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는 세월호 광장이 있다. 사람들로 복작거리는 광화문 광장 가운데 그 곳은 이질적인 공간이다.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데이트 중인 커플들은 노란 리본이나 천막들이 보이지 않는 것 처럼,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광장을 통과한다. 이순신 동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관광객들은 신기한 눈으로 모여서 노래하고 촛불을 켠 사람들을 힐끗거리며 구경한다. 바쁜 걸음으로 횡단보도를 건너던 남자가 친구에게 말했다. “아, 나 이런거 진짜 안 좋아해.”

매주 토요일마다 그곳에서는 세월호광장 토요문화제, Stage 416이 열린다. 세월호 집회에 가보겠다고 하자 엄마는 “네가 그런 델 왜 가니!” 하고 대뜸 목소리를 높였다. 같이 갈래? 하고 묻자 친구는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세월호? 나 그런거 별로던데…… ”

이 글은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하는’ 당신들을 위한 글이다.

‘이런 거’, ‘그런 데’, ‘그런 거’가 뭔데?

대략 이런 뜻일 것이다. 이상해, 유난스러워, 너무 정치적이야, 변질됐어, 피곤해. 이쯤하면 충분한 거 아니야?

누군가는 내게, “슬픈 건 알지만 이제 끝날 때도 됐지.”라고 말했다. “그 사람들 이상해져서… 보상금때문에 그러는거 아니야?” 또 다른 누군가는 “대체 그 사람들이 주장하는게 뭔데?”라고 물었다. 그러게, 사고가 난 지 벌써 500일이 지났는데 그들은 여전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걸까. 그 이야기가 듣고싶어서 9월 19일 토요문화제, Stage 416을 찾아갔다.

2015년 9월 19일 토요일 광화문 광장. 문화제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즐거워 보였다. 작은 축제 분위기였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즐겁게 만들었을까?

저녁 일곱 시는 노래와 함께 시작했다. “여기는 차갑고 어두운데” “난 너를 믿고 따르고 가만히 가만히 기다려 봤지만 아무런 대답도 없었네” 낭랑한 멜로디에 실린 가사가 아팠다. 듬성듬성했던 의자는 어느새 빼곡히 들어찼다. 등산복을 입은 할머니 할아버지들부터 화장하고 예쁘게 차려입은 여자들, 친구들과 함께 온 대학생들과 엄마 손을 붙들고 온 아이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촛불을 켰다. 우리는 노래를 따라 흥얼거렸고, 사회자는 박수 대신 노래 후렴구의 ‘와와와와’로 사람들을 맞이하자며 너스레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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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Misfits for 다홍)

노래가 끝난 뒤에는 세월호 유가족인 준영엄마가 올라왔다. 그녀는 “저희가 원하는 것은 두 가지, 아홉 명의 미수습자를 찾는 것, 그리고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해서 더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것” 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언론은 세월호 인양이 진행중이라고, 그러니까 이제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세월호 인양은 아직도 준비작업에 머물러 있으며, 정부에 대한 신뢰를 잃은 가족들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고. 그래서 세월호 유가족들은 인양중이라는 말에 마냥 안심할 수가 없고, 가족들이 배제되지 않은 인양을 바란다고 한다.

우리는 수인이와 민수에 대해서도 들었다. 단원고등학교 2학년 7반 1번인 곽수인은 음식을 가리지 않고 아무거나 잘 먹는 아이였다고 한다. 또 자존심이 굉장히 셌다고 한다. 삼국지를 좋아해서 달달 외웠는데, 삼국지의 인물들 중에서는 장비를 제일 좋아했단다. 장비는 힘도 세지만 삼국지를 통틀어서 전쟁에서 단 한번도 패한 적이 없는 장수였기 때문이다. 같은 반 5번인 김민수는 민수 아버지가 기억하기에 운동을 못 하던 친구였다고 한다. 그래서 민수 아버지가 퇴근하고 나서는 민수를 붙들고 쌩쌩이를 뛰는 법, 축구공 다루는 법, 철봉에 매달려 턱걸이를 하는 법을 가르치셨다고 한다. 손톱 발톱을 잘 안 깎아서 때가 낄 때면 민수 아버지가 깎아주셨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수인이의 할아버지는 수인이가 공부에 바빠서 할아버지를 찾아뵙지 못 하는 줄로만 아신단다. 고령에 너무 큰 충격을 받으실까봐 아직도 말씀드리지 못 했다고. 그래서 할아버지는 아직도 수인이의 부모님과 통화를 할 때면 수인이의 안부를 물으신다. 추석이 다가오지만, 세월호 가족들에게 명절은 마냥 풍요로울 수 만은 없다.

민수는 크면 수학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 공부를 시작했고, 대학교 답사도 다녀올 정도였다고 한다. 수인이는 <먼 나라 이웃나라>를 읽으며, 덴마크처럼 사회보장제도가 잘 갖춰진 나라에서 살고 싶다고 했단다.

당신이 오해하는 ‘그런’ 것들

‘행동하는 기억 416’에서는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의 한 부분을 낭독하며 구조의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세월호 사고는 보이지 않는 구조 속에서 일어난 인재이자 참사라는 말이다. 자신의 이름을 “곽수인 아빱니다” 라고 소개한 곽종현씨는 ‘세금도둑’을 잘 감시해 줄 것을 당부했다. 그가 말하는 세금도둑은 세월호 사고 후 제대로 된 구조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사고를 참사로 키운 해당 조직들과, 특별법을 제정하고 시행령을 만든다며 세월호와 관련된 논란들을 해결하지 못하는 정부 부처들이다. ‘더불어 만드는 우리세상 국민대 운동본부’ 본부장은 세월호 사고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책임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물었다.

