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인터뷰를 간 곳은 시티 중앙에 있는 국수 가게였다. 키친핸드를 구한다고 해서 온라인으로 지원서를 넣었던 곳이었다. 일주일쯤 뒤 연락이 왔다. 인터뷰를 보러올 수 있냐고. 집과의 거리도 가까웠고, 새로 지은 건물과 깔끔한 내관이 마음에 들었다. 면접을 본 건 셰프였다. 동양인. 생김새를 보고 일본인인가? 했지만 인토네이션은 영 일본스럽지 않았다.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웃는 낯으로 묻는 말에만 대답했다. 일을 하게 되면 월-토, 아침 8시 반부터 저녁 6시까지 하게 될 거다. 일하는 요일은 매주 달라지지만 주 4일 이상 일하게 될 거고, 시급은 파트타이머 최저 시급으로 받는다. 손님이 많은 편이고 face-paced 한 환경이라 힘들 수도 있다. 괜찮냐. 뭐 그런 것들이었다.

다른 데서는 영어는 얼마나 잘하는지, 비자는 얼마나 남았는지 따위를 물었는데 여긴 그런 것도 없었다. 왠지 마음에 들었다. 모든 질문에 긍정의 대답을 하고 나니 딱 5분이 지나있었다. 셰프는 보스와 상의한 뒤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뭐지. 인터뷰 통과 못한 건가! 순간 동공지진이 일어났지만 okay, see ya! 발랄하게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왔다. 여기 되면 좋을 것 같은데. 시프트도 많고 환경도 좋고.

하지만 사흘이 넘도록 연락은 오지 않았다. 지난번에 커피 메이킹 트라이얼을 했던 카페에서 온 전화가 전부였다. 매니저는 너 트라이얼 통과했어! 근데 혹시 자가용은 있니? 하고 물었다. 엥? 아니! 근데 나 걸어 다닐 수 있어. 가게 우리집이랑 안 멀던데? 답했다. 그랬더니 아쉽지만 그러면 안 되겠다고, 일이 늦게 끝나기 때문에 자가용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 매니저 양반. 직원들의 안전을 생각해주는 건 고맙지만 정말 걸어다닐 수 있단 말이오…. 이렇게 카페 잡마저 실패한 나는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지난번 인터뷰를 본 가게의 셰프에게 먼저 문자를 보내기로 했다. 나 지난번에 인터뷰 봤던 셀레나야. 그 때 연락을 준다고 했는데 아직 연락이 없길래 문자했어! 내가 떨어졌으면 떨어졌다, 붙으면 붙었다고 이야기 해줄 수 있을까? 답장 기다릴게! 그러자 거짓말처럼 답장이 왔다. 다른 사람들 먼저 트라이얼 해보는 중이었다고. 혹시 다음 주 월요일에 일하러 올 수 있느냐고.

내가 목마르니 우물 파야지..

오늘은 내가 요리(보조)사~

그리고 단언컨대 그 일은 내가 해봤던 그 어떤 일보다 힘들었다. 일단 주방일은 처음이었고, 열 시간 가까이 되는 시간을 서있는 것 역시 고역이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잡다한 모든 일’이었다. 11시가 오픈이기 때문에 그 전까지 재료 준비를 다 해두어야 했다. 오전에 준비해두어야 할 재료는 초이섬1)번역하면 청경채…이긴 한데 훨씬 큰 청경채, 치킨, 크리스피였다.

요 초록색이 초이섬

요 초록색이 초이섬, 노란 튀김이 크리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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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치킨 내가 다 튀긴다…

전날 미리 잘라둔 초이섬을 데치고 식히는 일, 반죽에 마리네이드2)본격적인 조리 전에 고기를 손질해 육질을 부드럽게 하고 잡내를 없애주는 것 된 치킨을 튀기는 일, 국수에 가니쉬로 올라가는 크리스피3)이것도 번역하면 만두피…이긴 한데 dumpling wrapper를 하나하나 튀기는 일이었다. 나는 평소에 요리를 즐겨하는 편이었다. 웬만한 요리는 레시피를 보고 곧잘 따라했고, 자취를 하면서도 나름 건강을 챙긴답시고 이것저것 잘 해먹었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무서워하는 게 기름이었다. 친구와 마가렛리버에서 같이 살 적에 맥주 안주로 감자튀김을 샀다. 친구는 요리를 못했고, 나는 기름을 두려워했다. 도저히 기름에 감자튀김을 넣을 수가 없어서 후라이팬에 자작할 정도로만 기름을 두르고서도 둘이 난리란 난리는 다 쳤다. 그런 나에게 치킨과 만두피를 튀기라니. 청천벽력 같았지만, 할 수 있겠느냐는 셰프의 물음에 Sure! no problem! 웃는 낯으로 대답했다. 그 덕에 온 손과 팔뚝에 기름이 튀었고 붉게 화상이 번졌다. 그 후에도 계속 물을 써야했기에 물에 손이 닿을 때마다 따끔따끔했지만, 별 수 없었다. 고작 이런 걸로 약한 척하기는 싫었다.

