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홀리데이다

주방에서 일을 한 지 3개월이 되는 시점에 비행기표를 끊었다. 시드니행이었다. 지역 이동을 하기 위함은 아니었고, 여행이 목적이었다. 한마디로 워킹홀리데이를 끝내려고. 앞으로 새 지점을 열기 전까지(10월 초)는 일주일에 최소 4번의 고정적인 시프트가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내린 충동적인 선택이었다.

일주일에 최소 4번을 일하면 택스를 떼고 600불정도. 방값 내고 생활비 쓰고 하면 주당 세이빙은 350에서 400불. 지금 통장에 얼마를 모았으니, 이 정도면 세계 여행을 하는데 무리가 없을 만큼의 돈은 모으겠다, 싶었던 게 9월 말이었다. 중간중간 돈이 모일 때마다 비행기표를 조금씩 사들였고, 100만원 남짓 되는 돈으로 유럽까지 대강적인 루트를 완성했다. 비행기표를 산 구간은 퍼스-시드니, 시드니-싱가폴, 방콕-콜카타, 델리-카이로, 샤름 엘 에스키-런던이다.

솔직히 일은 해도 해도 힘들었다. 오히려 하면 할수록 힘들다는 말이 맞겠다. 일에 적응한 지는 한참이었으나, 체력이 문제였는지 그냥 멍하게 일만 하다 오는 날도 부지기수였다. 특단의 조치로 끊은 휘트니스 센터도 빠지기 일수였다. 롤러코스터 같은 기분으로 몇 달이 지났다. 일주일동안 우울테크를 타면, 그 다음 일주일은 하이텐션으로. 몇 주간 그러기를 반복했다. 그동안 나의 감정적인 변화 외에도 다양한 일들이 있었고 그 이야기들을 풀어 놓고 싶으나 여행을 시작하게 되면 정기적인 연재가 어렵다는 점, 여행 관련 글을 쓰기도 벅찬데 워홀 기까지 쓸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는 점에서 워홀 기는 이쯤에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KakaoTalk_20150609_154251778

변명같이 들리겠다만, 나의 워킹 홀리데이는 워킹과 워킹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일을 구하는 과정이 6할 쯤 차지했다고 보아도 무방하겠다. 홀리데이는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코워커들과의 일화라던가, 호주 생활 동안 있었던 재미난 일 하나하나 모두를 소개하지 못하는 게 아쉽지만, 마지막으로 호주 생활 전반에서 느꼈던 점과 워홀과 관련한 생각들을 풀어보고자 한다.

인종차별 안 당했어?

호주에 있다고 했을 때, 가장 많이 듣는 물음은 ‘인종차별 안 당했어?’ 였다. 내 대답은 ‘전혀’. 호주도 이민자들이 이룬 국가다. 거리를 나가면 동양인이 실제로는 30% 쯤 된다. 물론 퍼스 기준으로. 지금은 시드니에서 이 글을 쓰는 중인데, 여긴 정말 동얀인, 서양인이 반반인 듯하다. 시티에서 영어 다음으로 많이 들리는 건 중국어고, 버스를 타면 히잡을 두른 여성들도 자주 보인다. 챠이나타운은 중국인 외의 동양인들로 늘 북적인다. 가끔 나에게 일본인이냐고 묻기도 하지만, 아니, 한국에서 왔는데? 하면 곧바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다.

이걸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냥 무지에서 오는 편협한 사고방식정도…?1)사실 또이또이긴 함 나도 어렸을 때 백인은 다 미국인인줄 알았으니, 뭐. 서양인들도 동양인은 다 중국인, 일본인으로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편집자주-그렇다고 해서 호주에 인종차별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편집자주-그렇다고 해서 호주에 인종차별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살기 좋은 나라 호주

호주는 정말 정말 살기 좋은 나라임이 분명하다. 일단 세계 각국에서 워홀들이 몰려드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인 ‘시급’이 짱짱맨이다. 자국민에 한정되어 있긴 해도, 복지 또한 두말할 것 없고. 더불어 소수에 대한 배려가 지극하다. 호주에 와서 제일 충격 받았던 게, 유모차를 끌고 버스를 탈 수 있다는 것과 휠체어를 타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는 거였다.

한국인들은 한국에 장애인들이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사회 곳곳에 존재하지만 사회 시스템의 부재와 인식 문제로 밖으로 나서길 꺼려한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없다고 생각하는 것. 누군가의 책에서 본 내용인데, 이를 다시 절감했다. 휠체어에 타거나 유모차를 미는 사람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면, 그들이 올라오기 쉽도록 버스에서 웬 발판이 나온다. 한국에서는 ‘저상버스’ 명패를 달고 다니는 그 버스가 호주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버스다.

