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Simon for Misfits

2015년 9월 2일 수요일 오후 12시 5분. 다행히 추적추적 내리던 비는 그치고 있었지만 길을 헤매던 사이 5분이 흘러있었다. 해는 나지 않았으나 막바지 여름 정오의 기온은 여전히 높았고, 비가 막 그친 날의 공기는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축축했다. 얼마 걷지도 않았지만 벌써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수요시위가 시작되는 시간인 정오에서 십 분이 모자라는 시점, 사진 기자 Simon과 블리가 막 도착했을 때는 날이 맑았다고 한다. 여유롭게 도착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이미 그 시간부터 시위에는 사람이 꽤나 많이 몰려있었다고 했다. Simon은 이 인파도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라고 했다. 꽤 굵은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은 그 때였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사람들은 비를 피해 우산 아래로 몸을 숨겼고 할머니들이 앉으실 의자에도 파란 장막이 씌워졌다.

젖고 있는 것은 소녀상뿐이었다.

12시 8분. 내가 골목 모퉁이를 딱 돌자마자, 한눈에 들어온 것은 형광색 조끼를 입은 의경들과 의경으로 둘러싸인 가운데 학생들이 <바위처럼> 노래를 부르며 율동을 추고 있는 모습이었다. 처음 보자마자 든 생각은 ‘와, 진짜 덥겠다’. 두 번째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네?’

내 또래의 젊은 사람들이 주축일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참가자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던 사람들은 중고등학생들이었다. 다음으로는 평화나비 네트워크(이하 평화나비)의 대학생들, 조끼와 세월호 배지를 달고 있는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하 공무원노조)의 조합원들, 수녀님들, (사)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의 활동가들, 언론사의 기자들, 혹은 신분을 모를 참가자들 등등.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 무리를 이루고 있는 사이에서 겨우겨우 미스핏츠 팀원들을 찾아 들어갔다.

경과보고를 하고 있는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의 뒷모습

경과보고를 하고 있는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의 뒷모습(사진/Simon for Misfits)

12시 10분. 아직도 모든 것이 생경했다. ‘시위’ 제목을 달고 있는 것에 참여하는 게 처음이라, 내가 생각했던 ‘하드한 분위기’가 아니라서 안도하고는 있었지만 앞뒤에 서 있는 ‘조끼 입은 분들’을 보면서 조금은 긴장하고 있었다. 여기 있는 다른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두리번거리는 가운데,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의 경과보고가 내 귀에 내리 꽂혔다.

“올해 TV에서, 광장에서 해방 70주년 행사가 성대하게 열렸습니다. 광복 70주년을 그 누구보다 축하하고 싶은 할머니들입니다. 하지만, 할머니들은 몸도, 마음도 아직 해방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아직 할머니들은 해방을 맞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수요시위가 시작된 것은 1992년 1월 5일. 우리나라 나이로 치면 ‘빠른 92’, 25살이다. 나보다 나이가 많다. 그 시간 동안, 나와 같은 ‘대한민국 국적’이 아닌 ‘일제 치하 식민지’의 멍에를 그대로 짊어진 채 할머니들은 여전히 이곳에 계신다. 역사는 흐르지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다시 주위를 둘러봤다. 바로 내 뒤에서 아까 보았던 공무원노조 여성조합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당황해서 돌린 시선의 끝에는, 울고 있는 다른 어르신들과 수녀님이 있었다.  훌쩍거리는 소리가 잦아진 빗소리 너머로 들렸다. 연신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내시는 사람들이 있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글과 말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아는 지식들을 한껏 떠들던 나는, 할머니들의 아픔 앞에서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나에게 역사를 말할 자격은 있는 걸까.

Simon9

(사진/Simon for Misfits)

블리 : “섹스는 아름답지.”

몰래 : “?!”

“뜬금없는 말이 아니라, 이 참인 명제가 저 분들한테는 아닌 거잖아. 사랑받고, 사랑하는 그 당연한 행위의 기쁨을 박탈당한 거라고.” 우리에게는 나라가 있었고, 그들은 없었다. 단지 그 차이로 인생의 궤도가 너무도 달라졌다. 그들이 다리가 썩은 아이를 유산하고, 자궁을 적출당하고, 맞고, 끌려가던 그 나이에 우리는 사랑하고, 사랑받고, 사랑을 갈구하면서 산다.  

