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수요 시위가 뭔가요?

A.1992년 1월 8일 당시 일본 총리 미야자와 기이치가 방한한 것을 계기로 “일본군 ‘위안부’(이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중심으로 주한 일본 대사관 앞 평화로에서 매주 수요일 정오마다 열리는 시위를 의미합니다. 2011년 12월 14일에 1000회 집회가 열렸고, 2015년 9월 2일에 제 1194차 시위가 열렸습니다. 처음 시위가 열렸을 때는 235명의 할머니들이 시위에 동참했지만, 현재는 김복동(89), 길원옥(88) 할머니 두 분만이 꾸준히 수요시위에 참가하시고 있습니다.1)1991년 8월 14일 고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으로 위안부였음을 공개증언한 것을 계기로 ‘위안부’문제가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할머니는 모두 238명이고, 2015년 8월 현재 생존 위안부 할머니는 47명이다.

수요시위에서는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 사항을 요구합니다.

일본군 위안부 범죄 인정

위안부 진상 규명

국회결의사죄

법적 배상

역사교과서 기록

위령탑과 사료관 건립

책임자 처벌

또한, 수요‘시위’와 수요‘집회’를 혼동하여 쓰는 경우가 많은데, 사전에 실린 바에 따르면

시위 : 많은 사람이 공공연하게 의사를 표시하여 집회나 행진을 하며 위력을 나타내는 일

집회 : 여러 사람이 어떤 목적을 위하여 일시적으로 모임. 또는 그런 모임.

그러므로, 수요집회가 아닌 수요시위로 부르는 것이 더 타당합니다. 수요시위 성명서 제목에도 ‘제 1194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로 되어 있습니다.

Q.가면 뭘 하나요? 시간은 얼마나 걸리나요?

A.미스핏츠가 참가했던 제 1194차 수요시위 기준으로 설명하면, 12시 정각, 정오에 시위 장소에 도착하면 a4 용지 한 장을 받게 됩니다. 이 종이에는 성명서 내용과 시위의 순서, <바위처럼> 노래 등이 간략히 적혀있습니다.

시위가 시작되면 먼저 여는 노래 <바위처럼>2)바위처럼 살아가보자/모진 비바람이 몰아친대도/어떤 유혹의 손길에도 흔들림 없는/바위처럼 살자꾸나/바람에 흔들리는건/뿌리가 얕은 갈대일 뿐/대지에 깊이 박힌 저 바위는/굳세게도 서 있으니/우리 모두 절망에 굴하지 않고/시련 속에 자신을 깨우쳐가며/마침내 올 해방세상 주축돌이 될/바위처럼 살자꾸나 https://www.youtube.com/watch?v=1_xMz5X0ZhQ 을 약 5분 간 부릅니다. (이번 1194차 수요시위에서는 ‘평화나비 네트워크’의 대학생들이 불러주셨습니다.)

그런 뒤 현재까지의 경과보고를 약 15분 간 합니다. 수요 시위에 대한 설명과, 현재 정대협과 할머니들이 하고 있는 일들의 진행 상황 등을 설명하고,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의 활동을 촉구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집니다.

다음으로는 참가자들의 ‘자유발언’이 이어집니다. 제 1194차 수요시위에서는 약 20분 간 성지중학교, 덕양 중학교, 섬마을 고등학교의 학생들, 전국공무원노조, 평화나비 네트워크, 카톨릭 대학교 학생과 한 어르신께서 자유발언을 진행했습니다. 저는 쫄보라 안 나갔습니다

자유발언이 끝나면 성명서를 낭독하고 구호를 같이 외칩니다. 1194차 수요시위의 구호는

– 일본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범죄의 진상을 규명하고 공식 사죄하라!

– 일본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범죄에 대해 법적 배상하라!

– 일본정부는 집단자위권 법안 폐기하고 전쟁 책동을 멈춰라!

– 한국정부는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헌법재판소 판결에 따라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 앞당겨라!

네 가지였고, 참가자들은 맨 끝의 ‘사죄하라’ ‘배상하라’ 등등을 문장이 끝날 때마다 세 번씩 외쳐주시면 됩니다. 간단한 것 같지만 저는 순간적으로 ‘저 긴 문장을 어떻게 말하지?’라고 고민했기 때문에(…)

성명서 낭독이 끝나면, 일본 대사관을 향해 ‘평화의 함성’을 지릅니다. 있는 힘껏 분노와 빡침을 담아 5초 간 지르면 됩니다(…) 함성이 끝나면, 포토타임을 가지고 시위가 마무리됩니다.

