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에서 눈을 떴다. 바깥이 시끌벅적했다. 부은 눈을 비비며 바깥으로 나가자 처음 보는 아저씨가 기관장님과 함께 선원들한테 둘러싸인 채 서있었다. 모두 모이기를 기다렸는지, 내가 도착하자 기관장님이 아저씨를 소개했다.

‘오늘부로 같이 일하게 됐다. 같이 잘 일해보자. 자. 소개해봐.’

‘안녕하십니까. 서울에서 노가다를 하던 45살 노가다라고 합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출항은 내일이다’

기관장님은 그 말을 끝으로 숙소를 떠나셨다. 20대 베트남 사모님과 놀러 가신다 했다.

문득 지난번 돈 이야기를 한 술자리에서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기관장님은 오랜 시간 노총각으로 계시다가 선장님의 중계로 장가를 가셨다 했다. 결혼하신지는 3년쯤 되셨다. 한창 신혼일 때였다. 결혼을 계기로 기관장님은 이 배에 눌러 앉게 되셨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기관장님은 평소엔 우리와 함께 선장님 욕을 하다가도, 막상 선장님 앞에서는 항상 약한 모습을 보이셨다. 그러나 우리에겐 공공연한 (그러나 심증뿐인) 비밀이 한 가지 있었다. 기관장님의 소중한 베트남 사모님이 젊은 베트남 남자와 불륜을 저질렀다는 것. 사모님 손을 잡고 웃는 기관장님 얼굴은, 그래서 내게 가끔 쓰리게 빛나 보였다.

아무튼, 우리에겐 다음 항해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엔 낯선 노가다 아저씨 한 분까지 함께였다.

노가다 아저씨와 함께 한 항해

다행히 갑판장(지난 화에 등장했던 그 분)은 항해를 가기 싫었는지 항해 당일 사라져 있었다. 기관장님은 갑판장을 계속 기다리다 출항 때까지 그가 오지 않자 화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자식은 선주한테 빚을 어찌 갚으려고 이러나…참…’

지난번 숙소에서 얼핏 들었던 기관장님과 갑판장님의 다툼 소리가 생각났다. 새벽에 숙소에서 자다가 화장실을 다녀올 때 였는데, 문 바깥에서 말다툼 소리가 들렸다. 기관장님 목소리였다.

‘너 이 자식아! 자꾸 이따위로 일 할 거야!? 여기가 너 꼴리면 나가고 일하는 그런 곳이야?! 너 지금 총각 때 선주한테 진 빚도 못 갚았잖아?!’

‘아 그 이야기는 왜 해요…. 아 씨발… 나 갈라오. 아저씨 때문에 일 못해 먹겠네 진짜..’

그 다음날 갑판장님은 사라져 있었다. 아마도 선원 시절 가불했던 돈을 못 갚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사실을 걸고 넘어지는 이가 껄끄러워 피했던 걸까. 얼마 전 나에게 배에서 일하면 벌이가 좋다고 계속 일하라던 갑판잡님의 모습이 생각나 씁쓸했다. 뭐. 어찌됐건 선주님한테는 이익이다. 그분에겐 크지 않은 돈으로 숙련된 선원의 목에 목줄을 채워 놓을 수 있으니까.

어쨌든 갑판장님이 사라졌으니, 지난번과는 달리 평화로운 항해가 가능할 것 같았다. 나는 새로 들어온 노가다 아저씨에게 일을 잘 가르쳐주기로 결심했다. 동시에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들어 복잡한 심정으로 일을 시작했다. 처음 온 아저씨를 배려해, 우리는 중간에 일을 멈추고 점심을 먹었다. 점심은 다른 식사와 달랐다. 식사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만큼 취침 시간이 줄어든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밥을 먹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아침에 잡은 고등어 구이를 맛있게 먹던 노가다 아저씨가 뜬금없이 입을 열었다.

‘희야~ 하늘은 푸르고! 바다는 출렁이고! 바람은 시원하고! 이런 날 시 한수가 떠오르네요!’

해맑해맑

해맑해맑

부드러운 중저음의 ‘느끼한’ 목소리가 허공에 퍼졌다.