우리는 구호를 외쳤다. 지난번에는 “세월호를 인양하라” 였던 구호는 보다 구체화되었다.

“세월호 인양, 투명하게 공개하라”

“세월호 인양, 가족참여 보장하라”

“세월호 인양, 미수습자를 가족에게”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걱정하는 ‘그런’ 것이 뭔데? 만약 당신이 말하는 ‘그런’ 것이 ‘이상한, 변질된’ 내지 ‘보상금을 요구하는’ 이라면, 이 날의 문화제에서 ‘그런’ 이야기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이 주장한 것은 이것이 전부였다. 가족들이 참여한 과정 속에서 세월호를 인양하고, 아홉 명의 미수습자들을 가족들의 품으로 되돌려주는 것.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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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다홍 for Misfits)

눈 앞의 커다란 전광판에서는 삼성의 TV광고가 번쩍거렸다. 세월호 광장을 둘러싼 현대해상, 교보생명, KT 그리고 조선일보 빌딩들의 커다란 불빛들 아래에서 촛불들은 지나치게 연약하고 초라해 보였다.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다가 꺼지기도 했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기꺼이 불을 나눠주었다. 나는 그때야 왜 그들이, 아니 ‘우리가’ 그 큰 슬픔 속에서도 그렇게 즐거워 보였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람이 거셌고 촛불은 자꾸 꺼졌지만 우리는 다시 불을 붙였다. 춥고 지친 내 몸을 데워주기에 손 안의 촛불은 충분히 따뜻했다.

아홉시를 넘어 문화제가 끝났다. 내 뒷자리의 아저씨는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시더니 돌바닥에 굳은 촛농을 긁어내 컵에 담으셨다. 사람들은 너나 할것없이 의자를 정리하고 바닥의 쓰레기들을 주워모았다. 세월호 광장은 눈 깜짝할 사이에 깨끗해졌다.

다만 외면하지 말기를

내게 토요문화제는 세월호 참사의 아픔에 귀를 기울이는 감정적인 경험이었다. 당신이 걱정하던 ‘이런’, ‘그런’ 이야기들은 없었다. 납득할 수 없다면 와서 귀 기울여 보길 권한다. 당신이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다면, 그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말하는 ‘그런’ 것이 ‘정치적인’것이라면, 그러니까 당신이 모여서 촛불을 켜는 것이나 구호를 외치는 행위 그 자체들이 ‘정치적으로’ 느껴져서 불편하다면 세월호 문화제는 당신에게 충분히 ‘정치적인’ 자리일 수 있다. 세월호 이후 우리는 모두 PTSD1)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세월호 참사는 그를 직접 겪은 생존자들이나 유가족들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PTSD를 남겼다. 를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문화제는 나에게도 불편한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은 충동이 치밀어올랐다. 세월호 참사 이후 500여일 간 나는 한 번도 세월호에 대해서 말한 적이 없었다. 문화제는 너무 아팠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외면하고 있던 것을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맞아, 나는 세월호에 대해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었다.

세월호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프다면, 정치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불편하다면, 그것이 당신의 안에 있는 무엇을 건드렸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다만 당신에게 외면하지 말기를 청한다. 그저 넘어가지 말고 그것이 왜 당신을 아프게 하는지, 왜 정치적인 것이 당신을 불편하게 하는지 생각해보기를 청한다. 그 불편함을 마주하자. 어쩌면 당신은 정치권에, 대통령에게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당신에게 당신의 답을 찾기를 권한다. 그리고 이 곳에 나와 우리에게 들려주기를, 그리고 함께 이야기하기를 바란다.

“난 너를 믿고 따르고 가만히 가만히 기다려봤지만 아무런 대답도 없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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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Misfits for 다홍)

9월 19일 광화문에서는 민주노총 총파업 선포 결의대회가 있었다. 육천여명2)YTN 보도기준의 사람들이 “막아내자 쉬운해고”, “막아내자 쉬운 비정규직” 이라는 표어를 들고 종로 거리를 행진했다. 집에 와서 검색해 보았지만 언론들은 놀랍도록 조용했다. 조선일보에서는 이를 ‘교통혼잡 예상'3)조선일보, ’19일 서울 도심서 잇따라 대규모 집회 열려… 교통혼잡 예상’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9/19/2015091900704.html으로 요약했다. “가만히 있으라” 는 말이 떠올랐다. 집회에서 들었던 노랫말도 생각났다. “난 너를 믿고 따르고 가만히 가만히 기다려봤지만 아무런 대답도 없었네”

 

우리는 모두 세월호에 타고 있다.

광화문에는 세월호 광장이 있다.

편집 및 교정/요정

취재, 사진 및 글/다홍

   [ + ]

1.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세월호 참사는 그를 직접 겪은 생존자들이나 유가족들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PTSD를 남겼다.
2. YTN 보도기준
3. 조선일보, ’19일 서울 도심서 잇따라 대규모 집회 열려… 교통혼잡 예상’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9/19/201509190070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