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 5:00

때르르르르!!!

머리 위에서 소화전을 닮은 경보계가 부서질 듯 울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다른 사람들은 모두 갑판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뒤따라 올라가 남들 하는 걸 곁눈질하며 장비를 입었다. 이제부터 일이 시작되는 건지 나를 제외한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던 그 때, 기관장님이 어깨를 툭 치셨다. 막내는 일단 보고나 있으라 말씀하셨다. 그물 근처로 넘어 왔다가 괜히 위험해진다는 얘기였다. 배는 어둠을 가르고 앞으로 나아갔다. 선원들이 그물추를 던졌다. 배가 나아가는 힘을 흡수한 그물추는 멀리 날아가 바다 깊숙이 가라앉았다. 가라앉은 그물줄 반대편은 가벼운 재질로 되어 있어 수면으로 떠올랐고, 그것으로 바닷속에 거대한 그물 벽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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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벽을 만들어 몇 시간을 기다리면 지나가던 물고기들의 목이 그물코에 걸린다. 고기가 잡히는 것이다.

그물 던지는데 투입되지 않은 사람은 나와 주방장 형 뿐이었다. 30대 중반인 주방장 형은 베트남인이었다. 세 남매의 아버지인 그는, 항해가 끝나면 항구의 사창가를 즐겨 찾는 사람이기도 했다. 요리를 다 했는지 가스렌지에 기대어 졸고 있던 형은 나를 보자 이것저것 식기를 주며 식사 준비를 하라고 했다. 물론 식사 준비라고 해봤자  바닥에 식사를 늘여 놓는 것 뿐이었지만.

식사 시간은 3시간 정도의 작업이 끝난 뒤였다. 때가 되니 사람들이 모두 자리에 앉았다. 나 역시 밥을 깨작거렸다. 그 모습에 전직 보도방 사장이었던 형(줄여서 보도방 형)이 내게 억지로라도 좀 더 많이 먹으라 말을 건네왔다. 안 그럼 뱃멀미가 낫지 않는다는 거였다. 평소 말 붙이기 어려울 만큼 무서운 분위기를 지녔던 보도방 형의 말에 나는 억지로 오뎅국을 들이켰다. 그리고 1초 후, 모조리 바다에 게워냈다. 바다 위 둥둥 뜬 토사물로 갈매기들이 날아 들었다. 다행히 이번엔 피는 나오지 않았지만 몸이 덜덜 떨렸다. 갈매기들이 우르르 날아와 바다에 둥둥 떠있는 아까까지 내 몸에 있던 음식물을 맛있게 쪼아 먹었다.

끼룩끼룩

끼룩끼룩

원래 막내인 내 몫인 설거지와 식사 마무리는 인도네시아인 안디와 조폭 형에게 돌아갔다. 20대 초반인 안디는 늘 버퍼링 걸리는 언행과 지나친 식탐으로 모두의 무시를 받는 사람이었다. 염치고 뭐고, 그들에게 일을 맡긴 나는 그냥 내려가 기절하듯 잠들었다. 그 수 밖에 없었다.

AM 10:00

그리고 또다시 울리는 경보 소리. 눈이 번쩍 떠졌다. 잠든 지 한 시간 만이었다. 나는 용수철 튕기듯 뛰어나가 옷을 갈아입었다. 졸음을 날려버리는 힘찬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더불어 스피커 속 선장의 걸쭉한 욕지거리도 들려왔다. ‘야이 씨X년들아! 빨리 빨리 튀어 나와라!’

저녁에 해야 하는 일은 새벽에 뿌려 놓은 그물을 다시 걷고 물고기를 주워 담는 것이었다. 내일 새벽 다시 그물을 뿌리는데 지장이 없도록 그물을 정리하는 일까지 마쳐야 했다. 글로 쓰기엔 무척 쉬운 작업이지만… 실제는 달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첫날이라 그나마 가장 쉬운 일을 시켰던 것 같기도 하지만, 그땐 도저히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한 7번째 토했나. 더 나올 것도 없어 정체를 알 수 없는 노란 액체와 검은 액체만 나올 때까지 계속 토해야만 했다. 그나마 횟수가 잦아짐에 따라 토할 때의 반동(?)이 줄어들어, 토하자마자 일하던 자리로 다시 뛰어 갈 수 있었다.

우리는 그물이 건져 올려지면 그물추를 정렬하고, 그물 중간에 걸린 물고기를 “따야” 했다. 1월 초의 바다는 내가 생각 한 것보다 훨씬 더 추웠다.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고 귀는 잘려나간 것처럼 감각이 없었다. 손에는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해 얇은 고무장갑을 끼고 그 위에 거친 목장갑을 하나 더 끼고 있었는데, 젖은 목장갑이 얼어붙자 손가락이 잘 움직이질 않았다. 감각이 없는 건 당연했다. 덕분에 몇 번 그물추를 바닥에 떨어트렸고, 떨어트리자마자 뒤에서 욕이 들렸다.

