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우리가 처음일 줄 몰랐다.

그 많던 언론들은 어디로 갔을까. 미스핏츠는 국내 언론사 가운데 최초로 세월호 인양 사전 작업을 취재하기 위해 동거차도를 찾았다.

6일 밤 서울에서 출발해 진도 팽목항을 거쳐 동거차도까지 11시간이 걸렸다. 동거차도는 세월호 참사 지점에서 1.5km 떨어진, 참사 지점과 가장 가까운 섬이다. 섬의 산꼭대기에는 가족들이 직접 중국 인양 업체 ‘상하이 샐비지’의 사전 작업을 감시하기 위해 마련한 초소가 있다. 철철저하게 세월호 유실방지 작업을 하겠다던 정부는 인양업체 선정부터 현재 진행되는 인양 사전 작업까지 모두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다. 아무 것도 믿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결국 가족들을 동거차도로 들어왔다.미스핏츠는 희생자 가족들이 있는 곳을 찾아갔다.

우리는 길이 없는 산길을 노란 리본에 의지해 30분쯤 올랐다.

사진/보리 for Misfits

사진/보리 for Misfits

산등성이에 다다랐을 때 저 멀리 허름한 천막이 보였다. 그곳에 형준 아버지와 승묵 아버지가 있다. 천막으로 덧댄 초소에는 물도, 전기도 공급되지 않았다. 그들은 물티슈로 설거지를 하고 스티로폼 위에 몸을 뉘였다. 가림막조차 없는 초소 위로 쏟아지는 한낮의 뜨거운 태양 아래 가족들의 얼굴과 몸은 이미 까맣게 탄지 오래였다. 씻는 건 어떻게 해결하시냐는 물음에 승묵 아버지는 일주일 동안 못 씻는 건 아무 것도 아니라며 물티슈로 세수를 대신하셨다. 승묵 아버지는 초소 앞 400mm 렌즈의 카메라로 상하이 샐비지의 움직임을 지켜봤다. 그는 “어제는 바지선이 흙탕물을 뽑아냈는데, 오늘은 맑은 물을 뿜어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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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를 기점으로 오른쪽에는 중국 바지선인 상하이 샐비지와 한국 바지선인 보령호가, 근처에는 각 바지선의 예인선 두 대가 있다. 바지선은 크레인이 설치되어 있는 주 작업대이며, 예인선은 바지선을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바지선의 크레인 고리는 물속에 잠겨 있고, 두 대 모두 가족들의 시선을 등졌다. 형준 아버지는 “며칠 전만 해도 중국 바지선이 측면으로 위치해 작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오늘은 홱 뒤돌아 보이지 않는다”며 아쉬운 마음을 보였다.

초소에서 바다를 향해 날카로운 바위산을 기다시피 30분 정도 내려오면 바지선이 조금 더 가까워진다. 거기에 또 다른 임시초소가 있다. 바지선의 중국 직원들에게 ‘당신들을 믿는다’는 가족들의 메시지를 담은 현수막도 보인다. 한 뼘 거리의 바다에서는 한때 모두가 집중했던 세월호 인양 사전 작업이 벌어지는데도 주변은 너무 고요했다. 잔파도가 바위를 찰싹이는 소리만 울렸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은 오직 가족들뿐이었다.

“요한아, 요한아, 이름 한번 마음껏 불러보자”

요한 아버지가 아들의 이름을 열 번 정도 부르자 예인선의 움직임이 포착됐다. 배는 우리 쪽을 향해 서서히 다가왔다. 저 예인선은 종종 임시초소 앞으로 와서 배의 앞머리를 섬으로 겨누고 있다고 한다. 그때 승묵 아버지의 전화가 울렸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정보원이 ‘섬에 들어온 가족 감시단이 몇 명인지, 그리고 다시 현수막을 달려고 하는지’ 이장에게 연락을 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빠른 국가의 대응은 처음이었다. 11988391_1658924117682534_63625458447572262_n

“앞으로 벌어질 정부의 시나리오는 무궁무진해”

“찌그러진 난간을 물 안에서 용접해 버릴지 누가 알아?”

“배를 들다가 한번 떨어뜨릴지 어떻게 알아?”

“우리가 누굴 믿어야 해, 그래서 망원경으로 멀리서나마 지켜봐야지. 끝까지”

편집 및 교정/ 랫사팬더

글/ 보리, 아니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