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게다가 난 새로운 환경에 워낙 적응을 빨리 하는 편이라, 정확히 이주일이 지나자 점점 일과 도시생활에 흥미를 잃었다. 일단 일에 관해 말해보자면, 시급은 서호주 파트타이머 최저 시급인 16.87 호주달러를 받는다. 현재 호주달러가 830~870원 사이를 웃돌고 있으니, 한국의 3배 조금 안되는 셈이다.

채용 상태는 풀타임, 파트타임, 캐주얼로 나뉜다. 풀타임과 파트타임 근무자의 경우 근무 시간과 급여를 주 단위로 계산하는지 시간 단위로 계산하는지 등에서 미세한 차이를 보일 뿐 비슷하다. 캐주얼의 경우 ‘부르면 가는’ 상태로 보면 쉽겠다. 호주는 급여도 주 단위로 받고, 스케줄도 주 단위로 나오는데 캐주얼의 경우 이 스케줄이 고정적이지 못하다. 시프트1)일하는 시간를 많이 받으면 주에 4일을 근무 할 수도 있고, 반면 하루도 일이 없는 주도 있다.

나는 파트타이머로 고용됐고, 근무 시간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아침 8시 반부터 저녁 6시까지. 금요일은 9시 반까지 근무였다. 주마다 근무하는 요일은 달라질 수 있으며, 보통 주 4~5일, 특정한 사정이 있는 주2)누군가 휴가를 간다거나 아픈에는 6일까지 근무를 할 수 있다고 했다. 고용되고 첫 두 주 간은 주에 이틀밖에 근무를 하지 않았다. 이 기간동안 수많은 내적갈등이 있었더랬다. 이 일을 그만둘까… 지금이라도 호스텔 청소하는 거나 할까… 이 때는 키친핸드 일을 하면서 샌드위치 가게에서도 일을 하고 있던 상태였다. 샌드위치 가게는 손님도 없고, 시급이 18불이나 돼서 꿀이긴 했는데. 왕복 2시간이라는 크나큰 단점을 배제한다면 말이다. 그리고 시프트를 너무 적게 줬다. 주에 이틀밖에 일을 하지 않았으니. 여튼 이런 저런 고민을 하던 차에, 키친핸드로 일하는 가게에서 다음주부터 주 5일 근무가 가능하냐고 물어왔다.

음 보자.. 이캐하면 얼..마..지…

주 5일이면 주에 적어도 50시간은 근무를 하고, 그러면 주급은 900불을 넘고… 당장 샌드위치 가게에 알렸다. 다음주부터 일을 못할 것 같다고. 그렇게 지금 일하는 가게에서 멍멍이처럼 일을 했다.

주급 1000불!!!!

내가 일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 헤드셰프와 수셰프가 연달아 휴가를 가는 바람에 근 한달 반동안 주 6일 근무를 한 적이 있다. 무려 주에 61.5시간이나 근무를 했는데, 페이슬립3)주마다 나오는 급여명세서 같은 것. 주에 몇 시간 일했는지, 세금은 얼마나 나갔는지, 연금은 얼마나 들어오는지 등등이 적혀있음을 보니 입이 떡 벌어졌다.

내 여권이 어딨더라..

내 여권이 어딨더라..

주급 천불이라뇨. 제가 주급 천불이라뇨… 워홀러들이 그렇게 바란다는 주급 천불을 달성한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주 6일 시프트를 받은 첫 주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일 하고 오자마자 피곤해서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 눈을 잠깐 감았다 뜨니 다음날. 또 터벅터벅 일을 가고. 특히나 금요일 같은 경우는 디너까지 근무를 해야했기에 하루에 13시간을 일해야 했다. 그렇게 일하고 집에 와 잠깐 눈을 붙이고 또 토요일 근무를 가야했고4)토요일에는 시급이 22불이라 졸린 눈을 부비며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오늘의 10시간이 금요일 13시간이야! 일어나!!! 하는 외침이 머릿속을 쩌렁쩌렁 울렸으니.. 지금은 주 4일 근무를 하고 있는데, 주 6일을 하다가 4일 근무를 하니 정말이지 모든 것들이 아름다워보였다. 출근 버스에서 와르르 쏟아지는 중고딩들도, 백팩으로5)정장에 백팩을 입은 회사원들이 굉장히 많다 나를 쳐대는 회사원들도 온화한 얼굴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으니 말 다 했지.