1194차 수요시위는 12시 45분에 종료되었고, 총 45분간 진행되었습니다. 생각보다는 길지 않은 시간입니다. 오히려 너무 빨리 끝나서 놀랐습니다

Q.어디서 하나요?

A.종로구 일본 대사관 앞 ‘평화로’에서 매주 수요일 진행합니다. 알아주는 길치인 ‘몰래’가 가본 바에 따르면 지하철 3호선 안국역 6번 출구로 나가서, 인사동 골목으로 들어가지 않고 경복궁 벽을 따라 쭉쭉 직진하여 트윈트리 타워를 지나기 전의 골목으로 들어오면 형광 조끼를 입은 의경들이 지키고 서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시위가 있지 않은 이상 아마도) 제대로 오신 겁니다.

Q. 따로 준비해 가야 할 게 있나요?

A. 이번 <수요일에 만나요>의 취지는 ‘언론의 눈이 아닌 참가자의 입장에서 보자’는 것이었기 때문에 미스핏츠는 따로 준비해가지 않았습니다만(…) 별로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는 걸 가서 알았습니다(…)

참가자들은 주로 피켓을 들고 왔으며, 편지와 그림 등을 가져와 할머니들께 드리기도 했습니다. 물질적인 것을 준비할 시간이 촉박하다면, 할머니들을 위한 사랑의 말을 준비해서 자유 발언 시간에 하시면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죄송합니다’보다는 ‘사랑합니다’라는 말이 더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도심 속 빌딩 숲, 아스팔트 길 한복판이라 가로수가 별로 없어 여름에는 부채와 모자, 겨울에는 손난로를 준비하면 좋고 비와 눈이 오면 온 몸으로 맞을 수 있기 때문에(…) 가기 전 날씨를 보고 꼭 우산을 챙겨가야 합니다. 맑은 날에는 햇빛이 그대로 내려쬐어서 부채나 모자 등을 준비해가면 좋고, 바람이 부는 날에는 빌딩 사이로 부는 칼바람 탓에 치마보다는 바지를 권장합니다.

또한 한 시간 동안 거리에 서 있어야 하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편한 복장을 입고 오는 것이 좋습니다.  시위가 끝나면 옆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후원하기 위한 물품들을 판매합니다. 카드 결제가 용이하지 않아서 현금을 들고 가는 것이 좋습니다.

사실 가장 중요한 준비물은 ‘마음’입니다.

Q.‘정대협’이 뭔가요?

A.(사)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준말로, 일본군 ‘위안부’ 범죄를 고발하고 국제적 네트워크를 통한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 회복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단체입니다. 1992년 1월 8일부터 매주 수요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 수요시위를 전개하고 있으며, 2012년 5월 5일부터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3)정대협 홈페이지: https://www.womenandwar.net/contents/home/home.nx 메인의 활짝 웃고 계신 할머니가 가슴에 와닿습니다.

Q.저…그…할머니들을 부를 때 어떻게 불러야 하나요?

A. (사)정대협의 명칭에서 보듯, 1990년대 ‘위안부’ 문제가 표면화되기 전에는 ‘정신대’라고 불렀습니다.4) “성명서. 우리 정신대협의회는 오는 1992년 1월8일을 기해 수요일 정기집회를 실시하며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힌다. 우리는 1990년 11월16일 36개의 여성단체가 모여 공식 발족한 이래 일본 정부에 대해 정신대 문제 해결을 위한 6개의 요구사항을 끊임없이 요구해왔다.” (제 1차 수요시위 성명서 중) 정신대(挺身隊)란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부대’ 개풀 뜯어먹는 소리 라는 의미로, 단어 자체는 남성과 여성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1944년 ‘여자정신근로령’이 제정되면서 ‘여자근로정신대’가 만들어졌으며, 실제 정신대 중 ‘위안부’로 끌려간 여성들이 있어 ‘위안부’ 문제가 한국 사회에서 처음으로 부각되기 시작할 때 ‘정신대’라고 지칭하기도 했습니다.