‘씨X 막내 정신 안 차려!?’

‘네??’

‘정신 안 차리냐고 이 새끼야! 귓구멍 열어!’

‘죄송합니다!’

그러나 욕조차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나에게 소리치는 것은 인지 할 수 있었지만,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내가 알아듣지 못 하는 것은 내 사정이었다. 저 사람들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고, 상관하지도 않았다.

하루는 길고 길었다. 끊임없는 파도에 제대로 서있기조차 힘들었다. 뱃멀미도 여전했다. 맹세컨대, 뱃멀미만 없애준다면 악마한테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게 아니면 아예 바다에 빠져버리고 싶었다. 내장이 뒤틀리고 손발이 얼어붙는 와중에도 바다는 지독하게 멋졌다. 바다에 빠지면 지금 느끼는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안식을 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걸까, 그 순간 조폭 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차라리 죽고 싶어? 빠지고 싶지?’

‘네?’

‘바다에 빠지고 싶냐고!’

‘아. 아닙니다!’

‘ㅋㅋㅋㅋ벌써 그러면 어쩌려고 그러냐ㅋㅋㅋㅋ’

이어지는 조폭형의 웃음 소리.

나는 정신을 차릴 수 밖에 없었다.

죽을 수는 없잖아

죽을 수는 없잖아

셋째 날

그렇게 셋째 날이 되었고, 나는 새벽에 일어나 정신 없이 일을 했다. 그리고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났다. 뱃멀미가 사라진 것이다. 밥도 어느 정도 먹을 수 있었고,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자 의식도 점점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뱃멀미만 사라져도 이렇게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다니! 나는 전에 없이 신나게 밥을 먹고 열심히 일을 했다.

그러나 멀미가 사라졌다고 일이 마냥 쉬워진 것은 아니었다. 문득 주방장 형이 뒤에서 나를 툭툭 쳤다. 특유의 술 취한 것 같은 말투로 말했다. ‘막내, 고기 따봐!’ 그 말에 나는 낑낑거리며 그물에서 고기를 따 보였다. 8초 정도 걸렸나. 그러자 형이 내 손을 탁 쳤다. ‘느려! 거북이야! 막내 병X새끼 느려!’ 다른 베트남들과 형이 함께 낄낄거렸다. 다들 한국어를 배울 때 욕부터 배우기라도 한 걸까…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형이 내 앞에서 고기를 따 보였다. 걸린 시간은 겨우 1, 2초! 감탄스러운 속도였다. 놀란 내 표정에 신이 난 건지 주방장 형이 잇따라 고기 몇 마리를 땄다.

물고기는 10m정도 되는 해저에서 갑작스럽게 해수면으로 잡혀 올라온다. 이때 급격한 압력 변화가 일어나고, 부레를 조절하지 못한 고기의 입 밖으로는 내장과 부레가 튀어나온다. 그물에는 튀어나온 부레와 아가미가 어지럽게 뒤얽힌다. 지금도 그랬다. 그물에 얽힌 물고기는 도저히 쉽게 딸 수 있는 꼴이 아니었다. 나는 주방장 형에게 그처럼 빠르게 고기를 따는 방법을 물었다.

‘이거? 쉬워.’

형은 그 말과 함께 살아서 펄떡이는 물고기 머리를 붙잡았다. 그대로 360도 돌려버렸다. 부레가 터지며 ‘삐끅…! 끼이익….!’하는 외마디 소리와 함께 물고기의 머리와 몸이 분리 되었다. 머리가 끊어진 물고기가 경련을 일으켰다. 피는 튀지 않았다. 그러나 충격은 충분했다. 나는 넋이 나가 입을 벌리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이런 경우는 어쩔 수 없으니까 그냥 빨리 뜯어내고, 다른 물고기 작업해.’

서너 시간 후, 나는 형과 똑같은 모습으로 물고기를 “따고” 있었다. 익숙해진다는 건 무서운 거였다. 목이 완전히 뜯기기 직전 단말마처럼 물고기가 부르르 떠는 그 느낌은 여전히 적응하기 어려웠지만, 처음보다는 훨씬 쉬웠다. 나는 천천히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일주일 뒤

그렇게 일곱째 날이 되었다. 생활에도 꽤 익숙해졌고, 바다에 뛰어들고 싶은 충동도 점차 사그라졌다. 그런데 몸이 편해지니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자꾸 쓸데없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대체 이 일이 내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그 의문을 떨칠 수 없었다.

