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덕질을 한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일본 애니메이션을 연상한다. 덕질의 일반적인 형태에 익숙한 사람들은 쉽게 뮤지컬이나 영화와 같은 배우들이 등장하는 미디어를 떠올릴 것이다. 또,  문구덕질1)필기구 특히 만년필과 관련된 덕질은 잉크덕질에 한꺼번에 입문하는 경우가 많아 답이 없다, 차덕질2)두 가지 차 모두 해당한다. tea와 car.. 특히 전자의 ‘차’ 덕질은 빠지면 카드를 잘라야 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등등 사물 덕질 또한 만만치 않은 덕질의 영역이다. 보통의 덕질은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상에서 형성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쉽게 안 접해도 덕통사고를 당해버리는 덕질은 세상에 생각보다 많이 존재한다.

으아ㅏㅏㅏㅏ덕통사고!!!!!

으아ㅏㅏㅏㅏ덕통사고!!!!!

차원의 문은 어디에나 있다네

전지적 덕후의 시점에서, 세상의 모든 요소는 덕질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것이 굳이 미디어에 나오는 유명인이나 특정 작품, 젊은이들이 유행처럼 소비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나는 최근 지인과 대화를 하다가 놋네월느의 퍼레이드팀에도 팬클럽(!)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놋네월느 퍼레이드 시간에 입장하여 이들을 지켜보고, 자주 가는 팬들은 퍼레이드 팀에서 알아보고 함께 놀기도 한다고. 이들이 대부분 젊은 외국인들이다보니 계약직에 외노자(..)라며 힘든 팬질을 한다는 풍문이 있다. 심지어는 바둑을 덕질하는 분도 있다.(아마 바둑 기사일듯) 이처럼 덕질의 포털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시시각각 열리고 있다.

덕질고백소

미스핏츠는 지난 수요일 하루동안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미스핏한_덕질고백소 를 개장하여 이런 ‘예상치 못한 덕질들’에 대한 사례들을 모았다. 많은 사례를 모으지는 못했지만, 덕질의 세계는 정말 넓고도 깊다는 것 만큼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사전에 허락을 구해 그 험난하고 슬픈 여정들에 대해 소개해본다.

(사례1은 당사자의 요청에 따라 아이디를 가리고 게재합니다)

제목 없음

사례 1: po클덕wer

사례 2: 일본에서도 마이너

이어폰덕후 정찬휘님
일단 고해를 시작하자면 저는 이어폰 덕후입니다. 덕질의 입문은 고1때이어폰의 줄이 자꾸 끊겨서 끊기지 않는 이어폰을 찾아 헤메다가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이어폰 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다양해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샤오미나 유코텍과 같은 가성비가 뛰어난 제품부터 웨스톤, 슈어, akg처럼 기성품 끝판왕을 보여주기도 하고 ue나 하이디션처럼 각자의 귀에 꼭맞는 몰딩이어폰을 제작하기도 합니다. 사실 그렇게 마이너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 시코나 골든 이어스등의 페이지에 가면 덕질의 동지들이 꽤나 보입니다. 하지만 오프라인에서는 보기 힘듭니다. 이어폰덕은 끼고있는 형태만 보더라도 어느회사 제품이라는 것을 압니다. 헤드폰은 제품명까지 맞출 수 있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이어폰은 (지금은 많이 방출해버리고) ue사의 트리플파이, 슈어사의 se535 포낙사의 pfe112, 예전에 소니에서 단종된걸 기념으로 갖고 있는 e888 웨스톤사의 w40등입니다. 지금은 최정상급 라인이 아니지만 나름대로 만족해온 소리들 입니다. 그리고 이어폰 덕후들에 대해서 가장 큰 오해는 우리가 “음질”을 추구한다는 편견입니다. 물론 음질은 기본으로 들어가야할 사항이지만 어느정도 가격대가 올라가면 음질보다는 “음색”이 중요해 집니다. 아무것도 가미하지 않는 모니터링용 이어폰으로는 웨스톤 사의 um시리즈가 좋고 트리플파이는 베이스와 고음부가 함께 강조되는 v자 음색이라서 무거운 악기나 배경음이 맛깔 스럽게 느껴집니다 혹은 오토폰이라는 브랜드는 전통적으로 맑은 음색을 들려주는 전문분야가 따로 있는 등 각자마다의 소리를 수집하는 것이 제가 이어폰 덕으로서 추구하는 바 입니다. 제습제를 넣어주고 갈아주고 케이스를 따로 마련해 줘야 하는 등의 애로사항도 있지만 듣다가 명확한 음색이 주는 쾌감을 포기할 수 없겠더군요. 지금 갖고있는 이어폰들은 어딘가를 거닐면서 혹은 누군가를 만나면서 추억들이 켜켜이 쌓여있는 이어폰이라…….도저히 팔지는 못하겠더군요. 그래서 중고거래할때 저는 걸리는 시간이 긴편입니다. 이어폰을 파시는 분이 두시간동안 “이 이어폰은 나하고 이런 인연이 있었지”하는 말씀을 하셔서 저도 시간가는줄 모르고 이야기 했던 적도 있었지요. 이만 고해를 줄이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ㅎㅎ

