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 빈민으로서의 나의 위치를 자각하다

대학교를 졸업했고, 독립을 해야 했다. 본가가 서울에 있어서 이십대 후반이 되도록 주거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도, 이에 직접 부딪혀 본 적도 없었다. ‘비용과 질적 측면에서 마음에 드는 방을 찾을 수 있을까?’ 막연히 생각하며 방 구하기 어플을 설치했다.

막연한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원룸 하나 구하려면 반지하로 가지 않는 한 죄다 보증금 1000만원이 기본이었다. 부담스러운 비용에도 불구하고 좋지 않은 기관지 때문에 지상에 있는 방만 찾아봤다. 하지만 생활권에서 완전히 벗어난 곳이거나 안전이 의심되는 외진 곳이어야 그나마 부담할 수 있을 정도였다.

잠깐만 눈물 좀 닦고

잠깐만 눈물 좀 닦고

학창 시절, 주변에서 주거 운동을 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그 취지에 동의했고 대학가 원룸과 하숙의 시세를 비판했지만 나의 문제가 아니었기에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취직을 하고 몇 년간 돈을 모으다 보면 집 하나쯤은 어떻게든 구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만 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안일하게 생각하던 중, 주거 문제는 갑자기 나의 문제가 됐다. 어엿한 직장(a.k.a 정규직)도 얻기 전에……(주륵)

일주일 가량 방을 물색하면서 깨달았다. 내가 ‘주거 빈민’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집이 가난한 건 알았지만, ‘내가’ 가난하다고는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확실히 알았다. 난 가난했다. 월세를 부담하려면 수입의 3분의 1 이상을 투자해야 했고 보증금을 부담할 능력은 전혀 없었다. 백 만원도 없는데, 천 만원의 보증금이라니…… 눈앞이 캄캄했다.

빚이라도 지고 싶은데-

무작정 네이버에서 ‘주거보증금 대출’을 검색했다. 수중에 돈이 없으니 독립하려면 대출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검색한 결과, 내가 할 수 있는 건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 이하 대출뿐이었다. 6~7등급의 신용등급을 보유한 백수가 은행권 대출을 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지식인’의 많은 답변이 어떤 은행이 좋은지 친절하게 소개해주고 있었다. 저축은행은 아무래도 이미지가 안 좋으니 ‘새**금고’를 가야겠다 싶어 새**금고는 믿을만한지 살피고 또 살펴봤다. 소심한 난 동생에게 “이건 아무래도 좀 아니지?”라며 재차 확인했다. 그러나 마음은 이미 새**금고에 가있었다. 이성은 나에게 “안된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내심 동생이 내게 “괜찮아. 빌려.”라고 말해주길 기대했다.

다행히 나보다 더 소심한 동생은 내게 “응. 절대 안 돼.”라고 말해주었고, 하*은행에서 대학생에게 주거보증금을 대출해준다는 정보를 찾아줬다. ‘하*은행 마이* 대출’의 조건은 ① ‘대학생’이어야 했고 ② 500만원 한도에서 ③ 전체 보증금의 80%만 빌려주는 것이었다. 나는 첫째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했지만 동생 명의로 빌리면 되었다. 둘째, 셋째 요건을 충족시키려면 보증금의 20%를 감당할 수 있어야 했는데, 내겐 모아둔 돈이 전혀 없었다. 다행히 동생이 모아둔 돈 200만원이 있었다. 까다롭게도 500만원 한도에서 빌려주기 때문에 우리가 구할 수 있는 방의 최대 보증금은 700만원이었다.

보증금을 700만원에 맞추기만 하면 되었다. ‘아, 드디어 방을 구할 수 있어!!’라는 생각에 안도(?)했다. 동생아, 고맙드아!! 네가 대학생이 아니었더라면, 네가 돈을 모아 놓지 않았더라면!! 난 어떻게 되었을까?! 꽤나 씁쓸한 안도와 고마움이 일었다.

대학생도 아니고 돈도 한 푼 없으면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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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이러할 수밖에 없다. 잠시 복잡한 수를 들이대겠다.

통계청이 2014년에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만30세 미만의 신용부채 보유자 중 25%, 만30~40세 신용부채 보유자 중 20.1%가 전월세 보증금 마련을 위해 대출을 받았다. 신용부채 보유자가 대출을 받은 기관의 경우, 만30세 미만의 44.7%가, 만30~40세의 34.3%가 은행 이외의 기관에서 대출을 받았다. 대출을 받는 사람 중 절반 가량이 제1금융권이 아닌 다른 곳에서 높은 금리로(보통 연 15% 이상) 대출을 받고, 또 이 중 5분의 1이 보증금 마련을 위해 대출을 받는다. 집을 아예 사기 위해 대출 받는 사람들까지 합치면 그 비율은 더 높아진다.