주위엔 어둠 뿐이었고, 바다엔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는 도구가 없었다. 감각이 없는 손. 주위를 메운 파도와 뱃고동 소리. 그 순간 내게 뚜렷한 목표 같은 건 없었고, 그걸 찾아볼 기운도 없었다. 대체 내가 여기 왜 온 걸까. 이딴 짓을 해서 정말 “성장”할 수 있는 걸까. 뱃일과 수능, 한의대가 대체 무슨 관련이 있다고. 발밑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말로는 다 표현 할 수 없는 시린 후회. 허망함. 그런 것들이 가슴을 깊숙이 찔렀다.

대체 내가 여기 왜 온 걸까

대체 내가 여기 왜 온 걸까

없어도 되는 놈

배에 탄 지 일주일 정도 지나자 나는 정식으로 할 일을 맡게 되었다. 지금까지 다른 사람 허드렛일만 하던 것과는 달랐다. 앞서 얘기했듯 배에서는 새벽에 그물을 뿌린다. 시간이 지나면 기계로 그물을 끌어 올린다. 이때 그물은 줄이 서로 꼬여 마구 올라온다. 내가 맡은 일은 거기에 있었다. 꼬인 줄의 한 쪽을 조폭형이 잡고, 반대편을 내가 잡았다. 서로 힘껏 당겨 꼬인 그물을 풀어 펼쳤다. 그럼 다른 사람들이 그물에 걸린 고기를 따서 정리했다. 나는 하루 종일 그물을 세게 당기기만 하면 됐다. 오전 10시면 언제나처럼 경보 벨로 눈을 떠, 선장의 욕설로 새 하루를 맞았다. 선장은 항상 사람을 이름 아닌 ‘씨X년’. ‘개X끼’라 불렀다. 그는 우두머리라는 지위를 빌어 어떤 폭언이든 서슴지 않았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파마 머리를 한 게 꼭 드래곤볼의 ‘미스터 사탄’을 닮았지만 결코 사탄처럼 귀엽지는 않았다. 뒤통수를 후려 갈기고 싶은 걸 몇 번이나 참아야 했다. 가끔은 선원에게 찔려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다 해도 놀랍지 않을 것 같았다. 물론 내게 욕설을 퍼부은 것은 선장 한 사람만이 아니었다.

참고로 나는 그때까지 한 번도 힘이 약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무술을 좋아했고, 선천적으로 뼈가 굵으며 체격이 좋은 편이었다. 어느 그룹에서든 약한 축에 들지를 않았다. 그러나 배에서는 달랐다.

‘야! 막내 이 새끼야! 쎄게 당기라고 씨X놈아!’

그물을 당기다 힘이 딸려 뒤로 넘어간 내게, 날아오는 베트남 아저씨의 욕설.

처음엔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내 알량한 자존심은 현실 앞에서 그저 무력했다. 아직까지 나는 배에서 온전히 제 몫을 못하는 밥벌레일 뿐이었다. 낮에는 그물을 당길 수 있었지만, 하늘이 어두워 질 때 즈음이면 팔과 손가락 근육에 힘이 빠졌다. 내 의지대로 힘을 쓸 수 없었다. 그러다 보면 번번이 엉덩이를 걷어 차였다.  내 일에서 손을 떼고 다른 이들의 보조로 빠질 수 밖에 없었다.

‘막내 너 자꾸 이러면 안돼. 너 지금 하는 일, 없어도 되는 일. 너 없어도 상관 없어.’

주방장 형까지 내게 그렇게 말했다. 나도 알았다. 입에서 욕지기가 치밀었다. 좀 전 내게 욕을 퍼부었던 베트남 아저씨가 내 대신 그물을 당기고, 고기를 따고 있었다.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아저씨가 못마땅하게 혀를 찼다.

일이 끝나고 밤 11시가 되어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도 나에 대한 비난은 끊이지 않았다. 돼지도 아닌데 무슨 밥을 이렇게 많이 먹냐는 둥, 먹는 만큼 힘 좀 쓰라는 둥. 심지어는 월급 얘기도 나왔다. 베트남인들은 한 달 80만원을 받고 이 일을 하지만, 나는 117만원을 받는다는 얘기였다. 씁쓸하게 낄낄대는 소리들과 함께,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베트남어 대화가 이어졌다. 알아듣진 못하도 알 수 있었다. 내가 한 사람 몫을 다 했다면 들을 리 없는 말들일 게 분명했다. 울화가 치밀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냥 웃을 수 밖에. 게다가 우리가 먹는 건 육지에선 맛 볼 수 없는 최고의 활어회였으니까.