밥알을 씹는 형들의 표정이 ‘이건 뭐야?’하는 표정으로 찌푸려졌다.

설상가상으로 아저씨는 시를 읊기 시작했다.

‘큼큼….. 갈치구이,

갈치구이,

내 앞에 놓인 잘 구워진 갈치구이 하나.

노오란 살이 은색 껍질에 쌓여. 맛있게 구워져 있다…’

.

.

.

.

허공에 노가다 아저씨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멀찍이서 파도소리가 들린다.

아… 여기는 어디고 난 누구인가…

‘허허허~ 딱 이런 날 막걸리 한잔하면서 읊으면 맛이 딱 사는데~’

싸늘한 분위기 속에 보도방형이 아저씨의 말을 잘랐다.

‘아저씨 뭐하세요? ‘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빨리 드세요. 지금 아저씨 말고 다 먹었잖아요. 야. 막내 설거지 시작해.’

‘허허허…?’

아직 분위기 파악을 못한 아저씨의 헛웃음 소리에 보도방형은 재차 말을 이었다.

‘아니 일 하다 말고 왔으면 빨리 먹고 일 시작해야지 지금 뭐…’

보다 못한 조폭형이 보도방형을 달랬다.

‘형님. 형님. 됐어. 가서 담배나 한 대 피자. 막내야. 아저씨랑 마무리해라.’

아저씨는 형들의 뒷모습을 보며 어색하게 웃다가 사람들이 다 떠나자 밥그릇을 들고 일어났다. 바다를 보며 끝까지 느긋하게 밥을 드셨다.

…….결국 설거지는 나 혼자 했다.

이상한 아저씨

오후시간도 평탄하지 않았다. 아저씨는 이상했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낯선 환경에 오면 빨리 그곳에 적응하려 하고, 다른 사람을 관찰하고 모방하며 빨리 그 환경에 대해 학습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그렇지 않았다. 일도 하는 듯 마는 듯 설렁설렁 했고, 이따금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았다. 마치 그 시선을 따라 혼도 같이 빠져 나간 것 처럼 말이다. 뱃멀미도 하지 않아 몸도 건강할 텐데, 어디가 안 좋은 걸까.

저녁식사는 아저씨 자랑을 듣는 시간이었다. 본인이 책을 얼마나 좋아하는 문학적이고 교양있는 남성이며, 서울에서 노가다 할 때 무용담을 늘어놓으며 자신이 맡은 일에 있어서는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당연하지만 선원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열심히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는 듯 열심히 입을 놀렸다.

아저씨 덕분에 우리 모두는 어색한 분위기로 잠자리에 들었다. 아저씨의 모습이 못내 마음에 걸렸지만, 나처럼 시간이 지나면 아저씨도 나아질 거라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아저씨는 변함 없었다. 아니, 오히려 날이 가면 갈수록 ‘유체이탈’이 심해져 갔다. 기관장님과 형님들이 몇 번을 이야기해도 고쳐지지 않았다. 슬슬 사람들은 그의 주위로 침묵의 벽을 치고 있었다. 벽 안으로 들끓는 것은 사람들의 분노였다. 나만이라도 아저씨가 고립되는 것을 염려해 나름 잘 대해주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가장 끔찍한 건 아저씨가 자신의 교양이나, 의식 수준을 내세우는 걸 계속 들어줘야 한다는 점이었다.

d0098007_4f18ea035f481

…..

그리고 올 것이 왔다…

나는 아저씨에게서 받은 스트레스를 그물 당기는 일로 풀었다.

문득 정신을 차리니 고기가 평소의 3~4배는 많이 올라오고 있었다. 선장의 메가폰 소리가 기다렸다는 듯 고막을 때렸다.

‘야!! 씨발!!! 이거뭐냐!!!! 오랜만에 고기 잡히냐!!!!!!?!? 야!!! 기관장 임마!!! 물레 빨리 돌려봐!!!’

기관장님이 작업 속도를 올리기 위해 물레를 빨리 돌렸지만, 선장의 마음에 차지 않은 것 같았다.

‘씨발새끼야!! 감 안오냐!! 더 빨리 돌리봐라!!’