한국의 저상버스 도입율은 전국 18%에 불과하다. 그나마 서울의 경우는 32% 정도이다.

한국의 저상버스 도입율은 전국 18%에 불과하다. 그나마 서울의 경우는 32% 정도이다. cc by 위키디피아

호주의 개방성과 다양성..?

딱히 개방적이거나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개방적인 건 성에 관해서만, 그 중에서 especially sexual talk에 대해서만 개방적이다. 여기서도 원나잇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많고, 미드에서처럼 남친, 여친 있는 애랑 자고 이러면 엥? 완전 또라이 아녀? 소리를 듣는다. 특히나 다양성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취존(취향존중)이 아니라 취좆(…)이 어마무시하다.

내 성격 때문에 일어난 일을 예로 들자면, 프롤로그에서도 짧게 소개했듯 나는 굉장히 내향적인 사람이다. 소심하거나 대범하지 못하고, 부끄러움을 많이 탄다는 흔히들 말하는 ‘내성적인’ 게 아니라 그냥 혼자가 좋고 좀 내버려뒀으면!! 대화보다는 생각하는 걸 즐기는 그런 사람이란 말이다. 그런데 코워커들은 이런 날더러 왜 이렇게 조용하냐, 왜 이렇게 말이 없냐, 영어도 잘하는데 말 좀 해라, 해댔다. 물론 여기까진 괜찮았다. 그렇게 시작된 지적질은 ‘너 여행 간다며. 그 성격으론 여행하기 힘들걸. 너 성격 좀 바꾸는 게 좋겠어.’ 로 치닿기 시작했다. 이후에야 서구사회에서 내향적인 사람은 무슨 히키코모리급 취급을 받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럴 때면 엄마를 붙잡고 찡얼대기도 했는데2)난 엄마의 성격을 빼다 닮았기 때문에, 엄마는 외향적인 사람을 선호하는 건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 낸 산물이라며 한마디 했다.

내 성격! 왜!

내 성격! 왜! 안 바꿔! 싫어!

그래서 이제 성격을 좀 바꾸라느니, 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면 ‘다 내가 자본주의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사람이라 그래’ 생각하는 궤변론자가 되기로 했다. 난 내 성격을 바꿀 생각도 없고, 지금 내가 너무 좋으니 아무도 뭐라고 안 했으면 좋겠다. 그냥 다름을 다름으로 인정했으면. 내향적인 쭈구리는 엘레베이터 타는 게 제일 겁난다. 한국에서 엘레베이터 타면 멀뚱 멀뚱 서 있기만 해도 됐는데, 눈만 마주쳐도 굿모닝 인사를 하는 여기서는 전혀 small하지 않은 스몰톡을 이어나가야 하니까.

나야 원래 마이웨이를 잘 하는 사람이니 이런 말을 듣고도 ‘c8!!! 난 나야!!! 지들이나 성격 좀 바꾸지 왜 나보고 이래라 저래라 배 놔라 감 놔라? 난 x나 잘 살고 있으니까 니네 앞가림이나 해!!’ 할 수 있지만, 이래저래 남 말에 잘 휘둘리는 사람이라면 처음에 많이 방황하리라 생각한다. 내가 성격을 바꿔야하나? 같은. 님들 잘 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응원합니다.

그리고 동양인에 대한, 특히 한국인에 대한 typical stereotype도 있다.. 한국여자=성형, 성매매, 순둥순둥하게 예쁨, 키 작고 마름, 화장 어떻고 저떻고 옷 블라블라하게 입음. 같은…? 그래서 다들 나를 처음 보고 놀란다. 날카롭게 생기고 키도 크고 안 꾸미고 다녀서. 아, 더불어 섹드립도 잘 받아치고 그러다보니 더 그랬던 것 같다. 동양여자=shy하다는 편견도 이건 뭐 대명사급으로 고정되어있는 편견이니까. 가끔 일 하다가도 너 한국인 아니지? 어릴 때 호주로 왔는데 그냥 한국인이라고 하고 다니는 거 아냐? 여권 보자, 뭐 이런 농담을 하기도 하는데 나도 그 자리에선 웃고 넘기지만 집에 오는 길에 곰곰히 생각해보면 저런 게 다 스테레오 타입에서 비롯한 농담이 아닌가, 괜히 혼자 진지빨기도 하고 그런다.

워홀러의 영어실력은 중요할까?

