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장 첫 경험(?)

‘어장관리’라는 단어에 처음 저격 당했던 건, 스무 살에서 막 스물 한 살로 넘어왔을 때 쯤이었다.

2011년 초. 재수생활 1년을 마무리하고 이제 막 대입&연애 성공의 기쁨을 한껏 누리고 있을 무렵, ‘친구’라 생각했던 남자사람 한 명으로부터 문자가 한 통 날라왔다.

문자를 열자마자 심장 '쿵' 무슨 소리요, 내가 어장이라니!

문자를 열자마자 심장 ‘쿵’. 무슨 소리요, 내가 어장이라니!

그동안 꽤 친하게 지내왔었고 나름 최근까지도 입시 문제로 연락을 주고받았던 친구였는데, 갑자기 이런 통보라니. 앞뒤 맥락 없는 뜬금없는 문자와 + 난생 처음 듣는 ‘어장관리’라는 단어에 난 기분이 홱 상해버렸다. 곰곰~히 생각하며 얘가 왜 이렇게 보내왔을까…를 생각하기는 개뿔. 냅다 <답장> 버튼을 누르고는, ‘니가 뭐라 판단하든 상관없다. 너가 기분 나빴다면 미안하다’며 미안한 감정은 전-혀 묻어나지 않는 문자를 전송해버리고 말았다.

지가 김칫국 마셔놓고 어장이라니…아오

사실 그 친구와 아무 일도 없었던 것 아니다. 지금 내 기준에서는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썸…같은 이상한 관계였던 것 같긴 하다. 그치만 스물한 살 당시의 내 딴에는 그저 한 명의 친구일 뿐이었다. 가끔 얘기도 나누고 웃고 떠들고 했던 그냥 적당히 친했던 ‘남자사람친구’. 평소 쌀쌀맞은 편도 아니었고 순딩이 같았던 그 친구의 이런 분노 가득한 문자라니.

여하튼 그 때는 몰랐다. 그 친구의 느닷없는 분노가 내 잘못이었든 걔 잘못이었든 ‘어장관리’라는 단어는 날 그렇게 한 번 스치고 지나가는 단어인 줄만 알았고, 더 이상 들을 일이 없을 줄만 알았다.

 

BUT, 그러나, HOWEVER, 하지만

그렇습니다. 그것이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대학 입학 이후, ‘어장관리’ 꼬리표는 날 끊임없이 쫓아다녔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내가 그 꼬리표를 마구 붙이고 다녔더랬다. 내 딴에는 억울했다. 난 초/중/고/재수학원 때와 다를 바 없이 행동했었으니까.

친구든 동생이든 오빠든, 밥 먹자면 밥 먹고 연락 오면 답장했던 게 전부였을 뿐이었다. 밥 먹자 술 먹자 했을 때 쫄래쫄래 냅다 따라간 것도 아니고, 빚지는 거 싫어하는 성격이라 선배와 술을 마셔도 더치페이로 계산했었고, 까똑을 끊임없이 해대니까 어쩔 수 없이 답을 하곤 했었다. (적당히 밤에 굿나잇 까똑으로 마무리하면 다음 날 아침에 ‘굿모닝ㅎㅎ’ 까똑을 해대니!! 아님 꼭 ‘지나가다가 너 봤어ㅎㅎ’한다던가 과제 같은 걸 물어보드라!!)

그치만 내 딴에는 상식선에서 행동했던 이런 행동들, 어떻게든 자기 방식대로 해석되기 마련이었다. 방법도 비슷했다. 아닌 척~하면서 홀짝홀짝 김칫국을 마셔대던 나의 수많은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꼭 같은 수법(?)으로 다가왔다가 홱 돌아서버리곤 했다.

