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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현장이냐고? 아니다. 책걸상이 난잡하게 쌓여 있는 복도 구석에 사람이 보인다. 간간히 말소리도 들렸다. 가까이 다가가니 여학생 세 명이 있다. 지난 7일 강원도 원주시에 위치한 상지대학교의 점심시간이다. 학생들은 김밥과 빵으로 점심을 해결하는 중이었다. 왜 이런 불편한 장면을 연출하며 밥을 먹고 있는 걸까.

“진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확실하게 끝을 내고 싶어요.”

책걸상 사이에서 빵으로 점심을 때우는 중인 새내기들

책걸상 사이에서 빵으로 점심을 때우는 중인 새내기들

상지대가 수업을 거부한 지 4주가 지났다. 학교는 한산했다. 학기 중이라면 여느 학교처럼 학생들로 북적여야 할 캠퍼스다. 건물 곳곳에는 ‘수업거부’라는 종이가 빽빽하게 붙어 있었다.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만난 학생들은 올봄에 입학한 새내기다. 입학하기 전에는 나무가 우거진 캠퍼스에서 동기들과 점심을 먹는 순간을 꿈꿨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비리재단’이라고 불리는 김문기 전 총장의 그림자가 학교에 여전히 드리워졌기 때문이다. 수줍어하던 학생들은 곧 이야기를 쏟아냈다. “(학교 문제는)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심각해질 거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성적이 가장 걱정이에요. 몇몇 교양 수업은 출석체크를 하거든요”.

-부담이 크겠어요. 어떤 이유로 수업 거부에 동참하는 거예요?

“지금 저희가 피해를 본 만큼 다시는 이런 일이(재단의 복귀) 안 일어났으면 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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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입학한 신입생이 후배들을 걱정해야 하는 상지대. 이런 고민이 올해만의 것은 아니다. 무려 30년 묵은 투쟁이다. 현재 본관 뒤에 20여 개의 ‘열린 과방’ 천막이 설치되어 있다. 과방에서 답답하게 있는 것보다는 천막에 모여 무엇이라도 해보자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한쪽에는 교수들의 천막도 있다. 그곳에는 방정균 한의학 교수가 있다. 방 교수는 상지대 한의학과 88학번으로 입학하여 동대학 교수로 재직하다 지난 7월 파면을 당했다. 그는 상지재단과의 기나긴 싸움을 풀어 놨다.

“제가 88년도에 입학할 때도 싸웠어요. 그때 김문기 체제에 반대한 학생회 간부 학생을 야산에 끌고 가서 묻기도 했고요. 그래도 지금은 엄혹한 시대는 아니라 학생들이 단체로 행동할 수 있죠”.

 30년간 재방송 되는 상지대의 눈물

50여 명의 교수들이 상지대의 정상화를 요구하고 있다.

50여 명의 교수들이 상지대의 정상화를 요구하고 있다.

상지대학의 원래 이름은 원주대학이다. 당시 원주대가 부실대학으로 선정되자 교육부는 임시사(임시 이사회)를 파견했다. 1974년 김문기 씨가 이사장으로 취임하게 된 배경이다. 처음에 김 씨는 “원주대를 살려보겠다”고 했으나 1년 후에 상지대학으로 이름을 바꿨다. 학생들의 반발이 거셌다. 이후 상지대학은 예산 횡령, 부정 입학, 학교재산 사유화 등으로 비리사학의 중심에 섰다. 부정입학 문제는 유죄로 판결 났다. 김 씨는 1999년부터 1년 6개월 동안 복역했다. 그랬던 김 씨가 지난해 다시 총장으로 복귀했다가 해임당했다. 그러나 이사회 9명은 여전히 남아있다. 이사회에는 김 씨의 친아들도 포함되어 있다.

상지대에서 문기문기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언론광고학부 김진권 학생회장(4학년)과 유성두(4학년) 학생이 천막을 지키고 있다.

언론광고학부 김진권 학생회장(4학년)과 유성두(4학년) 학생이 천막을 지키고 있다.

학생들은 상지대 사태를 널리 알리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각 단과대는 과의 특성을 살려 시위를 한다. 한의대와 간호대는 흰 가운을 입고 학교를 돌며 침묵시위를 했다. 풍물패동아리와 댄스동아리의 공연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풍등을 날리거나, 추석에는 상지대 민주주의의 죽음을 풍자하는 차례를 지내기도 했다. 또한 팟캐스트 ‘학교를 부탁해’는 문화콘텐츠학 회장 김병준 등 3명의 학생이 상지대 현황을 알기 쉽게 전한다.

언론광고학부의 천막에 교수들이 “밥은 먹어야지”라며 김밥을 전해줬다. 학부 학생들은 학교의 언론 탄압에 맞서 자체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다.

-어떻게 전교생이 4주나 시위에 함께할 수 있죠?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인가요?

“학교를 사랑한다기 보다는(웃음), 실제로 우리가 불이익을 받거든요. 학교 상황이 나아지고 있었는데 구재단이 돌아오면서 갑자기 학교평가 D-등급을 받았어요. 등급이 나쁘면 국가장학금도 확 줄어버리잖아요. 취업지원도 못 받고… 교수님들도 징계를 받으니까 충격도 먹었고요”.

