름 종주를 계획하고 있다면 최대한 상하기 쉬운 음식은 지양하고 가져가더라도 첫날 최대한 빨리 먹어치우는 것이 좋다.

삼겹살은 먹기도 치우기도 번거로운 건 사실이지만, 종주하면서 삼겹살은 꼭 먹어야 한다. 해발 몇 백 미터에서 하루 종일 종주 후 먹는 삼겹살이란..

정말이다..

정말이다.. 원래도 맛있는 삼겹살을 하루종일 산 타고 먹는다고 생각해봐라..

사실 미역국은 레토르트 제품을 샀어도 됐는데 토요일 아침이 우의 생일이었기 때문에 생일상을 차리기 위해 직접 국거리용 소고기와 건미역, 다진마늘, 간장, 소금을 챙겨갔다.  미역국 아니면 소금이나 다진마늘, 간장은 그닥 필요는 없다.

베이컨을 샀던 이유는 아무래도 삼겹살이 상하기 쉽고 무게도 무겁고 가격도 비싸니까.. 우린 거지니까.. 코스트코에서 베이컨 뭉텅이를 저렴하게 구매했는데 이게 정말 가성비는 갑이었다.

앞으로도 애용할 것 같다..

앞으로도 애용할 것 같다..

두툼한 베이컨이었기 때문에, 조금만 구워도 쉽게 쪼그라들어 바삭해지다 사라지는.. 얇은 베이컨과는 다르게 삼겹살을 이틀 내내 먹는듯한 행복을 줬다.

식단에 약간 함정이 있는 거 같은데. 평소 음주를 좋아한다면 술은 반드시 사야 한다(…). 사실 안과 이, 우 모두 술을 좀 심하게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삼겹살엔 소주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둘째 치고, 식사 중간 중간에 힘듦을 잊고 체력을 보충하고 피를 잘 돌게 하고 짜증을 가라앉히고 약간의 조증 상태를 얻기 위해 술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는 팩소주 몇 개와 구례에서 산 잎새주 두 병을 가져갔다.

알코오올 냄새가 살짝 많이 나지만 그래도 달착지근한 맛이 많이 나는 우리 잎새주

알코오올 냄새가 살짝 많이 나지만 그래도 달착지근한 맛이 많이 나는 우리 잎새주

다만 또 거지다 보니.. 코스트코에서 저렴한데 도수는 40도인  럼을 샀었는데, 맛도 없고 너무 쎄서 처리하는게 힘들긴 했다ㅎㅎ.. 차라리 약간 도수는 낮고 맛있는 술이나 아님 차라리 담금주 플라스틱 소주를 데려가는 게 더 좋았을 거 같다 힝

코스트코와 이마트 장을 합쳐 대략 11만 원 정도를 썼다.

드디어 출발했다

어떤 사람들은 아예 서울에서 야간 버스나 기차를 타고 새벽에 구례에 도착해 바로 산을 타는 방법을 택하기도 하는데, 기분을 좀 내고 싶었던 우리는 전날 저녁에 구례에 미리 도착했다. 당일 새벽에 도착하는 방법과 우리처럼 전날 도착하는 방법 중 잘 고려해보고 본인들의 상황과 일정에 가장 적절한 방법을 택하면 되겠다.

역시 기분을 내기 위해 근처 종주러들 사이에 유명하다는 ‘동아식당’으로 가 돼지족탕을 시켰다. 소주도.. 진짜 뤼얼 맛있었다.. 국물이 진짜 소주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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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등산 전날이니 밥만 먹고 자려던 걸 잎새주를 몇 병을 시켰더라. 노곤노곤한데다 몸이 녹는 맛이라 그냥 술 진탕 먹고 담날 내내 자고 싶어지기 시작했다. 그냥 자고 내일 서울 가자고들 그랬다. 진짜 그러고 싶었다. 겨우 정신 붙잡고 나와 당장 다음날 간식 거리를 위해 방울토마토와 초콜릿, 물 등을 샀고 1만 2천원 정도가 들었다.

구례에는 지리산 종주러들이 자주 묵어서 그런지 여관이나 모텔이 꽤 많았고 쌌다. 하지만 싼만큼 시설은 정말 후진데, 여관이 네 명 묵어도 인당 2,3만원 대였다. 다들 아시다시피 모텔은 사실 성수기가 아니고서야 깎을 수 있다. 어차피 방은 비니까.. 돌아다니다 한 모텔에서 네 명에 8만원을 부르는 걸 현금으로 뭐로 뭐로 흥정해서 5만원에 득템했다. 각자 씻은 다음 피곤한 몸을 누이고(뭘 하지도 않았지만) 바로 잠에 들었다.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일단 자고.. 다음 이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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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차피 나무가 우거져 그렇게 햇빛이 심하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