 

  • 1단계 : 다들 ‘그냥 친한 친구, 선배’로 다가왔다가

  • 2단계 : 어느 순간 자기가 남자친구라도 되는 양 행동을 하기 시작하고(ex. 술 마시는 나를 걱정한다거나, 집에 늦게 들어오면 화를 낸다거나, 같이 길을 걷다가 차가 오면 아주 그냥 온 힘을 다해서+팔뚝을 확 부여잡아 끌어당긴다거나)

  • 3단계 : 서서히 뭔가 불편한 느낌이 들어 내 쪽에서 연락을 뜸하게 하기 시작하면

  • 4단계 : 그 쪽에서 먼저 연락을 뚝! 끊어버렸다.

  • (5-1단계 : 나중에 건너건너 들어보면 상대방은 내 어장관리식 태도에 기분이 나빴다 했단다.

  • or 5-2단계 : 몇 달 시간이 지난 뒤, 그 친구or선배를 다시 만나 회포를 풀다 보면 “그 때 솔직히 잘 되는 건 줄 알았었다”고 한다. 그 날 술자리로 쿨하게 푸는 듯하다가… 다시 2단계로 돌아간다. 무한반복싸이클.

 

스물 하나-그니까 신입생 때-까지만 해도 이런 상황이 반복되더라도 우연의 일치인 줄만 알았다. 다들 왜 저렇게 똑같이 오해하지, 하고 말았으니까. 그런데 한 두 번도 아니고 계속 이런 상황이 반복되니까 ‘아 이거 뭔가 좀 아닌 거 같은데’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더랬다. 처음에는 ‘난 나름 상식선이라 생각하는 정도로 대해준거고 혼자 김칫국 원샷했던 것일 뿐’이라 생각했었는데, 돌아오는 반응이 다들 비슷한 거 보니 ‘어라…나한테 뭐 문제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버렸던 거다.

나는 ‘니들’을 사랑하지 않아요. 그냥 친구/오빠라니까?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니까요

초등학생 시절, 다들 어려서 딱히 누구도 의식하지 않을 때부터 나는 또래 여자친구들에 비해 남자친구들이 많은 편이었다. 내 입장에서도 여자친구들보다 남자친구들이 더 편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함께 있을 때 훨씬 재밌어서 좋았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재수 때도 마찬가지였다. 항상 내 주위에 남자친구들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 때 쯤부터는 ‘남자와 친하게 지내는 일’이 조금씩 튀는 행동으로 비춰졌다는 것 정도? 매일 같이 붙어다니는 한 친구와 나를 두고는 “쟤네 사귀는 거 아니냐”는 소문이 정말 끝-까지 붙어다니기도 했고 (아직도 동창회에 나가면 “너네 ‘사겼던 거’ 아니냐”라고 묻는다.) 나와 친한 남자친구들을 흠모(!)하던 몇몇 여자친구들은 날 보고 수군대기도 했다.

그래도 여전히 난 그게 내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나와 그 애는 그냥 친군데 주변에서 괜히 오해해서는 소문내고 욕하고 했던 거니까. 난 어렸을 때부터 원래 이래왔고, 정말로 가슴에 손 얹고 그냥 ‘재밌고 편해서’ 남자친구들이랑 다니는 거였을 뿐. “괜히 자기들이 못 친해지니까 날 욕하는 거겠찌!!”라 생각하며 되려 주변을 욕했다. (본격_내가_세상을_따시킨다.)

내 멋대로 살거야...다 뿌쎠뻐릴꺼야!!!

내 멋대로 살거야…다 뿌쎠뻐릴꺼야!!!

그렇게 중·고등학교 6년과 재수 1년을 지내온 나였다. 늘 해오던 대로 남자사람친구들과 좋은 친구관계로 지내왔고 마찬가지로 ‘문자를 보낸 그 친구’에게도 똑같이 대했다. 그리고 그러던 와중, 2011년 초에 ‘그 문자’를 받아버린거다. 그러니 당시 내 딴에는 그저 당황스러웠을 수밖에. ‘야, 너 말고 훨 가깝게 지낸 친구들도 많거든? 너 혼자 오해한 거 가지고 어장관리니 뭐니 이런 말 하지마라’라는 생각이 그래서 들었던 거다.