9일부터 김복동 할머니는 저 먼 유럽까지 날아가 ‘위안부’ 문제를 국제 사회에 호소하고 오실 계획이라고 했다. 젊은 사람도 지칠 그 스케줄을 구순이 다 된 할머님이 소화하고 계셨다. 책,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로도 설명할 수 없는1)사족으로, 시위에 오기 전 미리 관련 자료를 찾아본 ‘블리’의 추천 유투브 단편 애니메이션.https://youtu.be/icIPKHicduw,http://www.youtube.com/watch?v=yfTHoR5gQQk

90년 삶 굽이굽이에는 한이 맺혀 있었다. 할머님들의 삶은, 고통받고 박탈당한 그 삶조차도 이제는 거의 남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시위가 계속되고 있었다. 무력 충돌도 일어나지 않았고, 시종일관 조용조용했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치고 할머님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작게 분노했고, 조금 서글펐고, 그렇기에 아무 말 못한 채 박수만 칠 뿐이었다.

(사진/Simon for Misfits)

(사진/Simon for Misfits)

(사진/Simon for Misfits)

(사진/Simon for Misfits)

12시 20분. 자유발언 시간이 돌아왔다. 첫 바통을 쥔 것은 전남 영광에서 올라온 성지중학교 1학년 남학생과 덕양중학교 2학년 남학생이었다. 아직 아이 티를 벗지 못하는 소년들이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준비해 온 발표를 하는 동안, (나를 비롯한) 어르신(?)들은 흐뭇한 미소로 그들의 발표를 듣고 있었다. 다들 ‘아직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구나’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산마을고등학교 학생들이 할머니께 드린 그림(사진/Simon for Misfits)

산마을고등학교 학생들이 할머니께 드린 그림(사진/Simon for Misfits)

산마을고등학교 여학생들은 산일줄 알았는데 인천이었다 왜 인천에는 산이 없을거라 생각하니 직접 그려온 그림과 편지를 할머니들께 드렸고, 평화나비 네트워크 대표의 발언이 이어졌다. 대표가 13학번이라뇨!…내가…내가 고학번이라니!  

카톨릭대에 다니는 한 대학생은, 현재 고 김학순 할머니의 기사를 최초로 일본 아사히 신문에 보도한 우에무라 타카시의 교수직 해임 반대 서명운동을 한국에서 홀로 진행하고 있었다. 그는 일본 단기 유학 도중에 수요시위 참가와 서명 운동 진행을 위해 귀국했다. (현재 우에무라 교수는 우익 단체들로부터 교수직 해임 압박을 받고 있다.) 다음으로 공무원노조 비대위 손혜경 부위원장의 발언이 시작되었다. 아까 내 뒤에서 가장 많이 울던 분이었다. 그녀가 건넨 첫 인사는 이것이었다.

“할머니들, 사랑합니다. 한 번 안아드려도 될까요?”

아, 저거구나.

그 말을 듣는 순간 속에서 무언가 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비록 모순과 분노로 시작되었지만 사랑이 없었다면 이 시위가 계속될 수 있었을까. 70년 전 일에 눈물짓는, 이 많은 사람들이 24년 동안 한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영광에서 서울까지, 일본에서 한국까지 오게 하는 힘. 나는 분노하기 위해 간 자리에서 사랑을 배우고 있었다.  

비가 와도 그 자리에서(사진/Simon for Misfits)

12시 40분.

자유발언이 모두 끝나고, 성명서를 낭독하는 시간이 돌아왔다. 새삼 종이 맨 위의 제 1194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성명서라는, 명조체 글자가 유독 크게 다가왔다. 이 사람들은 내 인생보다도 긴 시간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더운 날에도, 추운 날에도 – 인정해라, 실천해라, 행동해라, 사과해라. – 똑같은 말을, 똑같은 자리에서, 1000번이 넘도록 외쳤을 것이다.

12시 45분.

착잡한 표정으로 성명서를 듣고, 구호 세 번 외치고, 5초 동안 함성을 지르니 길어보이던 시위는 어느새 끝나있었다.  비가 와서인지, 시위는 한 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끝났다.

할머니들이 차를 타고 그 곳을 떠나고 있었다. 사람들은 소녀상 옆에서 사진을 찍거나, 후원 물품을 사거나, 삼삼오오 모여서 점심을 무엇을 먹을지 얘기하고 있었고, 의경들은 초소로 돌아가기 위해 정렬하고 있었다. 시위가 시작할 때 현장을 지나치며 점심을 먹으러 가던 근처 직장인들은 다시 직장에 돌아오고 있었다. 저 사람들도 이 수요시위를 참 많이 봤겠지.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던데, 저 분들도 성명서 내용을 줄줄 외우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면서 일본 대사관의 담벼락을 올려다 봤다.

해는 여전히 구름에 가려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고, 붉은 벽돌로 쌓아 올린 담벼락은 마냥 높았다.

편집 및 교정/요정

사진/Simon, 수련

글/블리 & 몰래

   [ + ]

1. 사족으로, 시위에 오기 전 미리 관련 자료를 찾아본 ‘블리’의 추천 유투브 단편 애니메이션.https://youtu.be/icIPKHicduw,http://www.youtube.com/watch?v=yfTHoR5gQQ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