신이 난 선장은 마이크에 씨발을 연발하며 날뛰었고, 우리는 작업속도를 따라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아…. 제발…. 고기 많이 잡히면 또 잠 한숨도 못 자고 계속 일 해야 하는데…..’

마음속으로 몰래 빌어봤지만, 그물에 걸려 올라오는 고기는 점점 많아졌다.

오후 4시, 작업을 시작한지 4시간 정도 되었을까. 선장의 목소리가 배에 울려퍼졌다.

‘야!!!! 기관장!!! 만선이다. 씨발!!! 빨리 준비해!!!!’

다른 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시더니, 작업 형태가 조금 바뀌었다. 나와 조폭형이 꼬인 그물을 푸는 것 까지는 같았다. 반면 뒷사람들은 고기를 빼며 그물을 정리하는 대신 고기가 걸린 채로 그물을 넓게 폈다. 선원 둘이 어창의 얼음을 그물 위에 뿌렸다. 선장의 즐거운 목소리가 커다랗게 울려 퍼졌다.

‘씨발~~~~~ 조구야~~~ 씨발~~~ 조구다 조구여!!!!! 야 씨발 빨리하고 물으로 돌아가자!!!!’

조구가 뭔지는 알 수 없었다. (조기를 말하는 걸로 추정되긴 했지만) 어쨌든 다른 분들이 전부 신이 나 일 하는 분위기라 나도 덩달아 신나게 일을 했다. 그때였다.

“쾅!!”

보도방 형이 그물추를 바닥에 집어 던졌다.

‘아 좀 적당히 해요 씨바알!!!!!! 아까부터 다른 사람들 디지게 일하고 있는데 손가락 하나 까딱이지 않고 병신 좆 같은 시나 쳐 외우고 있고!! 아니 씨발 바깥에서 일 많이 했다매!! 어?! 다른 사람 뭐하는지 안보여요!?!? 좆같네 진짜!!’

형 앞에 서 있는 건 노가다 아저씨였다. 둘 때문에 작업이 일시 정지되었다. 전부터 아저씨를 아니꼽게 보던 보도방형이었다.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금방이라도 담궈 버릴 것 같았다. 보도방형의 도끼눈을 마주하며, 아저씨는 예의 그 느끼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 아니…. 말이 자네 너무 지나치군~ 내ㄱ….’

보도방형은 억눌러온 화가 터진 듯 멈추지 않았다.

‘뭐!!!!! 그래서 뭐! 당신 일 했어? 했냐고!’

보도방형은 이미 꼭지가 돌아 있었다. 노가다 아저씨도 화가 났는지 엉성하게 주먹을 쥐고 들어 올렸다. 상황은 일촉즉발로 치달아 갔다. 그때 선장의 목소리가 상황을 잘랐다.

‘야!!!! 다 닥쳐!!! 이 씨발 좆같은 새끼들이 뭐하는 거야. 닥치고 떨어져 머저리같은 새끼들아! 어이. 기관장 작업 계속해. 누가 물래 멈추라고 했나?’

그러고는 노가다 아저씨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야!! 아저씨!!! 씨발 이제는 귀까지 쳐먹었나. 야!!! 아저씨!!! 당신 거기 있지 말고 조폭이랑 자리 바꿔서 그물이나 당겨!’

이어지는 중얼거림.

‘…………나이는 똥꼬로 쳐먹었나. 하 씨발 바다에 던져 버릴 수도 없고’

.....2

…..2

아저씨와 나는 그물을 부채꼴로 넓게 펼쳐 정리하는 일을 맡았다. 이때 그물이 늘어지지 않게 양 끝에서 그물을 동일한 양만큼 잡아줘야 한다. 아까처럼 그물을 당기는데 갑자기 무거워진 그물 무게 때문에 손가락이 강제로 꺾였다.

‘아악!’

비명을 듣자 보도방 형이 외쳤다.

‘야!!! 막내 쎄게 당겨! 왜그래!!!’

‘노가다 아저씨!! 그물 좀 많이 잡아주세요!! 손가락이 뜯겨 나갈거같아요!!’

‘ㅇ…..응!!’