이후로도 반복되는 상황들을 겪으면서는, “얘도 이렇네. 쟤도 이렇네. 와. 남자들 다 이런가”하며 그저 말도 안 되는 일반화만 이끌어낼 뿐, 제대로 날 돌아볼 생각 조차 하지 않았더랬다.

 

그럴싸한 설명을 듣기도 했다

그치만 모든 남자-여자 간의 친구관계 자체가 문제or문제의 소지가 있는 건 결코 아니다. 억울하긴 하면서도 어떤 부분에서인가 내가 실수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 건 분명해 보였다. 남자사람친구/썸남의 경계를 왔다리갔다리하다가 결국에는 상대방이 ‘어장관리’ 받는 듯 한 불쾌감만 느끼게 되는 상황. 지금 이 상황이 계속 반복되는 건데, 대체 어떤 지점인지 모르겠는 부분에서 난 자꾸 미끄러지고 있는 거다. 몇 번을 같은 실수를 하면서도 난 왜 그걸 모르고 있을까.

사실 이런 나에게 직접적으로 “너 이렇게 저렇게 하지마. 이거 남자들이 요렇게 조롷게 해석한다.”고 말해준 사람은 없었다. 상담을 하는 친구들은 보통 여자친구들인데, 이 친구들은 내가 남자랑 일대일로 있을 때 어떤지 잘 모르니까 말이다(…)

바로 올해 초, 그런 내게 제대로 돌직구를 날려준 한 오빠가 있었다. 작년 가을 쯤에 급속도로 가까워진 오빠인데, 약간 오빠라기보다는 언니 같아서 연애상담에 제격인 그런 오빠였다.

그 날도 평소와 같이 둘이 술 한 잔 걸치고는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연락을 주고받거나 몇 번 만나기만 하면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어떻게 해야될 지 모르겠다는 나의 투정을 듣고, 그 오빠는 가만-히 생각하다 곧 이런 얘기를 해주었다.

“너는 남자랑 계속 연락을 주고 받는다거나 단 둘이 밥을 먹고 뭐 그런 건 괜찮은데…”

“응응”

“상대방에 대해 되게 관심이 있어하는 듯한 느낌이 있어. 계속 질문을 던져준다던지 잘 웃어준다던지 동조를 잘 해준다던지…근데 남자들은 그런 거에 오해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어”

오, 좀 색다른 답변이다. ‘너가 알아서 잘 선을 그어’라던지 ‘그 남자가 김칫국 마셨네’와 같은 내 버릇을 고치는 데 크게 도움은 안 됐던 지금까지의 조언과는 다른, 뭔가 섬세한 조언이었다. 똑같이 밥을 먹고 똑같이 연락을 하더라도 내가 보이는 어떤 ‘태도’나 ‘느낌’이 문제라는 건데, 상대방 입장에서는 나의 그 태도가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 것’처럼 해석이 될 수 있다는 거였다.

그...그럴싸하다...!

그…그럴싸하다…!

켕기는 게 없잖아 있수…

정말로 정말로 가슴에 손을 얹고 얘기하라면, 그래. 솔직히 상대방이 약간 나한테 관심 있는 것 같다는 느낌적인 그 느낌, 나도 느꼈다. 그리고 ‘진짜 남사친’하고 ‘남사친? 썸남?’하고 느낌에서 차이가 있다는 건 나도 잘 안다. 그 사람들한테 내가 보이는 태도가 각각 좀 달랐던 것도 맞고. 그니까 어떻게 보면 김칫국은 상대방 혼자 마신 게 아니라 ‘같이’ 마셨던 거다. (다만 상대방이 좀 더 많이 마셨던 것 뿐이지.) 그래도 그 사람이 오해할 만 한 행동/태도를 보였던 게 맞기는 맞고, 그 점에서 내가 책임이 없는 건 결코 아니었다. ‘난 죄 없어! 완전 억울해!’라고 외치기에는 사실 좀 켕기는 것들이 있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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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모르게 씁쓸X시무룩…