활어회는 맛있었다

활어회는 맛있었다

그리고 다가온 것은…

고된 노동에 적응하기까지, 첫 항해를 마치고 14일 만에 숙소로 돌아간 나는 캔조차 마음대로 따지 못했다. 인대나 근육이 늘어난 건지 손가락에 캔을 딸 만한 힘조차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뱃멀미와 마찬가지였다. 두 번째, 세 번째 항해를 겪으며 나는 서서히 제 몫의 일을 다해갔다. 다만 몸과 달리 마음의 고통은 나아지질 않았다.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걸까. 그물은 늘 너무 길었다. 그물 1마일마다 부표로 표시를 해두는데, 우리 배 그물은 28마일이었다. 저 멀리 떠 있는 부표가 원망스러웠다. 1마일은 1.609km, 28마일은 48.06km. 내가 한 번에 당기는 줄 길이를 넉넉잡아 1m라 치면 당겨야 하는 횟수는 약 4만 5천 번이었다. 작업을 마치려면 머리를 비워야만 했다. 당기는 행위 말고 다른 생각은 지워야 일을 마칠 수 있었다.

그 날도 그랬다. 나는 평소처럼 머리를 비우고 줄을 당기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머리를 비우는 것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다가왔다. 머리 위로 빗방울이 떨어진 것이다.

하늘이 어두워져 있었다. 저번에 티비에서 본 풍랑주의보가 떠올랐다. 거친 파도에 배가 위아래로 크게 요동쳤다. 그 때였다. 첨벙, 하는 소리가 들리고…

‘어?!’

뭐였지. 방금 나 공중에 뜨지 않았나?

‘야! 꽉 잡아!’

‘???’

퍼어엉!!!!

엄청난 물보라였다. 의지할 거라곤 손에 쥔 그물 줄 뿐이었다. 그물 줄을 잡지 않으면 배 밖으로 튕겨나갈 것 같았다. 배는 풍랑 속으로 가고 있었다.

작업 속도를 더하라는 기관장님 목소리와 함께 작업 돌아가는 속도가 2배속이 됐다. 빨라진 속도에 근육이 비명을 질렀지만, 이상하게 웃음 비슷한 게 나왔다. 어느새 내게도 뱃일 경험치가 붙은 걸까. 바다는 한층 색이 짙었다. 옷은 흠뻑 젖은 채였고, 얼굴엔 생선 비늘과 뻘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자꾸만 내리는 빗방울과 비늘 때문에 안경이 가려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사라져갔지만, 일의 전체 페이스를 늦추는 것은 죽어도 싫었다. 파도가 칠 때 마다 몇 번 넘어지기도, 붕붕 뜨기도 했다. 다행히 그물 줄을 놓치지 않아 바다에 빠지진 않았다. 결국 우리는 일을 평소처럼 마쳤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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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두세 시 즈음이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파도가 치기 시작했다. 번개. 빗줄기. 파도. 눈조차 뜨기 힘들었다. 움직이면 굴러 떨어질 만큼 배가 기울었다. 가라앉지 않는게 신기할 정도였다. 모두가 간신히 움직였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모두가 비틀거리며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나를 빼고는.

‘막내! 얼른 들어가! 위험해!’

기관장님 목소리였다.  그 말에 나는 엉금엉금 뒤로 기어갔다. 그러다 아무래도 이럴 때 혼자 빠질 순 없겠다 싶어 간판으로 나가려는데, 문득 갈매기가 보였다. 동시에 공중으로 몸이 떠올랐다. 한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주위 소리가 일순 사라졌다. 풍랑을 뚫고 날아가는 갈매기. 배에 부딪힌 파도가 물방울이 되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반짝반짝 빛났다. 아름다웠다.

발이 갑판에 닿는 순간, 시간이 돌아왔다. 갑판 옆으로는 수면 대신 거대하게 솟아오른 파도가 보였다. 엉뚱한 생각이 스쳤다.

아, 이게 진짜 바다구나.

이런 장면을 볼 수 있다면 평생 배를 타도 좋지 않을까. 하지만 배에서 일하는 것은 소름끼치게 싫었다. 나는 티끌 만한 배를 타고 거대한 바다로 휩쓸려가는 보잘 것 없는 존재였다. 배와 바다에 대한 애증이 느껴졌다.

예상 보다 유능했던 선장”님” 덕분에 항해는 무사히 끝났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우리가 부딪쳤던 풍랑은 어디 있었냐는 듯 항구는 조용했고, 우리는 지친 발을 옮겨 배에서 내렸다. 항구에도 갈매기가 있었다. 그 중 한 마리가 우리 배에 앉았다. 모든 게 현실이라 믿기질 않았다. 나는 그저 웃을 수 밖에 없었다.

 

편집 및 교정/ 비글

글/ 켄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