아저씨는 아까 사람들의 욕을 듣고 정신이 나간건지 가뜩이나 둔한 몸이 더 둔해졌다. 거기다 내 말을 이해 못한 건지 그물 일을 전혀 돕지 못했다. 그물은 더욱 더 늘어졌고, 늘어진 그물을 내가 다 당기자 물고기 무게 때문에 내 손가락에 걸린 그물이 다 뜯겨져 나갔다. 내 손가락은 손가락대로 힘줄이 끊어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고통을 못 참고 소리쳤다.

‘아!!!! 아저씨!!! 제발!!! 쫌!!!!!!!!!!!!! 아아아악!!!!!!!!!!!’

한순간 아저씨를 발로 걷어차서 바다로 떨어트려버리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이 들었다. 동시에 예전에 다른 선원들이 일에 서툰 나에게 왜 욕을 하고 혼을 냈는지 이해되었다.

한계다 싶었던 걸까, 결국 다시 선장이 나섰다.

‘야!! 막내 그물 다 찢는다!!!! 저 아저씨 그냥 빠지라고 해!! 씨발 일을 다 망쳐놔!! 막내 넌 안디한테 그물넘기고 어창에서 얼음 부숴!’

나는 고통스럽게 경련을 일으키는 손가락을 어루만지며 어창으로 내려갔다. 어창에서는 큰형님이 쇠갈퀴로 얼음을 부수고 있었다. 나는 큰형님 곁에서 부서진 얼음을 삽으로 퍼 상자로 옮겼다. 그러다 보니 손가락의 아픔이 좀 가라앉는 것 같았다. 내가 힘든 게 사라지자, 그때야 다른 사람 힘든 게 보였다. 큰형님 이마에 땀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형님. 갈퀴 저한테 주세요. 제가 해볼게요.’

그러자 큰형님은 일을 멈추고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아무 말 없이 갈퀴를 줬다. 나는 갈퀴를 쥐고 힘차게 긁어나갔다. 생각과는 달리 갈퀴는 얼음은 단단했다. 갑판에서 얼음을 재촉하는 소리가 들렸다.

‘얼음 아직 멀었어요?!’

큰형님이 말 없이 다가와 갈퀴를 가져갔다.

‘보기엔 원래 다 쉬워 보이는 법이다.’

부끄러워진 나는, 말없이 큰형님 일하는 것을 관찰했다. 단순한 일이니 만큼 분명 노하우가 있을 것이다.

가만히 큰형님을 바라보자 움직이는 법칙이 보였다. 처음엔 최대한 빠르고 가볍게 여기저기 건드리다가, 얼음이 약한 부분을 발견하면 거기를 ‘쪼개’갔다. 힘으로 얼음을 부수려고 했던 게 내 실수였다.

‘큰형님! 이제 알겠어요. 다시 해보겠습니다!’

큰형님은 살짝 웃으며 갈퀴를 나에게 넘겨줬다.

뿌듯뿌듯

뿌듯뿌듯

작업은 오후8시에 끝났다. 저녁식사를 하자 기관장님이 앞으로 할 일을 대략 설명 해 주셨다. 가까운 항구에서 아주머니들을 불러모을 거라 하셨다. 아주머니들은 그물을 잘라서 고기를 빼내는 역할들이셨다. 우리는 그걸 정리하기만 하면 된다. 여기가 중국 공해 지역이니까. 돌아가려면 대략 하루하고 반나절 정도 걸릴까. 손가락과 손목이 상했던 나는, 그 피로에 배에서 죽은 듯 잠만 잤다. 다른 사람들은 포커를 치며 놀았다. 일기 쓰는 것 말고는 잠만 자는 날 보며 기관장님이 말씀하셨다.

‘막내 넌 뭐 하러 사냐. 먹고. 자고. 싸고. 일하고. 여자랑 노는 것도 아냐. 술도 안 마셔. 뭔 재미로 살어. 허허허’

내가 대답이 없자 기관장님은 멋쩍은 듯 어깨를 으쓱하시곤 다시 포커에 집중하셨다. 파도에 맞춰 흔들리는 숙소 천장에 어지럽게 춤추는 사람들 그림자가 보였다. 일을 할 때 나는 살아 있음을 느끼고 즐거웠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일이 끝나면 견딜 수 없는 허무함이 엄습했다. 입 밖에 내지 못한 속마음이 가슴 속에 메아리처럼 맴돌았다.