‘종군위안부’와 ‘위안부’를 혼동하여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종군(從軍)위안부’는 피해자들이 스스로 일본군을 따라갔다는 의미로 위안부의 강제성을 감추는 용어입니다. ‘위안부’의 한자는 ‘慰安婦’입니다. 해석하자면 전쟁에 지친 군인들을 위안한다는…의미입니다. 기사에 욕을 쓸 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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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짤로 한다^^!!!!!

이 때문에 미국, UN에서는 ‘위안부(comfort women)’이라는 말 대신 ‘일본군에 의한 성노예(sexual slavery)’, ‘강제 성노예(enforced sex slaves)’ 라는 용어를 쓰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부에서는 국내적으로는 “일본군 ‘위안부’”와 같이 작은 따옴표(‘’)를 붙여서 사용하고 있지만,5) http://www.truetruth.org/know/know.htm 자세한 것은 이 곳 참조. 읽다 보면 매우 빡치니까 들어가기 전 마음의 준비 요망. 6) 위안부에 따옴표가 들어가는 이유는 여성들이 스스로 부른 이름이 아니라 일본군에 의해, 일본군의 문서로 불린 이름이기 때문이다. 또 범죄 주체인 ‘일본군’이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이유는 강제성과 국가차원에서 저질러진 범죄임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결국 이 까다로운 이름 속에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적 성격이 담겨 있는 것이다. http://ppss.kr/archives/37482>국제적으로는 ‘일본군 성 노예(Military Sexual Slavery by Japan)’로 표기하고 있습니다.7) 더 자세한 위안부 문제를 알고 싶다면 이 영상과 이 인포그래픽을 추천합니다.
http://www.historyofkorea.net/history/index.php/main?id=31&lang=&page=2http://story.asiae.co.kr/comfortwomen/

Q.일본 정부가 잘못하고 있다는 건 알겠는데, 구체적으로 무슨 짓을 하는지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A.일본 정부는 박정희 정부 당시 체결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우리나라에 대한 배상과 보상은 이미 다 끝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한일국교정상화 때 지불한 배상금으로 식민지배에 대한 포괄적인 배상이 끝났기 때문에 다시 논의할 필요가 없다는 설명입니다. 당시 ‘위안부’는 문제 제기조차 안 되었지만요 걔네한테 뭘 바래 하지만 1993년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이 발표한 ‘고노 담화’8)연합뉴스, 일본군 위안부 동원 강제성 확인한 ‘고노 담화 ‘전문, http://www.yonhapnews.co.kr/politics/2014/06/20/0503000000AKR20140620123000073.HTMLb6BeN8uVeGVYNc3HtzM에는 당시 일본군과 정부가 위안부 모집이라고 쓰고 납치라고 읽어야합니다 의 운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고 인정하고, “몸과 마음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과와 반성의 뜻을 밝힌다” 라고 쓰고 있습니다. 또한 이런 역사의 진실을 직시해야 하며, 연구와 교육을 통해 같은 잘못을 절대 반복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를 표명하겠다는 것이 ‘고노 담화’의 내용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이죠…라고 하면 안 되니까, 아베 신조 현 총리(이하 격칭 생략 절대 일부러 생략하는 게 아님)와 현 일본 정부의 병크에 대한 것만을 간략하게만 요약하자면,

2015년 3월 27일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아베는 “인신매매(human trafficking)의 희생자”라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언급, 4월 27일 방미 중에 이 표현을 재언급

2015년 7월 8일 나카소네 전 일본 외무부 장관은 ‘고노담화’가 국제사회에 사실에 반하는 인식을 확산했다’고 일본군 ‘위안부’를 성 노예라고 규정하거나 ‘위안부 소녀상’ 설치 등이 “일본의 명예를 훼손하고 국익을 해치는 일”이라고 평가

2015년 7월 10일 일본 중위원 안보법제 특별위원회에서 “징용공(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 중 공장에서 일하고 싶다고 한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게 아니라면 징용된 것”이라고 전제한 뒤 “위안부도 모두 자기 의사에 의한 것은 아니고 여러 경제 상황을 포함해 의사에 반한 것도 있었다고 생각한다”9)연합뉴스, 아베 “‘강제노동 부정’에 韓정부 이의제기 없었다”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7/10/0200000000AKR20150710083451073.HTML?input=1179m고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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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다양한 망언들이 많아서(….) 자세한 것은 여기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Q.한국 정부는 뭘 어떻게 하고 있길래 그런 가요?

