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방어회 술자리

풍랑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기쁨도 잠시, 항구에는 우리가 잡은 물고기를 담기 위한 탑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지친 몸을 쉴 틈도 없이 일을 시작했다. 물고기를 보관하는 ‘어창’에서 물고기를 꺼내 차에 실어주는 일이었다. 일이 끝나자 선장님이 웬일인지 술을 마셔도 된다고 허락하셨다. 형님들은 술과 안주로 쓸 커다란 방어를 두 마리 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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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셨습니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두툼한 방어를 입에 넣고 씹자 행복감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살아 돌아왔다는 기쁨에 다들 즐겁게 술을 마셨다. 지친 몸 곳곳에 기분 좋게 알코올이 스며들었다. 어느덧 술자리는 정리되었고, 외국인 선원들이 전원 숙소로 들어가 잠이 들었다. 아까부터 입맛을 다시던 조폭형님은 술을 좀 더 마실 것을 제안했다.

한국인 선원은 나, 조폭형, 보도방형, 그리고 한 명이 더 있었다. 이 분은 항상 묵묵히 일만 하는 형님이었다. 한국인 선원 중 최 연장자이자, 경력이 2년으로 한국인 선원 중 가장 오래 일한 사람이기도 했다. 형수님과 함께 여기 근처 집을 얻어 살고 계셨는데 형수님은 육지에서 그물을 만드는 일을 하셨다. 우리는 이 형님 댁에서 술을 더 마시기로 했다.

형수님과 큰형님, 그리고 보도방 사장 형 이하 2명 포함해서 총 5명이서 술을 마셨다. 웃고 떠드는 시간이 지나자 알 수 없는 침묵이 방 안을 내리눌렀다. 그 침묵을 깬 건 보도방 형이었다.

‘형님, 그래서 우리 이렇게 일해서 얼마 법니까? 형님 작년에 10개월 일하고 받으신 돈 있잖아요.’

모두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궁금해 하던 일이었다. 큰형님을 제외한 우리는 형님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한참을 침묵하던 큰형님은 답답한지 가슴을 한번치곤, 큰 잔에 소주를 가득 따라 한 번에 주욱 마셨다.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을 움찔거리다, 그 말을 삼켜버리곤 다른 말을 내뱉으셨다.

‘그냥 기술 있고 다른 일 할 수 있으면 그냥 다른 곳 가라니까…..’

형수님도 우리만큼 답답했는지 서랍에서 가계부를 가져 오셨다. 우리는 가계부를 둘러싸고 다닥다닥 앉았다. 경쾌하게 넘어가는 페이지와는 반대로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얼마를 받을까. 월 300에서 500이라고 광고했으니 5000만원은 무리고 3500만원일까. 아니 그래도 모르니 미니멈 2500으로 생각해야하나. 형수님의 손이 멈췄다.

‘어디보자….. 1826만원이네. 1800만원이야!’

1800만원…!

그 누구도 입을 열 수 없었다. 다만 황망한 눈빛으로 서로의 눈을 쳐다 볼 뿐이었다. 조폭형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형수…. 아, 아니 그게 무슨 소리요… 10개월에 1800만원?! 씨발 지금 내가 한 달에 가불 받아 보내는 돈만 백만원이 넘는데?!’

그 때는 1월. 향해가 종료되고 돈을 받기까지 약 4개월 남은 시점이었다. 현재까지 조폭형이 가불한 돈은 1300만원. 그는 떳떳하게 번 돈으로 처자식을 먹여 살리고 싶다는 일념으로 배에 탔다.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버리고 뼈가 부서져라 일을 했지만 그가 얻은 것은 시리도록 아픈 통풍과 빚뿐이었다. 이번년도는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거란 희망을 가지기에는 작년도의 돈이 너무나도 작았다. 붉어진 얼굴로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울분을 누르는 조폭형을 보도방형이 억눌렀다. 다시 주위가 조용해지자 그는 입을 열었다.