….그러게요. 제가 여기서 뭘 하는 걸까요. 매일매일 똑같은 일. 살아가는 의미도 목적도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형님들처럼 오입질하고 술 마시고 노는게 맞는건 아니잖아요…어떻게 사는게 옳게 살아가는 건가요.

문득 노가다 아저씨가 떠올랐다. 배에 올라서도 자기가 본래 어떤 사람이었는지 설명하고 싶어했던 아저씨. 시. 바다. 교양… 모든게 씁쓸하기만 했다.

서귀포 부둣가 : 숨조차 아껴 쉰 72시간

나도 모르는 사이 잠이 들었던 것일까. 눈을 뜨자 서귀포 부둣가가 보였다. 부둣가에는 아주머니들이 3~40명이 바글바글하게 모여 계셨다. 배를 정박하고 그물을 꺼내자 그분들이 우르르 몰려와 그물을 자르고 조기를 빼 상자에 담으셨다. 나는 상자를 정리해 탑차에 실었다. 다른 아저씨들은 아줌마들과 신나게 이야기하며 조기를 뺐다. 밤이 지나고 새벽이 밝아오자 우리와 일하던 아주머니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또 다른 무리의 아주머니들이 찾아오셨다. 그것이 몇 번 반복되었다.

고개를 들자 수평선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손발의 감각이 둔했다. 땅을 걷는게 아니라 공중을 떠다니는 것 같았다. 허리와 무릎이 욱신거렸다. 멍하니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두 눈의 초점이 흐렸다.

sunrise-on-the-sea-275274_640

‘……..저 해가 몇 번째 해였더라…. 2번째?…. 아니다. 3번째였나………………….’

그 순간, 의식이 몽롱해지고 잠이 쏟아졌다. 몇 초 정도 시야가 흐렸다. 몸을 멈춘 순간 의식이 잠들어 버렸던 것이다. 3일 연속 잠을 자지 않고 버틴 까닭이었다. 밥조차 먹었는지 말았는지 기억이 없었다.

24시간을 연속으로 일하자 말할 기운이 없어지며  배가 고프지 않아졌고, 38시간째가 되자 음식을 먹기 힘든 건 물론 아예 뇌가 마비가 된 것 같아졌다. 48시간이 넘어가자 본능적으로 에너지를 아끼려는 건지 숨도 조심해서 쉬게 되었다. 생각 역시 멈추게 되었다. 몰려오는 잠 기운에 고개를 세차게 흔들자 그제야 선장님과 선주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이번에 얼마 못 받았네… 실수했네…. 선주님. 그냥 아(애)들 데리고 배에 다 주워 담고 계속 향해할걸 그랬심더. 허허’

‘와, 이번에 얼마고?’

‘한….. 5? 6천만 원정도지 싶습니다..’

4일째 새벽이 돼서야 모든 일이 끝났다. 4일 밤을 자지 않은 스스로가 놀라웠다. 심지어 형님들은 아직도 기운이 남은 모양이었다. 배쪽으로 가자  술자리가 펼쳐져 있었다.조폭형이 나를 불렀다.

‘막내 니도 한 잔 할래? 피곤하면 들어가고’

형의 제의가 무척 고마웠지만 더 이상 안자면 정말로 수명이 단축될 것 같았다.

‘아뇨…. 저 들어갈게요…. 죄송합니다아……’

‘아이다. 푹 쉬라. 수고했다. 아 아저씨, 아저씨는 우리랑 이야기 좀 하죠.’

조폭형은 웃으며 나를 보내고, 대신 노가다 아저씨를 불렀다.

아저씨가 좀 걱정 됐지만, 그보다는 내 생존 본능이 먼저였다. 나는 악취나는 담요에 얼굴을 처박고 죽은 듯 잠들었다. 잠결에 어렴풋이 사람들이 무언가 소리치는 것을 들었지만, 다시 잠들었다.