3개월, 그리고 찾아온 우울함

호주에 온 지 2개월이 지나 3개월차에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 지는 한달도 채 되지 않았고
일은 힘들긴 했지만, 조금씩 적응해가는 중이었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모두 좋은 사람들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온 종일 한국 가고 싶다, 일 때려칠까 말까 같은 고민을 했더랬다. 솔직히 말하자면 워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과 이곳 생활에서의 회의감 같은 거였다. 한국에서는 금수저까지는 아니더라도 동수저쯤 되는 수저로 밥도 열심히 먹었고, 난다 긴다 하는 아이들이 모이는 학교도 들어갔다. 사회 대다수가 선택하는 그 길이 싫어 이 곳에 오긴 했지만, 여기서 밥을 벌어먹고 살면서도 머릿속 한 켠에는 ‘아, 한국에서는 어떨 텐데~’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이를테면, 설거지를 하는 동안에도 아, 한국에서는 과외로 대충 시간 떼우면서 돈 벌었는데6)물론 한국에서 알바 할 때도 이런 생각을 하긴 했지만, 한국에서 했던 알바들이 워낙 꿀이었어서, 초췌한 쌩얼과 쭉쭉빵빵한 서양 언니들을 보며 아, 한국에서는 나도 예쁘다는 소리 좀 들었는데7)물론 한국 생얼이나 호주 생얼이나 거기서 거기다. 자존감의 완성은 화장…? 이랄까 같은. 여기서 만나는 대다수의 한인들 역시 내게 비슷한 소리를 던졌다. 내가 너라면 워홀 안 오고 한국에서 돈 모아서 여행가겠다, 00대 다니는데 왜 워홀 와?, 그래도 너는 좋겠다 그냥 언제라도 한국 돌아가면 되잖아, 난 이게 마지막 돌파구라 온 건데, 등등의.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냥 다양한 경험 해보고 싶어서 왔어요, 했다. 그게 사실이었고, 새벽에 공연장 청소를 하면서도 마냥 즐겁기만 했다. 내가 지금 아니면 언제 이런 청소일을 해보겠어, 이런 일 하면서 이게 얼마나 힘든일인지, 또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일인지 알게 됐잖아? 더불어 돈의 소중함도! 그리고 공연장 매너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런 것조차 안 지키는 매너 없는 사람들도 참 많구나. 난 이렇게 안 되어야겠다, 싶었다. 뭐 이런 생각들을 하다가 가끔씩 올라오는 인턴 혹은 교환학생 중인 동기들의 근황에, 무언가 뻥 터졌던 것 같다. 난 한국 가면 뭐하지? 돌아가면 3학년이고 취준생인데? 평소 같았으면 난 아직 존나 젊어! 고작 스물 두살이고 여기선 생일도 안 지났으니 무려 스무살이야!!

그래요! 젊다구요!

그래요! 젊다구요!

그러나 막상 우울감이 내 발목을 잡아 당기니 나도 모르게 우울의 바다에 풍덩 빠지게 되더라. 홈식(homesick)을 빙자한 우울함의 시기랄까. 한국에서는 타지생활하는 동안에도 이렇게 우울했던 적이 몇 번 없었던 것 같은데, 이 시기의 나는 일을 하는 동안에도, 일을 마치고 와서도 멍하게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일을 하는 동안에는 나았다. 바쁘게 시간을 보낼 무언가가 끊임없이 밀려들었으니까. 집에 와서는 침대에 가만히 누워 벽을 바라보고 있기도 했고, 이불을 머리 끝까지 당겨 엉엉 울기도 했다. 3,6,9개월 단위로 홈씩이 온다더니! 나도 예외는 없구나. 기왕 우울한 거 그냥 바닥을 찍고 오자. 여기서 억지로 기분 풀려고 해도 잘 안 풀리니까, 싶은 마음이었다. 모든 우울함의 끝에는 ‘엄마, 아빠 보고 싶다’ 따위의 생각이 있었다. 그렇게 퉁퉁 부은 눈으로 일을 가고, 그러기를 일주일. 어떻게 저떻게 극복은 되더라. 그 때 뭐가 그렇게 서럽다고 울었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로 요즘엔 잘 살고 있으니까.

편집 및 교정 / 커밋

글 / 가오나시

   [ + ]

1. 일하는 시간
2. 누군가 휴가를 간다거나 아픈
3. 주마다 나오는 급여명세서 같은 것. 주에 몇 시간 일했는지, 세금은 얼마나 나갔는지, 연금은 얼마나 들어오는지 등등이 적혀있음
4. 토요일에는 시급이 22불이라 졸린 눈을 부비며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오늘의 10시간이 금요일 13시간이야! 일어나!!! 하는 외침이 머릿속을 쩌렁쩌렁 울렸으니.
5. 정장에 백팩을 입은 회사원들이 굉장히 많다
6. 물론 한국에서 알바 할 때도 이런 생각을 하긴 했지만, 한국에서 했던 알바들이 워낙 꿀이었어서
7. 물론 한국 생얼이나 호주 생얼이나 거기서 거기다. 자존감의 완성은 화장…? 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