‘형님. 그래서 그때 조업양이 지금이랑 큰 차이가 납니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보도방형은 나를 보곤 치밀어 오르는 것을 억누르는 듯 꽉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막내야….. 네가 배를 언제까지 탈지는 모르겠다만….. 제주도에서 사람하나 썰려서 배에 매달렸다는 뉴스 보면 형이 한 줄 알아라….. 이 씨발 선장새끼…… 담궈서 물레에 매달아 버리겠어….’

회칼을 들고 바깥으로 나가는 형을 겨우 뜯어 말렸다. 칼을 들고 놓으라고 소리치는 보도방 형의 시퍼런 눈빛은 잊혀 지지 않았다. 우리는 마지막 고기잡이 철인 5월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배에 탄 것을 없었던 일로 하고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왔고, 선원 모두는 돈이 절박했다. 그들에게 살인은 마지막 발버둥이었다.

새벽이 밝았다. 바깥에서 붉은 눈으로 일출을 보던 우리는 아무 말 없이 담배를 피고는 숙소로 돌아갔다. 일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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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바다로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사람들과 웃으며 인사를 하고 출항 준비를 했다. 배는 항구를 떠나 바다로 나갔다. 멍하니 항구를 바라보자 조폭형이 조용히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어제 일. 아무 일도 없었던 거다, 넌 어제 술자리가 끝난 후, 나랑 바깥에서 이야기하고 바로 들어가 잔 거야.’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를 떠나 발랄하게 웃으며 선장과 즐겁게 이야기를 했다. 선장이 조폭형의 뒤통수를 찰싹 때리고는 상의를 들췄다.

‘야이 씨발 새끼야. 누가 이렇게 문신하라데? 니가 이런다고 뭐가 쎄 보일거라 생각하나. 야. 이 새끼 등짝 한번 봐라ㅋㅋㅋ 너 임마. 너 같은 놈 200만 베트남 애들한테 주면 쥐도새도 모르게 담궈버릴 수 있어. 착하게 살아ㅋㅋ’

선장의 말에 조폭형을 둘러싼 웃음소리가 배에 울려 퍼졌다. 웃음의 중심에 있는 조폭형도 웃고 있었다. 한참을 웃고 떠들던 선장은 조폭형의 등의 용을 철썩 때리곤 브릿지로 걸어갔다. 조폭형도 웃으면서 본인이 일할 위치로 걸어갔다. 형의 등과 목은 붉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콧노래를 부르며 브릿지로 가는 선장의 등 뒤로 보도방형의 서슬퍼런 눈빛이 꽂혔다.

불안한 밤을 지나 새벽이 되고…

그 모든 일을 뒤로 하고, 우리는 투망을 끝냈다. 그리고 아침을 먹었다. 그런데 또다른 문제가 터졌다. 이번엔 갑판장이라는 놈이 말썽이었다. 갑판장의 나이는 서른으로 형님들 중 가장 어렸다. 그는 20살 때 부터인가 배를 탔다고 했다. 파도가 거칠거나 컨디션이 안 좋으면 멋대로 항해를 빠졌다가 돈이 떨어지면 슬그머니 와서 배를 타곤 했다. 안하무인적인 언행으로 애물단지 같은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일을 잘해 선장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고용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항구에서 두어 번 보긴 했지만 배를 같이 타는 건 처음이었다.

문제의 갑판장

갑판장은 밥 먹는 내내 다른 사람에게 시비를 걸었다.

‘안디 이 새끼도 많이 먹는데 이번에 새로 온 막내도 겁나 처먹구만. 너희 집에서는 이렇게 밥 안채려 줘? 꽁보리밥만 주나? 많이 먹는 놈이 흰 놈 검은 놈 두 마리니까…… 흑돼지 백돼지네!!!!ㅋㅋㅋㅋㅋㅋ’

다들 그에 대해 알고 있었는지, 갑판장의 말에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갑판장은 바닥을 두드리며 혼자 웃었다. 그는 약자 앞에서 강하고 강자 앞에서 약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배에서 그에게 가장 약자인 사람은 나였다. 아침식사 시간에 있었던 일은 전초전에 지나지 않았다. 오후 일이 시작되자 이제 본 게임이라는 듯 그 남자의 주둥아리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야. 빨리 안해? 왜 이렇게 느려? 그물만 당기면 니 일이 끝이야? 고기는 안 딴다 이거지?’