다음 임무는 피크타임이 지나기 전까지 요리 보조를 하는 것이었다. 그릇에 소스를 부어 미리 준비하고, 생면이 익혀져 나오면 섞어 토핑을 올려 셰프에게 넘기면 됐다. 지금이야 면 익히고, 고기도 자르고, 처음부터 홀에 음식을 내기 직전까지 나 혼자 다 한다지만 그 날은 첫날이었고, 메뉴 외우기도 바빴다. 그렇게 허둥지둥 피크타임이 지나고 나면 설거지를 해야 했다. 그리고 그건 온전히 내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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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하던 시절에도 설거지 귀찮아서 냄비채로 먹고 그랬는데 설거지라뇨…

주방일은 속도가 생명이기에 셰프가 직접 어떻게 해야 빨리 하는지 몸소 보여주었다. 어째저째 따라하며 나름대로 열심히 그릇과 식기류를 씻어냈다. 그리고 옆을 보면 또 한가득 쌓여있는 설거지들에 한숨만 나왔다. 심지어 첫날에는 고무장갑을 낄 생각도 못해서, 맨손으로 설거지를 해야만 했다. 3시가 넘을 때까지 밀려드는 설거지를 했고, 3시 반쯤 되어서야 겨우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이 가게의 좋은 점은 식사를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주방일이 그렇듯, 가게에 있는 재료들로 직접 만들어 먹어도 좋다고 했다. 사람들이 제일 많이 주문하던 국수를 먹어보기로 했는데, 미친. 존맛. 국수 한 젓가락을 먹고선, 왜 이렇게 손님이 몰리는지 이해가 가더이다. 그렇게 짧은 브레이크 타임을 갖고 난 뒤에는 설거지와 재료손질이 남아있다. 프론트에 아무도 없으면 내가 주문을 받기도 하고.

지금은 설거지를 워낙 빠르게 끝내서 내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들까지 온통 도맡아 하고 있지만, 첫 근무 날에는 내게 주어진 일로도 벅차서 어찌할 줄을 몰랐다. 설거지거리는 자꾸 밀려오지, 셰프는 파 다듬으라고 하지, 주방 필터도 갈아야하지, 곧 마감이면 마감 설거지거리 또 생기지, 바닥 청소도 해야 하지!!!!! 내가 맡은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일거리를 가져다주는 셰프와 수솊 및 주방식구들이 너무너무 미웠다. 다들 일 안 힘드냐고 묻는데 죽빵 한 대 날릴 뻔 했다.

너무 힘들어요… 너무 힘들고… 어떻게 근무를 마쳤는지 기억도 안 난다. 이래저래 치이다 보니까 퇴근 시간이 되어있더라. 그게 주방일의 몇 안 되는 장점인 듯하다.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가는 거. 인수인계를 맡았던 전 근무자와 셰프는 오늘 일 정말 잘했다며 엄지를 치켜보였는데, 마냥 웃을 수가 없었다.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는데 퉁퉁 부은 다리밖에 안 보였다. 온종일 서 있느라 집에 오자마자 침대로 직행했다. 다리가 저릿저릿 했고, 발을 바닥에 내딛는 순간 발바닥이 아파왔다. 진짜 딱 울고 싶었다. 예전에 뷔페에서 알바할 때 보았던 주방 아주머니들이 그렇게 대단해 보일 수가 없었다. 하. 지금도 쓰다보니까 그 때 생각나서 눈물난다ㅠㅠㅠㅠ

편집 및 교정/커밋

글/가오나시

   [ + ]

1. 번역하면 청경채…이긴 한데 훨씬 큰 청경채
2. 본격적인 조리 전에 고기를 손질해 육질을 부드럽게 하고 잡내를 없애주는 것
3. 이것도 번역하면 만두피…이긴 한데 dumpling wrapp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