A.“뭘 어떻게 하고” 가 아니라 하지 않아서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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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시위에서 자주 언급되는 말 중 하나는 “한국 정부는 자신의 ’부작위‘를 반성하라“입니다. ’부작위‘란 법률 용어로 일정한 일을 해야 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2011년 8월 30일, 이른바 ”‘위안부’ 부작위 위헌소송“, 정식명칭은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제3조 부작위 위헌확인(2006헌마788)“ 으로 알려진 헌법재판소 판결입니다. 정부가 한일청구권협정 제 2조 1항10)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년 9월 8일에 샌프런시스코우시에서 서명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 (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에 의한 배상금을 말 그대로 ‘먹어버리는’11)박정희 정부 시절에 (주로 포항제철소 건립 자금으로) 국가 차원에서 경제 발전을 위한 돈으로 썼다. 바람에 ‘위안부’ 피해자들의 일본 정부에 대한 청구권이 없어졌는지, 그리고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부작위12) 한일청구권협정 3조 2항. 1의 규정에 의하여 해결할 수 없었던 분쟁은 (중략) 제3국의 정부가 지명하는 제3의 중재위원과의 3인의 중재위원으로 구성되는 중재위원회에 결정을 위하여 회부한다. 즉, 협정에서 해결할 수 없었던 분쟁은 ‘중재위원회’를 구성하는 등의 외교적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으며, 청구인(‘위안부’ 할머니들)의 입장은 피청구인(대한민국 정부, 외교통상부)이 이러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 부작위에 해당하며, 이는 국가가 국민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는 헌법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 헌재소송의 요지였다. 가 자신들의 권리를 침해했는지에 대한 판결로, 헌법재판소는 이 소송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의 부작위는 위헌이다’13) http://www.law.go.kr/detcInfoP.do?mode=1&detcSeq=16533 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헌재 판결의 <결정요지> 중 일부입니다.


일본국에 의하여 광범위하게 자행된 반인도적 범죄행위에 대하여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에 대하여 가지는 배상청구권은 헌법상 보장되는 재산권일 뿐만 아니라, 그 배상청구권의 실현은 무자비하고 지속적으로 침해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신체의 자유를 사후적으로 회복한다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므로 피청구인의 부작위로 인하여 침해되는 기본권이 매우 중대하다. 또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는 모두 고령으로서,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경우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배상청구권을 실현함으로써 역사적 정의를 바로세우고 침해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회복하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해질 수 있으므로, 기본권 침해 구제의 절박성이 인정되며, 이 사건 협정의 체결 경위 및 그 전후의 상황, 일련의 국내외적인 움직임을 종합해 볼 때 구제가능성이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국제정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전략적 선택이 요구되는 외교행위의 특성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피청구인이 부작위의 이유로 내세우는 ‘소모적인 법적 논쟁으로의 발전가능성’이나 ‘외교관계의 불편’이라는 매우 불분명하고 추상적인 사유를 들어, 기본권 침해의 중대한 위험에 직면한 청구인들에 대한 구제를 외면하는 타당한 사유라거나 진지하게 고려되어야 할 국익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4년이 지난 지금, ‘위안부’ 청구권은 여전히 제기되지 않고 있으며, 일본 정부의 행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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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으로 표현하기도 이젠 힘듭니다(....)

문장으로 표현하기도 이젠 힘듭니다(….)

또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상황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고 있으며, 현재 할머니들이 점점 나이들어 가면서 앞으로를 기약할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수요시위에서 한국 정부의 부작위에 대한 비판은 점점 거세져 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Q.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A.저는 조금이라도 이 문제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수요시위에 한 번이라도 참여해보기를 권합니다. 평화나비 네트워크와 희움14)http://www.joinheeum.com/ 등 간접적으로 ‘위안부’ 할머니들을 후원할 수 있는 방법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할머니들을 직접 뵐 수 있는 시간은 정말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현재 생존한 할머니들은 총 47명, 평균 나이 88세의 고령입니다. 앞으로 10년, 아니 5년도 기약할 수 없습니다.