내가 일을 그만둘 시점이 다가오자 셰프는 새로운 직원을 뽑기 위해 ☆누드포럼 배 키친핸드 뽑기 대회☆를 열었다. 이력서는 50장이 넘게 들어왔고, 그 중에 추리고 추려 10명만 인터뷰를 보겠다고 했는데… 10명 중에 무려 6명이 한국인이었다. 처음 인터뷰 온 분은 키가 작고 너무 말라서 탈락. 두번 째로 온 분이 마음에 들어 후에 연락을 했더니 시프트를 더 많이 주는 다른 곳에 일을 구해서 탈락. 첫 번째 분이 탈락한 이유를 듣고 셰프에게 ‘혹시 내가 키 크고 안 말라서 뽑았어;?’ 물어봤더니 ‘아니, you look tough!’

…? 터프하게 생겼다뇨…? 내가 화냈더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주방일 힘들어서 자기 호텔에서 일할 때도 일 하다가 도망가는 애들 많이 보고, 무겁다고 엄살부리고, 일 힘들다 징징거리는 애들 많았다, 넌 안 그럴 것 같았다고. 칭찬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앞의 두 분은 서툴게나마 영어로 의사소통이 되었는데, 그 다음에 인터뷰 오는 분들은 정말 영어가 노답수준이었다. 심지어 한 분은 인터뷰를 하는데도 영어가 안 통해서, 오죽하면 셰프가 나를 불러 통역을 부탁했다. 전에 가게에서 얼마나 일했냐는 질문을 못 알아듣고, 두 달이라는 대답도 못하는 정도였다. 이전에는 스시집에서 한국인들과 같이 일했다고. 시급이 너무 적어서 다른 일을 찾아보는 중이라고 했다. 스시집에서도 키친과 핫푸드에서 일을 해 경력도 있고 비자도 많이 남은 상태라 이 분이면 괜찮겠다 싶었는데, 셰프가 영어를 너무 못해서 안 되겠다고, 그냥 한국 레스토랑 다시 알아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더이다. 이 분이 가자마자, 홀에서 일하는 홍콩 친구는 영어도 못하는데 워킹 오는 사람들 무슨 생각으로 오는지 모르겠다며, 조잘댔다.

예전 집에서 워킹을 함께 온 3명의 한국인과 같이 산 적이 있었는데, 셋 다 영어를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고. 어째어째 일은 구했고, 셋 중 한명은 버블티 집에서 일을 했다 한다. 근데 그 분이 영어를 못하니 사장이 tfn3)tax file number에 오류가 있다니 뭐니 하면서 세 달동안 임금을 주지 않았다고. 그 상황을 다 지켜봤던 이 홍콩친구는 자기가 너무 화가 나는 바람에 대신 나서서 세 달치 밀린 임금을 다 받아줬다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영어 못하는데 워킹 온 한국인들, 한국인 식당에서 시급 얼마 못 받고 일하는 거 가지고 불평하면 안 된다고. 자기들이 영어를 못하니까 사장들도 만만하게 보고 “얘네 어차피 영어 못하니까 오지잡4)Ausie job 호주인이 영업주인 영업장도 못구하고, fairwork-한국 노동청 같은 기관-에 신고도 못하겠네”라며 시급을 점점 더 낮추는 거라고. 어차피 그래도 일하려는 한국인들 차고 넘치니까.

yangsiim

굉장히 공감가는 말이었다. 최저시급도 안 지키는 한인잡 사장들은 몽땅 벌 주고 쫓아내는 게 맞다. 하지만 워홀러들이 제대로 된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호주가면 돈 많이 준대!!’ 하는 이상만 바라보며 호주에 오니까 한인 사장들도 그걸 더 악용하는 거지, 뭐. 그리고 일을 구하는 데에는 영어 실력뿐만 아니라 운빨도 엄청나게 작용을 하니, 내가 영어를 잘하는데도 일을 못 구하고 있고…돈은 돈대로 떨어지고….하는 분들은 일단 생활비만 벌자는 마음으로 한인잡을 잠깐 하시다 재빠르게 발을 빼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지만.. 12편밖에 되지 않는 짧디 짧은 글이지만 쓰는 동안 참 재미있었습니다. 어찌 다들 알고 찾아오시는지, 페북 메시지로 응원의 말 남겨주시는 분들도 있었고요. 다들 너무나 감사합니다.

정말로요..

정말로요..

저는 긴 긴 여행을 막 출발한 참입니다. 여행기도 혼자 끄적거리고 있는데, 먼 훗날 기회가 된다면 다시 만나고 싶네요. 미흡한 저를 거둬준 미스핏츠와 함께 읽어준 독자님들 모두 감사했습니다! 그럼 안뇽~~~

 

편집 및 교정 / 커밋
글 / 가오나시

   [ + ]

1. 사실 또이또이긴 함
2. 난 엄마의 성격을 빼다 닮았기 때문에
3. tax file number
4. Ausie job 호주인이 영업주인 영업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