청년층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잡기도 점점 어려워지고, 대학을 졸업할 때부터 학자금 빚을 잔뜩 지고 나오는 상황에서 주거지 마련을 위한 신용대출 보유자 수가 감소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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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경우에도 졸업한 지 반 년이 넘은 후에 일하기 시작했는데,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월급을 받는 덕분에(?) 아직 ‘든든학자금 상환 대상자’는 아니다. 최저생계비 이상을 벌기 시작하면 매달 학자금 빚을 갚기 시작해야 한다. 매달 20만원 씩 갚는다고 하면1)20만원 갚기도 벅차지 않을까? 약 2.5년 동안 부채 상환의 부담감에 시달려야 한다. 이것도 일자리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 때나 가능한 시나리오다.

지금 사는 집 계약이 만료되면 이 집을 나와 보증금을 동생에게 그대로 돌려줘야 한다. 그때 나의 전 재산은 얼마나 될까? 지금부터 정말 부지런히 모은다고 해도 월세 내고, 생활비 쓰고, 컴퓨터 사고, 치과 가고 나면 그때까지 3~400만원도 못 모을 게 뻔하다. 눈앞이 캄캄하다. 이런 상황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고금리 대출의 유혹에 넘어갈 것만 같다.

마음 편히 내 머리 하나 누일 공간이면 된다규

“내 머리 하나 누일 공간이 있어서 행복하다.”

사실 머리 하나 누일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하다는 건 거짓말이거나 자기 최면에 의한 심리상태라고 생각했다. 이런 공간은 너무나 당연히 주어지는 거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30년에 가까운 세월을 살고 나니 이제 알겠다. 별다른 걱정 없이 나의 머리 하나 누일 공간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말이다. 공자께선 30세에 자립을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수많은 청년이 실업과 빚에 시달리는 이 시대에 三十而立(삽십이립) 하는 사람이라면 진정 성인군자의 떡잎을 가졌다 할 만하다. 허허.

약 1년 후에는 지금 사는 집의 계약 기간이 만료된다. 벌써부터 이 다음에 갈 곳을 걱정해야 한다. 내 걱정만 할 수 있다면 차라리 나을 텐데, 임대아파트에서 비교적 저렴한 월세를 부담하며 살고 계신 우리 아버지를 언제까지나 그곳에 사시도록 할 수 없다는 심적 부담감이 나를 짓누른다. 나 하나 챙기기도 힘든데, 어떻게 가족까지 챙기겠나 싶다. 이러면서 세월은 흐르고 난 한동안 꽤 젊겠지만 부모님께선 급격히 늙어가실 거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악착같이 돈을 쫓아다니지 않는 나를 돌아보면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사실 혼자 악착같이 뛴다고 해도 소득 문제에서 만큼은 도달할 한계가 명확히 보인다. 그래서 ‘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돼.’라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위안한다.

정부의 대출만능주의, 이제 그만

오늘도 ARS 전화를 받았다. 신한은행에서 국민행복기금으로 신용대출을 해준다는 전화였다. ‘제기랄, 나한테 필요한 건 대출이 아니란 말이다.’라고 머릿속으로는 쌍욕을 하고 끊어버렸다2)알고 보니 이 전화는 금융사기 전화였다. 휴-.

나?

해앳사알~??????

올해 상반기 여기저기서 ‘햇살론’이라는 세 글자를 접했다. 기존에 있던 햇살론 대출에 더하여 대학생·청년 햇살론 상품도 출시됐다. 기존의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로 전환해주거나, 당장 비상금이 필요한 청년들에게 소액대출을 해주는 상품이다. 비판할 지점은 많지만 그래도 고금리를 저금리로 전환해주는 건 좋다. 하지만 없는 빚 만들어 주면서 선심 쓰듯 광고하는 것은 참기 힘들다. 대출을 받아서 매달 원리금 상환의 압박감을 느끼며 살고 싶지 않다. 이제 겨우 사회에 발을 내디뎠다. 적은 돈이나마 열심히 벌며 행복한 인생을 설계하고 싶은데 이놈의 국가와 금융권은 제대로 된 복지 정책은 내놓지 않고 허구한날 대출만 해준단다. 평생 착실히 세금 내며 살 테니 대출 이자까지 가져가진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그렇게 큰 건가 싶다.

원리금 상환의 압박과 ‘혹시나 일자리가 끊겨 연체자가 되면 어쩌지?’ 하는 걱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주거 정책이 필요하다. 사회초년생일 때 걱정 없이 머리 누일 만한 공간 마련해주면 돈 열심히 벌어서 세금 열심히 낼 텐데. 제발요(…)


 

필자가 소속되어 있는 ‘금융정의연대'(www.kofica.or.kr)에서 ‘청년 부채 실태조사’의 일환으로 인터뷰이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신원은 절대 비밀로 하며, 인터뷰 해주신 내용은 청년 부채 문제 개선을 위해 소중히 쓰도록 하겠습니다.

서울에서 거주 or 직장생활 or 재학 중인 만 19~34세 미혼 청년들 중 한국장학재단 이외의 기관에서 학자금 대출을 받으신 분,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리신 분 등 카드값이나 대출금 상환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모든 분을 대상으로 진행됩니다.

상담에 응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소정의 문화상품권과 함께 ‘재무관리상담 서비스’를 제공해드립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참여신청 링크


편집 및 교정 / 저년이

글 / 컹니, 안물안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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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만원 갚기도 벅차지 않을까?
2. 알고 보니 이 전화는 금융사기 전화였다.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