‘오늘 처음 일해? 웃기지? 그래~ 내 말 듣고 웃을 수 있을 때가 좋은 거지’

나는 몸을 사리지 않고 일한다며 지난번 향해까지는 일 잘 하기로 평판이 좋았다. 내가 일을 못하는 걸까. 아니면 저 자식이 또라이인 걸까. 설마 저게 나름의 애정표현인가. 녀석은 계속 지껄여댄다.

‘아….. 이젠 반응 안하네. 씨발새끼. 느그 애미가 널 그리 가르치던? 좆같은 새끼가… 야!’

퍽!

등에 뭔가가 날라 왔다. 등을 보니 오징어가 내 등에서 꿈틀대고 있었다. 갑판장이 나와 오징어를 보며 낄낄거렸다. 그 순간 심장이 쿵쾅거리고 머릿속이 차가워졌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물추를 들고 갑판장을 쳐다봤다. 거리는 대략 3m. 지금이라면 그물추로 녀석의 앙상 마른 두개골을 박살 낼 수 있었다.

그때, 머리에 열을 식히라는 듯머리 위로 파도가 쏟아졌다. 덕분에 정신이 들었다. 그래. 저놈과 나의 삶을 바꾸기엔 내 삶이 너무 아깝다. 나는 등에 붙은 오징어를 떼 내어 갑판장 발치에 던지고 외쳤다.

“갑판장님! 그거 일 끝나고 같이 구워먹죠!”

그 때 내 몸에 사리가 생ㄱ...

그 때 내 몸에 사리가 생ㄱ…

밤 12시 30분, 저녁 식사 후 갑판장과 둘만 앉아 아침의 오징어를 뜯었다. 갑판장이 문득 오징어를 먹다가 물었다.

‘야. 니 여기서 얼마나 있을 생각이고?’

‘이번 철이 끝나는 5월까지 있을 것 같습니다.’

‘다시 탈 생각은 없는 갑네. 여기서 일하는 것도 괜찮다. 내도 니 나이에 와서 지금까지 일했으니까…… 11년 일했네. 돈이 괜찮다. 보통 향해 끝나면 오토바이 한 대 사고 나서도 아쉬울 게 없을 만큼 돈 썼거든.’

나에겐 돈만이 중요한 고려 대상인 것은 아니었지만, 이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관심 있는 척 물어봤다.

‘얼만데요? 한….. 2500만원 받으셨어요?’

‘어? 어떻게 알았냐??’

결국 내가 생각한 최소 금액인 2500만원은 잘 돼야 받는 돈이었나. 쓴웃음을 지으며 남은 오징어를 정리했다. 갑판장은 어느새 자러 갔다. 2500만원. 조폭형과 보도방 형이 생각났지만 이건 가슴에 묻기로 했다. 이걸 말 한들 그들에게 무엇이 좋을까. 밤바람이 차다. 나도 들어가서 자기로 했다.

다시 해는 뜨고

투망을 하고, 아침식사를 했다. 설거지를 하자 보도방형과 조폭형이 나를 데리고 구석으로 갔다. 보도방 형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야 막내. 너 욕 먹는게 좋아? 너 임마. 외국인 선원한테도 욕먹고 이젠 갑판장 같은 쓰레기한테도 욕먹어? 웃으면서 대할 때 잘 해. 너 항구 도착해서 해경이 선원검사 하는거 봤지? 그냥 사람 얼굴 보고 끝이야. 너 여기서 두들겨 팬 다음에 바다에 던져버리면 아무도 몰라. 해경한테는 그냥 자고 일어났더니 없어졌다고 하면 끝이야. 짐 되지 마. 잘해. 후회할 때면 늦어.’