다소 현실적인 얘기로 돌아오자면, 현재 일본 정부의 자세로 봤을 때 그 시간 안에 ‘위안부’ 문제를 전부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은 많이 낮습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시간이 지나더라도, 아무리 시간이 흐르더라도, 이 문제를 기억하고 끝내 해결하려는 우리들의 결심과 마음가짐입니다.

 

“우리가 할머니들과 함께 다짐했던, 마침내 해방을, 기어코 해방을 우리는 맞이할 것입니다”

– 제 1194차 수요시위,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의 경과보고 중

편집 및 교정/요정

사진/수련

글/몰래

   [ + ]

1. 1991년 8월 14일 고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으로 위안부였음을 공개증언한 것을 계기로 ‘위안부’문제가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할머니는 모두 238명이고, 2015년 8월 현재 생존 위안부 할머니는 47명이다.
2. 바위처럼 살아가보자/모진 비바람이 몰아친대도/어떤 유혹의 손길에도 흔들림 없는/바위처럼 살자꾸나/바람에 흔들리는건/뿌리가 얕은 갈대일 뿐/대지에 깊이 박힌 저 바위는/굳세게도 서 있으니/우리 모두 절망에 굴하지 않고/시련 속에 자신을 깨우쳐가며/마침내 올 해방세상 주축돌이 될/바위처럼 살자꾸나 https://www.youtube.com/watch?v=1_xMz5X0ZhQ
3. 정대협 홈페이지: https://www.womenandwar.net/contents/home/home.nx 메인의 활짝 웃고 계신 할머니가 가슴에 와닿습니다.
4. “성명서. 우리 정신대협의회는 오는 1992년 1월8일을 기해 수요일 정기집회를 실시하며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힌다. 우리는 1990년 11월16일 36개의 여성단체가 모여 공식 발족한 이래 일본 정부에 대해 정신대 문제 해결을 위한 6개의 요구사항을 끊임없이 요구해왔다.” (제 1차 수요시위 성명서 중)
5.  http://www.truetruth.org/know/know.htm 자세한 것은 이 곳 참조. 읽다 보면 매우 빡치니까 들어가기 전 마음의 준비 요망.
6. 위안부에 따옴표가 들어가는 이유는 여성들이 스스로 부른 이름이 아니라 일본군에 의해, 일본군의 문서로 불린 이름이기 때문이다. 또 범죄 주체인 ‘일본군’이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이유는 강제성과 국가차원에서 저질러진 범죄임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결국 이 까다로운 이름 속에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적 성격이 담겨 있는 것이다. http://ppss.kr/archives/37482>
7. 더 자세한 위안부 문제를 알고 싶다면 이 영상과 이 인포그래픽을 추천합니다.
http://www.historyofkorea.net/history/index.php/main?id=31&lang=&page=2http://story.asiae.co.kr/comfortwomen/
8. 연합뉴스, 일본군 위안부 동원 강제성 확인한 ‘고노 담화 ‘전문, http://www.yonhapnews.co.kr/politics/2014/06/20/0503000000AKR20140620123000073.HTMLb6BeN8uVeGVYNc3HtzM
9. 연합뉴스, 아베 “‘강제노동 부정’에 韓정부 이의제기 없었다”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7/10/0200000000AKR20150710083451073.HTML?input=1179m
10.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년 9월 8일에 샌프런시스코우시에서 서명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 (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
11. 박정희 정부 시절에 (주로 포항제철소 건립 자금으로) 국가 차원에서 경제 발전을 위한 돈으로 썼다.
12.  한일청구권협정 3조 2항. 1의 규정에 의하여 해결할 수 없었던 분쟁은 (중략) 제3국의 정부가 지명하는 제3의 중재위원과의 3인의 중재위원으로 구성되는 중재위원회에 결정을 위하여 회부한다. 즉, 협정에서 해결할 수 없었던 분쟁은 ‘중재위원회’를 구성하는 등의 외교적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으며, 청구인(‘위안부’ 할머니들)의 입장은 피청구인(대한민국 정부, 외교통상부)이 이러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 부작위에 해당하며, 이는 국가가 국민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는 헌법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 헌재소송의 요지였다.
13. http://www.law.go.kr/detcInfoP.do?mode=1&detcSeq=16533
14. http://www.joinheeu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