ZZZZZ

ZZZZZ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4일 동안 잠을 못잔 여파인지 심한 두통이 몰려왔다. 머리를 쥐어뜯다 눈을 뜨자 뭔가 이상하다. 노가다아저씨 가방이 사라져 있다. 설마 하는 생각에 서둘러 갑판으로 올라가자 보도방 형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형. 아저씬요??’

‘……………..도망갔다.’

형이 뿜은 담배연기가 겨울 공기에 섞여 사라졌다.

뭔가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더 묻지 말라는 무언의 시선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노가다 아저씨가 없어진 항해

사람 하나가 도망갔지만, 배에서의 일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소처럼 돌아갔다. 우리는 부서진 그물을 보수하고, 각자 짧은 자유 시간을 즐긴 후 다음 항해를 준비했다.

하아…..’

그물을 고치다가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자 뒤에서 선장님이 물으셨다.

‘와. 금마 간게 신경쓰이나?’

‘아뇨. 어…..네. 사실 좀 그렇네요.’

선장님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곤 담배를 한 모금 깊게 빨았다.

‘평생 그렇게 살꺼다. 더럽고 치사하게. 비루하게 말이다. 비겁한 새끼….’

아저씨는 배를 타는 내내 사람들에게 폐만 끼치다가 승선 기간(8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도중에 하선할 때 내는 배상금을 내기 싫어 야반도주했다. 아저씨는 연세가 제법 있으셨다. 처자식도 있다고 하셨고, 자기애도 충만하신 분이었다. 나름대로 무언가 하고 싶으셔서 이곳으로 오신 것 일테고, 우리에게 자신은 일을 잘 한다고 열심히 어필하셨다. 그리고 어이없을 정도로 허탈하게 도망가셨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실까. 선장님 말대로 평생 그렇게 살아가실까.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그분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일까.

나와 그 사람이 무엇이 다른 것일까.

문득 사람과 사람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와 다른 형님들이 각자 이곳에 온 배경이나 동기는 크게 다를 바 없을 테였다. 부양해야 할 사람이 있고, 그걸 위해서 돈을 벌려고 이곳으로 온 것이다. 그리고 어찌되었건 나 역시 무언가를 얻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 그리고 이런 우리 중, 아저씨는 도망가셨다.

무엇이 사람과 사람의 차이를 만드는 것일까.

그렇게 몇 주가 지났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나의 고교 졸업식이 다가오고 있었다. 졸업식엔 꼭 참가하고 싶었기에, 나는 고민하다가 선장님께 말을 꺼냈다.

‘고등학교 졸업식이 슬슬 다가와서 집에 한번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 괜찮을까요?’

‘이번 항해까지만 갔다가 와라.’

‘어….네. 저도 가고는 싶은데. 졸업식이 걱정돼서…’

‘괜찮다.’

평소 항해일을 생각하면 참가 못하겠지만, 이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니 이번 항해는 짧겠구나 싶어 그냥 알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몇 일 후, 졸업식 날이 밝았다. 일출을 보자 자연스럽게 탄성이 터져 나왔다.

‘캬…..졸업식날 일출은 끝내주는 구만…’

그 말을 듣고 맞은편에 앉은 조폭형이 의아하게 물어봤다.

‘어! 막내 오늘 졸업식 날이여? 너 근데 왜 지금 배 타고 있어??’

‘…………..그러게 말입니다…(망할 선장)….’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당시 졸업식에 오지 않은 사람은 나 하나였고, 학교에는 내가 원양어선에 팔려갔다는 소문이 쫙 퍼졌다고 했다. 핸드폰도 메신저도 없던 나라서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고교 동창생들은 나를 보면 살아있었냐고 깜짝 놀라곤 했다.

ㅋㅋㅋㅋㅋ......

살아있지 그럼ㅋㅋㅋ……

아버지의 전화

그렇게 화려하게 졸업식을 날려먹고, 다시 항구에 도착하자 아버지가 전화를 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화로 듣는 아버지의 목소리는 뜨끈했다. 잘 지내고 있냐. 몸은 어디 안 상했냐. 이제 그만하면 되었다. 집으로 돌아와라.

한 달 전 형과 한 전화통화가 생각났다. 내 안의 자존심이 불쑥 고개를 쳐 들었다.