생각해보면 앞에서 얘기한 변명-내 어린 시절-도 그 상대방과 나의 관계에 있어서는 그닥 중요한 문제도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남자친구들과 친하게 지내왔다, 지금도 쉽게 남자와 친해질 수 있다’, 뭐 이런 건 사실 상대방이 알 수도 없는 문제고 그리 중요하지도 않다. 지금 만난 이 사람과 나의 관계는 여기부터 시작이고, 그 사람이 파악하는 나는 그 시점부터가 시작이다. 그렇다고 해서 ‘잘 보이기 위해’ 솔직한 감정을 내보이지 말라거나 억지스러운 행동을 하라는 건 아니다. 다만,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행동을 해야 되는 건 맞다.  상대방이 내 행동을 보고 느낄 감정에 대한 책임 말이다.

그리고 난, 정확히 그 반대로 행동했다. 나는 나대로 상대방이 오해할 만 한 태도는 다- 보여놓고, 상대방이 진짜로 오해할 때 쯤 돼서는 ‘넌 친구야’라며 선을 그어댔으니. 그나마 (속으로) 대는 변명도 ‘내가 이런 인생을 살아왔으니 사람들이 날 이해해야 해’라는 태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도 아직 억울한 건 있다구!!!

물론 그렇다고 ‘엉엉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는 어장관리女가 맞아요. 제게 돌을 던지세요.’라는 건 절!대! 아니다. 그들이 왜 오해했는지도 알겠고 그 책임이 나한테 있다는 것도 알겠다만, 그게 왜 나를 욕할 문제로 넘어가는 건진 아직까지도 이해를 못하겠다. 사귈듯 안 사귈듯 미묘한 관계로 지낼 수도 있는거지 안 사귄 게 대체 무슨 죄냐고. 너랑 나랑은 남녀관계니까 너는 나에게 무조건 남자사람친구 or 남자친구여야 되냐, 하면 그건 아니다 싶었다.

게다가 솔직하지 못했던 건 본인들도 마찬가지다. 앞에서는 ‘너와 마찬가지로 나도 너를 그냥 친구/후배로 생각한단다^^’ 코스프레는 다 해놓고서는 뒤에서 꿍얼꿍얼댔던 거니까. 솔직하게 내 앞에서 자기 감정을 얘기를 했다거나, 아니면 내 감정은 어떤지-친구 그 이상은 아닌지-에 대해 물어봤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늘 본인 판단에 의해 모든 상황을 일방적으로 끝내버린 뒤에, 뒤에서 어장관리라며 손가락질하던 이들이었다.

그렇게 그들이 쉽게 갖다붙이는 ‘어장관리’라는 한 단어로 내가 입는 타격은 또 얼마나 컸는지. 지금까지 구구절절~이 얘기했던 나의 속사정들과 + 굳이 얘기하지 않았던 그 사람과 나 사이에 있던 구체적인 사연들이  ‘ㅇㅇㅇ의 어장관리’라는 되도 않는 말로 확 정리가 돼버렸으니 말이다. 그 사람 딴에는 사랑?을 잃었다 생각할런 지도 모르겠다만, 내 딴에서도 마찬가지로 사람도 잃고 욕도 먹었던 기분 나빴던 경험이다.

어익후 죄송합니다~ 제게 돌을 던지시지요~

내 최선의 사과입니다ㅠㅠ

다행히(?) 요즘엔 어장관리 이런 얘기 좀 안 듣고 살고있다. 그래도 혹시 미래에 있을지 모를 김칫국男을 위해 이 말을 전한다.

앞으론 저도 오해할 만한 태도를 최대한 줄이겠으나, 혼자 김칫국에 밥 말아먹다 불쾌할 상황이 생겼을 쯤에는 어장관리니 뭐니 하며 꿍얼대시니 말고, 눈앞에서 직접 “너 인간관계 그렇게 하지마”라고 해주시길 바란다. “어장관리 하지마라”는 말보다는 훨-씬 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