사례3: 이어폰 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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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모두 덕질의 가시밭길을 걷는 우리의 동지들이다. 혹시나 이 글을 읽으시는 미스핏츠 독자 여러분 중 같은 덕질을 하고 계시는 분이 있다면 함께 탑승하여 동료가 되시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해외 피아니스트, 일본 음악시티팝,  이어폰에다가 여기서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국문법 덕질, 돌덕질(애완돌을 키우는 사람도 꽤 많다!), 담배갑 덕질(지포라이터는 꽤 인기 있는 덕질로 알려져 있다) 등등 우리가 알지 못하는 덕질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덕질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시킨다

트위터를 통해 처음 사례들을 읽어보았을 때 상당히 놀랍고, 또 재미있었다. 남의 덕질 이야기를 듣는 것, 혼자만 좋아해서 아쉬운 이야기들을 들을 때 딱하고, 같이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기를 바라는 마음조차 들었다. 사실 나 또한 모 영화킹스맨에 등장하는 모 배우의 덕질을 하게 되면서 힘들었기 때문에. 우리 애 신인이라 차기작이 없어요…

“다들 와- 하면서 싸인이나 받으려고 서있는데 저 혼자 파오후 쿰척쿰척 하는 것 같아서”

위 사례의 해외피아니스트 덕께서 하신 말씀일진데, 마이너 덕질을 할때의 민망함이 와닿는다. 나도…누군가에게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을까…? 이미 늦었지만

덕후들이 가장 많이 하는 한탄이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을까’ 다. 덕후라고 매 순간 매 초 덕질 생각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덕후도 사람이기 때문에, 하는 덕질이 있고 안하는 덕질이 있다! 각자 나아가는 덕질의 깊이가 다르고, 같은 컨텐츠를 좋아해도 해석하는 시각과 취향은 모두 다르다. 그런데 이런 모든 구분선들을 파괴하는 것이 덕통사고며, 사고 발생 위치는 바로 심장이다, 심장. 아무리 잘생기고 예뻐도, 아무리 아름답고 훌륭해도 내 마음이 동해야 일어나는 사고란 말이다. 그런데 이게 메이저(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덕질하는 것)일지, 아니면 마이너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일단 덕톤트럭에 치인 다음에야 안다. 마이너, 혹은 덕질 영역이라고 부르기엔 일반적이지 않은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저 정신차리고 보니 홀로 고원에 서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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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덕질도 서러운데 손가락질까지

연애도 안하고, 결혼도 안하고 덕질 대상을 사랑하며 산다고 놀림 받는 것은 덕후들의 숙명이다. 학교 다니고 직장 다니면 됐지, 나머지 삶까지 ‘누구’를 만나지 않으면 이상한거라니 너무 억울하다고! 그런데 심지어 ‘혼자 덕질’ 하고 있으려면 솔직히 좀, 아니 아주 많이 힘들다. 주변 덕후들에게 아무리 영업을 해봐도 모두 힘내라고 응원해주며 외면할 뿐이다. 영업이 될만한 요소가 별로 없다면 더욱 심심하다. 같은 덕후들도 같이 파주지를 않는데 심지어 머글에게 이런 덕질을 들키기라도 한다면 더욱 민망하다.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다닐 뿐인데 자꾸만 스스로를 힘들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생각들을 자꾸만 하다 보면 보면 덕질을 점점 손에서 놓게 되고, 어느 날 탈덕을 한 채 멍하니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탈덕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혼자 덕질하는게 지쳐서 하는 탈덕은 좀 슬프다.

마이너면 좀 어때?

그러니까 마이너한 덕질을 하는 덕후 여러분들이여, 가슴을 펴고 당당해지자. 당신의 덕질을 보며 놀리는 이들이 지금 머글이라고, 또는 메이저를 파고 있다고 언제까지나 머글이고  메이저일 수 있을까? 만약 30년 전 종영된 당대 최고 인기 만화영화에 어제 입덕했다면? 세상의 모든 문법이 갑자기 아름다운 규칙으로 보인다면? 천만관객을 넘긴 영화에 나오는 단역 배우에게 한눈에 반했다면? 에스토니아 탈린 출신의 밴드의 노래에 마음이 빼앗겼다면?3)Frankie Animal- Obsession https://www.youtube.com/watch?v=l-HRjKEM2hI 어느 날 문득 틴케이스의 매력에 빠져버렸다면?

덕통사고라는 말의 유래에서도 알 수 있듯이, 덕통의 순간은 언제나 예고없이 찾아온다. 사랑에 빠지고 싶지 않다고 어디 마음대로 되던가? 메이저한 취향이건 마이너한 취향이건 대상이 다를 뿐이다. ‘세 명만 파면4)덕질을 하면 메이저’라며 자조할 것 없다. 함께하면 커지고 나눌수록 기쁜 것이 덕질이지만, 혼자서 좀 좋아하면 어떤가? 당신은 그저 열렬히 사랑하는 어떤 대상이 있을 뿐이다. 그거면 충분하다.

놓지 않을게...☆★

놓지 않을게…☆★

글/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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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필기구 특히 만년필과 관련된 덕질은 잉크덕질에 한꺼번에 입문하는 경우가 많아 답이 없다
2. 두 가지 차 모두 해당한다. tea와 car.. 특히 전자의 ‘차’ 덕질은 빠지면 카드를 잘라야 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3. Frankie Animal- Obsession https://www.youtube.com/watch?v=l-HRjKEM2hI
4. 덕질을 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