‘…아뇨. 아버지. 제가 여기서 더 일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또 너희 큰형이 무슨 말을 했냐?’

대답이 없자 아버지는 말을 계속 이으셨다.

‘나도 니가 너희 형을 얼마나 신뢰하는지 안다. 어머니도 안계신데 나도 일 때문에 집에 거의 못 들어가니 형이 너희한테 중요한 존재인 것도 알고. 그러나 어찌되었건 재수하려면 이제 시작해야 하지 않겠냐. 요즘 제주도 어선 타다가 실종하고 죽는 사람이 많아서 너무 걱정된다. 돌아와라.’

아버지는 형과 생각이 다르셨다.

그리고 그 따뜻한 말씀에, 나 역시 어느새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답하고 있었다.

중간에 일을 팽개치고 떠나다니. 나도 결국 노가다아저씨와 그다지 다를게 없었다.

<스스로 정한 것을 못 지켰다는 수치스러운 사실. 하지만 그건, 아직 내가 어리니까 괜찮다. 나는 더 중요한 재수를 준비해야 하니까.>

나는 이런 그럴 듯 하고 편리한 방패를 구실 삼아 나 자신을 속였다.

나는 그길로 기관장님께 하선하겠다고 말씀드리러 찾아갔다. 숙소 바깥에서 담배를 피시던 갑판장님이 나를 보더니 무슨 말이냐고 물으셨다. 말을 꺼내기 위해 숨을 들이마시자 불안감이 엄습했다.

처음에 나는 여기서 내가 성장 할 것을 기대하며 승선했다. 그러나 나는 힘이 들어, 목적한 것을 이루지 못하고 중간에 도망치기로 했다. 여기서 배워야 할 것을 배우지 못했으니 시간이 지나고 다시 실패해 이곳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닐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자. 그 생각이 스쳤다.

그러나 난 나약한 놈이었다.

gulls-370012_640

“저, 그만두겠습니다.”

결국 나는 그렇게 말했다. 기관장님의 표정에 놀라움이 어려있었다. 중간에 포기하면 더 힘든 일을 할 거란 불안감은 결국 내 기우였을까. 나를 옭아매던 불안은 말을 꺼내는 순간 사라져버렸다. 일은 어이없을 정도로 술술 풀렸다.

이곳에 있는 마지막 날. 선장님이 불렀다.

‘막내야. 니 인터넷 쓰제? 그 블로근가 뭐시기에 글 좀 올려라.’

‘어떤 글 말씀이세요?’

‘젊은 사람 어촌에 오는 건 좋은데 제발 마음 좀 단단히 먹고 오라고. 요즘 1주. 한 달 있다가 가는 젊은 아들이 많아서 물을 다 흐려브려.’

나도 그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기에 한순간 멈칫했지만, 이제와서 달라질 것 도 없었다. 나는 그저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중도 하선

중도 하선이라 원래라면 나는 배상금을 물어야 하고, (월급이 배상금보다 작으니까) 빚을 지게 된다. 다행이 선주님이 ‘아들보다 어린 나이에 여기 와서 고생하고 몸 안사리고 열심히 일하는 게 참 보기 좋았다. 배상금은 하나도 안 물려도 되니까 네가 가불한 돈만 빼도록 하마.’하고 말씀하셔서 나는 그럭저럭 백 만원 정도를 손에 쥐고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돌아가기 전 외국인 선원들은 시원섭섭한 표정으로 잘 가라고 안아줬고, 큰형님, 조폭형님, 보도방형님은 뱃일을 버텨냈으면 뭍에서 하는 일은 뭐든지 해 낼 수 있다, 앞으로 성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씀해 주셨다. 송별을 받고 나는 성공할 것을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선원 숙소를 떠났다.

비행기 창문 바깥으로 멀리 제주도가 보였다. 그 주변으로 고기를 잡기 위해 떠나는 배들이 보였다. 그래. 난 스스로 결정했던 일로부터 버티지 못하고 도망친 거다. 성장이니 뭐니 갖은 이유를 가져다 붙였지만, 결국 나는 힘들어 도망친 거다. 난 나약한 놈이다. 사실 여기서 정말 많이 깨졌고, 많은걸 배웠고, 성취감도 있었지만… 결국 난 실패했다….그러나 이때 겪은 일을 나는 평생 잊지 않을 거다. 아니. 잊지 못하겠지.

plane-50893_640

일기장을 읽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비행기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택시를 타고 동네에 도착했다. 집 근처 풍경이 놀라울 정도로 낯설었다.

