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길에 노을을 보셨나요?”

“…”

“여러분 가끔 하늘을 올려다 보세요. 그런 여유가 있어야 되지 않겠어요?”

지난 22일 오후 7시. 여의도 국회에 있는 의원회관에서는 대학생 의정자문단을 대상으로 하는 박원순 시장(이하 경칭 생략)의 강의가 열렸다. 청년소사이어티에서 주최하는 이 행사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정책 입안의 체험을 통해 예비 정책전문가를 양성 교육 프로그램이다. 총 6차례에 걸쳐 사회 인사들을 초빙해 강의를 진행한다. 그런데 강의가 원래는 21일에 열릴 예정이었으나 급하게 22일로 변경되면서 자문단의 공석이 생기게 되었다. 공석을 알리는 공지를 본 미스핏츠 취재팀은 ‘지방자치’와 ‘시민정치’에 대한 강의를 듣고자 참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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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강의의 주제는 ‘더 좋은 지방자치, 청년의 미래를 말하다’였다.

분침이 정각을 지나 10분에 가까워졌다. 새정치민주연합 김기식 의원(이하 경칭 생략)과 박원순은  50여 명의 대학생 자문단의 박수를 받으며 입장했다. 먼저 김기식의 기조연설이 있었다. 이어 박원순이 강단에 올랐다. 내심 사과를 기대했다. 하지만 이어진 말은 ‘노을 타령’이었다. 시장 직의 일정이 바쁘게 돌아가고, 5분 10분 정도 늦는 것 쯤이야 일상다반사라지만 박원순은 대권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사람이 아닌가. 어찌됐건 늦은 것은 사실이니 사과가 먼저였다. 물론 그동안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입 씻는 정치인들을 너무나 많이 봐왔기에 생기는 알레르기 반응인지도 모른다.

20분 일찍 갔다.

20분 일찍 갔다.

의원회관에서 기조연설 중인 김기식 의원

의원회관에서 기조연설 중인 김기식 의원

사실 박원순도 다를 바 없었다

박원순의 강의에 대한 총평부터 솔직하게 말하면, ‘배신감’ 세 글자다. 그 동안 여러 차례 그의 강의를 들으며 박원순은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날 강의는 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다는 자동차 거울과는 반대로 멀리 있다는 느낌이었다. 박원순은 생각했던 것 보다 먼 곳에 있었다. 연대를 강조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말하던 이전의 박원순이 아득해졌다.

최경환 경제부총리(이하 경칭 생략)는 “베이비부머(1946~65년생)들의 자녀인 에코세대(1979~92년생)로 태어난 탓에 청년의 일자리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1)“청년 실업이 심각한 건 세 가지 악재가 겹쳤기 때문이다. 첫째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자녀인 에코 세대가 한꺼번에 취업시장에 나왔다. 이전에 비해 10만 명 이상 공급이 늘었다. 둘째 2008~2009년 대학에 입학한 에코 세대는 대학진학률도 사상 최대였다.”, 최경환 “기업인 사면해야 … 청년 일자리 힘 쏟겠다”,  중앙일보, 2015.7.29.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이하 경칭 생략)는 “청년의 고생은 약”이라며 즐기라고 했다2)김무성 알바발언 “고생은 약, 열심히 해라”…”당신이나 실컷 해” 청춘들 비판에 진땀 해명, 한라일보, 2014.12.30. 박원순도 그들과 다를 바 없었다. 박원순은 대학생 자문단의 “최근 읽은 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위키리크스”라고 대답하며 자신의 저서인 ‘세상을 바꾸는 천개의 직업’을 소개했다. 아래는 박원순의 청년 일자리관이 엿보였던 말의 일부다.

그의 책은 도서관의 수많은 직업 관련 책 사이에 끼어 있었다.

그의 책은 도서관의 수많은 직업 관련 책 사이에 끼어 있었다.

미래를 꿈꿔야 청년이지! 얘들아 눈을 낮춰~ 이케아세대는 일자리도 DIY!