보도방 형은 그 말을 끝으로 담배를 피우러 갔다. 조폭형이 보도방형 말 틀린 거 없다며 앞으로 잘하라고 나를 다독였다. 형들 말대로 일을 열심히 해야 했지만, 어째서 일까. 아무런 힘이 나지 않았다.

hopelessness-woman-130910일주일 후 늦은 밤

풍랑 때문에 배는 숙소가 있는 항구가 아닌 다른 곳에 정박했다. 다른 분들은 숙소로 돌아가고, 나와 안디는 배를 지키기 위해 남았다. 안디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가방 깊숙한 곳에 넣은 비상금을 꺼냈다. 가족들이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 꿈에서 가족들을 본 날이면 꿈에서 깰 때 얼마나 고통스러워했던가. 언제부턴가 나는 자기 전에 꿈을 꾸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이곳에선 용변을 누러 갈 수도 없고, 물도 마음대로 마실 수 없었다. 오직 허락된 자유는 숨을 쉬고 말 할 수 있는 자유. 집에서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불빛 하나 없는 밤거리를 달렸다. 공중전화기를 찾아 한참을 달리자 멀찍이 공중전화부스가 보였다. 떨리는 손으로 번호를 꾹꾹 눌렀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수화기가 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달칵

‘여보세요.’

막내 동생이었다.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내 막내 동생. 그 밝은 목소리를 듣자 내장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치고 올라왔다. 한참을 아무 말 못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수화기 너머로 가족의 소리가 들렸다.

‘막내야 누구야?’

‘몰라. 아무 말 안 해.’

‘켄타 형 아냐?’

‘야 그럼 나부터, 나부터!’

왁자지껄한 동생들의 목소리에 겨우 말문을 열었다. 동생들과 대화를 나눌수록 벅차오르는 행복감에 전화 건 목적을 말하기 두려워졌다. 아, 이 순간이 영원할 수 있다면…

그러나 그건 불가능했다. 나는 선택해야 했다.

‘…..얘들아, 큰 형 좀 바꿔줄래?’

잠시 후, 그리운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동안 자존심과 아집으로 가려온 감정들이 소용돌이쳤다. 고통스럽다. 도망치고 싶다. 나에게 아무런 의미 없는 일이다. 그리고 가라져 있던 감정들이 한 가지 구실에 의해 합리화 되었다. 난 재수를 해서 한의대를 갈 거야.

‘형. 나 이제 그만두고 싶어.’

그러나 돌아오는 형의 답변은 단호했다.

‘안 된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 무너진 조각에 깔려 이대로 끝 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캄캄해진 의식 사이로 형의 말이 들렸다.

‘형은 네가 지금까지 없던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참고 있던 눈물이, 그동안 쌓여왔던 설움이 폭발했다.

‘으…..크허흑..! 형….나…나…너무 힘들어…..매…매일매일이 죽고싶은 순간의 연속이야. 난 지금까지 난 뭔가….흑…! 허윽…! 난 뭔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난….난 그냥 아무것도 아니였어….! 그냥 어디에나 널려 있던 사람들과 같은 사람. 한 사람 몫도 제대로 못하는 그냥 한심한 인간이었어…! 흑…흐흑…. 그렇지만 여기서 도망가기도 무서워…. 지금이 일은 내가 인생에서 꼭 겪어야 할 일 같단 말이야. 여기서 힘들다고 도망치면 시간이 지나서 더 힘든 일을 겪어야 할 것 같아서 도망 칠 수도 없어…..!’

울음이 잦아들자 다시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실 네가 이런 전화를 걸 거라고 예상했단다. 그래서 미리 동생들과 이야기를 해 뒀어. 너를 집에 오게 할지 말지는 너의 목소리를 듣고 결정하자고. 나도 동생들도 전부 네가 멋지게 성장하고 있다고 느꼈단다. 너도 알지 않니. 이 고비를 넘기면 네가 성장하리란 것을, 우리는 너를 응원한다. 사랑한다 동생아.’

‘…..!’

아무 말도 못하고 한참을 울었다. 자괴감과 수치심이 떨어지는 눈물에 씻겨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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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가치 없는 존재는 아니다.

눈물이 그치자,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전화를 끊고 항구로 돌아갔다. 바다 위 하늘에 가득 떠 있는 달과 별이 보였다. 눈물은 어느새 말라있었다.

편집 및 교정/비글

글/켄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