귀가

고작해야 7, 8주 정도의 경험이었는데, 몇 년이 지난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과 도망쳐왔다는 수치스러움에 집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가 들어갔다.

‘……….다녀왔습니다’

‘와아~!! 형!!’

‘어서와라’

아버지가 내가 올거라고 이야기하셨는지, 가족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반겨줬다.

분명히 그렇게 바래온 목소리와 장소인데, 이상하게 맘이 불편했다. 걱정과 달리 나는 집에서 쫓겨나거나, 비난받지도 않았고, 오히려 따듯하게 환영받았는데도.

몸을 씻기 위해 웃옷을 벗자, 막내 동생이 내 얼굴을 보고 말했다.

‘형 엄청 변했다….. 나이를 팍삭 먹은 것 같아…’

동생 머리를 쓰다듬고 샤워를 하기 위해 거울 앞에 섰다. 조금은 낯선, 오랜만에 보는 나의 얼굴이었다.

고된 일로 손은 뭉뚝해졌고, 어깨와 등이 많이 넓어졌다. 다쳤던 무릎이 안 좋아져 다리를 조금 절었다. 얼굴은 바다독이 올라서 거무죽죽하고 이상한 자국으로 가득했다. 머리는 길었는데, 씻지 못하고 계속 일을 하다 보니 머리카락이 서로 엉켜서 레게머리처럼 변해 있었다.

샤워를 하고 나오자 형이 따뜻한 밥과 국을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상에 앉자 형이 말했다.

‘그래도 고생했다. 네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진한 밀도로 시간을 보냈는지 짐작이 간다.’

그 말을 듣자 그제야 집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날 밤 나는 아주 깊고,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 쌓여있던 피로가 한꺼번에 쏟아졌는지, 3일 정도 끙끙 앓으면서 잠만 잤다. 그리고 며칠 후, 고등학교로 찾아가 뒤늦게 졸업장과 앨범을 받아 오자 형이 마루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할 거니?’

‘재수하고 싶어.’

‘………형 생각은 조금 다르다. 좀 더 일을 해봐야 할 것 같다.’

‘…………..뭐?????!’

‘이번에 삼성에서 생산직 모집을 하더라. 마침 너 나이도 어리고, 출세욕이 강한 너에게 기업을 경험 할 수 있는 괜찮은 기회라고 판단된다.’

‘ㅇ……..어……그치만 형………’

‘아버지와는 이미 이야기가 끝났다.’

나는 반나절 형과 이야기를 하고, (내가 형 말을 제대로 이해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형 말이 옳을 거란 생각에 삼성에 지원하기로 했다. 허겁지겁 준비한 서류면접은 우습게 통과 되었고, 내심 떨어지길 기대하며 간 면접심사는 (고기잡이배라는 이색적인 경력이 빛을 발 한 것일까) 의외로 합격했다. 결국 그렇게 난 다시 일을 하게 되었다. 도대체 내 인생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점점 내가 생각한 인생과 멀어지는 게 두려워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고기잡이 편 종료-

– 배운 것 3가지

  1. 욕먹는 건 합당한 이유가 있다.
  2. 능력이 없을 수 있다. 그러나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은 용서받지 못한다.
  3. 보기에는 다 쉬워 보인다. 우선 유심히 관찰해라.

– 잃어버린 것 3가지

  1.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착각
  2. 쓸데없는 자존심과 부끄러움
  3. 흔히들 말 하는 ‘평균적인 생활의 질’

– 여전히 큰 고민 3가지

  1. 왜 내가 재수를 하면 실패한다는 거지?
  2.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삶이지?
  3. 내 인생 이대로 막장으로 가는 거 아닌가?

*저번 화(3화)에 중요한 장면 하나가 추가되었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확인해 주세요:)

편집 및 교정/비글

글/켄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