경칭 없이 이름 석자만 쓰였다는 이유로 상지대신문 3천부가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경칭 없이 이름 석자만 쓰였다는 이유로 상지대신문 3천부가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막 재발행된 상지대 신문은 쓰레기통으로 들어갔죠”

언론 탄압은 진행 중이다. 상지대신문은 1학기 종강호(256호)를 발행하지 못했다. 칼럼 내용이 문제라는 것이다. 결국 호외만 3회째 발간 중이다. 그러나 호외도 순탄치 않다. 이번엔 사진 한 장 때문이다. 경칭 없이 ‘김문기’라고 쓰인 플래카드가 사진에 찍힌 게 문제라는 것이다. 월요일 밤에 신문이 수거되자 다음 날 주간 교수에게 항의를 했다. 목요일에 재발행됐지만 결국 금요일에 쓰레기통에서 신문 3천 부가 발견됐다.

재단 찬반 칼럼마저 못 싣게 하자 전우재 편집장은 그 자리에 기자단 성명서를 담았다.

재단 찬반 칼럼마저 못 싣게 하자 전우재 편집장은 그 자리에 기자단 성명서를 담았다.

-언제 가장 힘이 났나요?

“학우들이 페이스북에 응원 댓글을 달아주거나, 팟캐스트 방송하는 모습을 서서 지켜봐 줄 때요. 그럴 때마다 상지대의 힘이 점점 세지는 것을 느껴요.”

전우재 편집장은 끝까지 해볼 것이라고 했다. 내부적으로 ‘승리의 경험치’가 쌓이는 것 같아서 힘이 난다고 덧붙였다.

전종완 총학생회장 등 학생대표단이 국회에 탄원서를 제출하러 가고 있다.

전종완 총학생회장 등 학생대표단이 국회에 탄원서를 제출하러 가고 있다.

수업거부는 학생 투표로 결정했다. 다음 주(5주차)에 접어들면 학생들은 유급된다. 그 전에 교육부의 임시사(임시 이사회) 파견 결정이 나야 한다. 교육부의 국정감사가 열리는 지난 8일이 결전의 날이었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으로부터 사태 해결에 대한 대답을 듣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학교 수업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도록 결정하는 일이 교육부의 손에 달렸었다.

그러나 이날 교육부 국정감사는 파행을 겪다 뒤늦게야 속개됐다. 국정교과서 채택 논란으로 마찰이 일었기 때문이다. 뜨거운 태양 아래 국정감사 발표만 기다리고 있던 400여 명의 학생들은 속이 탔다. 곧 교문위 의원 5명이 상지대 기자회견에 왔다. 다음은 유은혜 의원과의 문답이다.

유은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설훈, 유은혜, 유인태, 김태년, 박홍근, 정진후 의원이 방문했다.

유은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설훈, 유은혜, 유인태, 김태년, 박홍근, 정진후 의원이 방문했다.

-현재 국감에서 상지대 문제를 다루지 못하고 있는데요, 상임위원으로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오늘이 마지막 국감인 만큼 부총리에게 끝까지 요구할 겁니다. 저번 국감에서 거짓말을 한 김문기 씨의 아들 김성남 씨를 위증죄로 고발할 예정입니다. 오늘 속 시원한 답변이 못 나와서 답답하시겠지만 상지대와 함께 하겠다는 의지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여름 못지않은 더위에도 학생들은 자리를 지켰다.

여름 못지않은 더위에도 학생들은 자리를 지켰다.

국감이 미뤄지는 동안 학생·교수·직원 400여 명은 ‘부디 이번에는 해결’되기를 바라며 국회 앞에서 노심초사했다. 손으로 직접 쓴 피켓을 들고 있던 1학년 이세린(19)학생은 “공부를 안 좋아했지만 정말 수업을 듣고 싶다”며 “이렇게 수업이 듣고 싶을 줄은 몰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교육부는 왜 상지대 문제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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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례를 만들기 싫어서죠.”

정대화 정치학 교수의 대답이다. 교육부도 상지대 재단의 실상을 안다. 그러나 상지대의 위기를 인정하고 임시사를 파견하면 비리재단으로 시름을 앓는 다른 대학들의 손도 들어줘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예 첫 사례를 만들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했다.

“사학 민주화가 발전해야 해요. 대한민국 사학은 교육보다 영리의 수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리사학은 상지대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국가적 차원의 문제입니다”.

지겹고 힘든 싸움이다. 교수선언에서 최동권 국문과 교수는 “우리 누구와 싸우는 겁니까. 실체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상지대의 김문기 전 총장은 해임됐다. 그런데 아직도 그의 검은 그림자가 상지대를 덮고 있다. 도깨비와 싸우는 상지인(人)들. 임시 이사회를 교육부가 파견하는 것만이 상지대에 온기를 불어넣는 방법이다. 미온적인 교육부의 대응에 학생들은 오늘도 펜 대신 피켓을 들어야 한다. 우리의 사학은 과연 안녕한가.

총장실은 치적을 알리는 포스터로 벽을 메웠다. 김문기 전 총장은 이곳에 없다.

총장실은 치적을 알리는 포스터로 벽을 메웠다. 김문기 전 총장은 이곳에 없다.

지나친 소유욕은 정신병입니다 -자연과학대

지나친 소유욕은 정신병입니다 -자연과학대

사진/ Simon, 아니아니

사진 편집/ 수련

편집 및 교정 / 저년이

취재 및 글/ 아니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