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년 전까지 하던 동아리가 있었다. 고전을 읽고 토론하던 동아리였는데, 매주 동아리 회원들이 돌아가며 발제를 하던 시스템이었다. 그 날은 내가 발제를 하던 날이었고, 그 때 발제했던 책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었다. 책에 대해서 짧게 소개를 하고 토론을 이어가는데 동아리 구성원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던 오빠가 발제자였던 나에게 물었다.

‘요즘에도 이렇게 눈에 보이는 차별이 존재하나?’

그는 스물여덟 살의 평범한 남자였고, 목소리는 평온했으며, 그가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저런 물음을 나에게 한 것이 아님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물음을 듣자마자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몇 가지의 생각이 떠오르다가 가라앉았지만 쉬이 대답을 하기는 어려웠다. 내가 스물다섯 해 동안 여자로 살아오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쉽게 그에게 내보이기는 어려웠다. 아주 짧은 망설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입을 열 수 있었다.

‘담배 피는 여자는 어때요?’

‘글쎄, 좀 별로?’

‘오빠도 담배 피잖아요?’

‘…….’

‘그런 거죠.’

우린 역차별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린 역차별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짧은 대화 속에서 그가 얼마만큼 무엇인가를 느꼈는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의 대화는 결국 거기서 끊겼고, 같은 주제에 대해서 그는 더 이상 내게 묻지 않았다. 그는 내가 담배를 태우는 여자인 줄 몰랐을 것이다. 확실히 지금도 모를 것이다. 나는 한 번도 그의 앞에서 담배를 입에 문 적이 없었다.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가 쉬는 시간마다 담배를 태울 때마다 나는 그들을 따라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어쩌다 모여서 술을 마실 때도 남자들이 피고 온 담배 연기를 맡으면서 괴로워할지언정 당당하게 담배를 들고 ‘피겠다’라고 주장할 수 없었다. 나는 여자였고, 또 그 곳에서 소수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흡연 여성으로 산다는 것

그런 공간에서 강박적으로 나를 눌렀다. 얌전한 옷을 입은 여자애가 담배를 핀다는 것을 쉽게 받아줄 정도로 대한민국은 녹록치 않았다. 페이스북에서 인기를 끌었던 영상처럼 어느 할아버지가 담배를 피는 여자애에게 욕을 했다는 일은 내게 일어나지 않았지만, 내가 담배를 필 때마다 흘깃흘깃 쏟아지는 시선은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담배를 피우는 곳은 언제나 자취방 앞에 있는 아주 으슥한 골목이었다. 혹은 자취방의 화장실. 내가 편하게 담배를 꺼낼 수 있는 곳은 조금 어둡거나 나를 드러내지 않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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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담배 구입처는 학교 매점이었고, 혹은 학교 앞 편의점이었다. 조금이라도 그 곳을 벗어난 곳에서 담배를 구입할 때, 몸 속에서 요동치는 불안함을 참기 어려웠다.

나는 단지 담배를 피는 ‘성인 여성’이기 때문에 나를 모르는 누군가에게 ‘쉬워 보인다’라는 말을 들을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고, 같은 흡연자인 남자에게도 ‘별로’라는 말을 들어야했다. 갓 스무 살이 된 사촌 남동생의 담배는 묵인 되었지만 스물다섯 살 먹은 나의 ‘담배질’은 규탄을 받아야했다. 그래서 나는 흡연자가 된 이후, 부모님이 내 파우치에 손만 대도 경기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저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 기호식품이라는 말은 언론이나 학교 강의에서만 있는 이야기였다. 담배 피는 내가 있을 곳은 아주 적었다. 그럼에도 나는 담배를 놓지 못했다. 의지가 박약할 수도, 그저 입만 살았을 수도 있다. 나의 나약함에 변명할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담배를 끊지 못해서 한탄하는 것은 비단 여성뿐만이 아니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오늘도 나는 담배를 폈다. 학교 안에서 숨어서 폈다. 길 위에 ‘길빵’을 하는 남자들의 시선과 담배를 피우지 않는 여자들의 시선을 피해. 나는 내가 늘 당당하다고 얘기하고 다니지만 사실은 그것이 아님을, 담배를 통해 배우고 있다.

 

편집 및 교정 / 커밋

글 / 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