“창조적으로 도전하면 될 수 있는 우리나라가 개척할 새로운 일자리가 굉장히 많다는 거죠. 예를 들어서 가사도우미가 있죠. 우리는 (가사도우미를) 설거지, 옷 빨래를 가지런히 정리해놓고 가시는 분이(라고 생각하)죠? 그게 아니라, 여러분! 사실 시장실이 많이 어질러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걸 누구한테 맡길 수가 없어요. 그런데 저보다도 더 면밀하고,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비밀 보장이 되는 그런 회사가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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쩜쩜쩜 땀땀땀

이 말을 들었을 때 그럴 법한 청년 일자리라고 수긍이 가는가? 사실 박원순은 ‘창업’이라는 보기 좋은 명찰만 달았을 뿐이지 결국 가사도우미를 청년 일자리로 추천했다. 그는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사실 부잣집도 가사도우미를 함부로 못 쓰죠. 최고의 정비력을 갖추고 최고의 비밀 보장을 갖춘, 예컨대 수납 공간도 잘 설계해서 잘 정리해주고 필요하다면 아이들에게 특별한 그림도 그려주고, 그 아이의 성장에 맞는 도움 주는 회사를 만든다고 생각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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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해보자. 오랜 구직 활동에 지친 취준생 박아무개(28)씨는 문득 박원순 시장님의 추천이 떠올라 가사도우미 창업을 시작했다. 창업이 순탄치 않았지만 “젊을 적 고생이 헛된 게 아니다”는 시장님의 말씀대로 이를 악 물었다. 직접 가사도우미 일을 하기 위해 수요가 있을 곳을 찾아보니 시장님의 말마따나 대개 부잣집이나 서울시청 시장실 같은 곳이 박아무개 씨의 일자리였다. 곧장 집주인(박아무개씨가 일할 공간의 주인)과 계약을 체결했다. 집주인이 바쁜 일처리를 하는 동안 박아무개씨는 그들의 어지럽혀진 집을 깨끗이 청소하거나 집에 홀로 남은 아이를 달래기 위해 예쁜 호랑나비 그림도 그려줬다. 시장님의 조언을 가슴 깊이 새긴 박아무개씨는 취업을 해서 돈을 벌게 되었으니 참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어야 하는데 어쩐지 눈물이 난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위한 길이 왜 가사도우미인 것인지 이해가 안 됩니다만

박원순의 ‘부잣집의 수요를 맞춘 가사도우미’라는 직업이 더욱 모순인 것은 그가 강의를 시작하며 한 말 때문이다. 박원순은 “저는 (검사, 변호사를 박차고 나와) 자발적 가난의 길로 들어섰습니다”라며 “남들이 바라는 곳으로 가는 것은 심심하고 재미없잖아요. 자기만의 길, 이왕이면 당장은 외롭고 힘들어도 미래에서 빛날 수 있는 길을 택하세요”라고 했다. 이어 “이왕 내 자신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어렵고 힘들고 도움 받아야 될 사람들을 위해서 구태여 높은 위치보다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가보시는 게 (어떤가)”라는 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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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말이다. 어쩌면 많은 청년들이 찾는 일자리도 그런 직업이 다수일 것이다. 하지만 30분쯤 뒤에 박 시장이 추천한 가사도우미와는 괴리가 커 보인다. 어쩌면 상대적으로 부유층을 위해 일을 하는 가사도우미는 (체감하기에) 계급적으로 ‘가장 낮은 곳’이라는 점에서 박원순의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박원순은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청년 일자리로 “예를 들어 동네 이장이나 통반장을 진짜 열심히 해본다던지”라며 몇 가지 직업을 꼽았다. 그런데 동네 이장, 통장과 반장을 2030세대가 맡을 수 있는가도 의문이지만 직업으로도 가능한지 모르겠다. 진심으로 추천한 것이라면 청년 일자리를 너무나 막연하게 구상하고 있는 시장님인 것이고, 아무 생각 없이 말한 것이라고 해도 무지하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렵다.

“오늘 이 자리에 온 여러분은 인생이 바뀔 것입니다. 알면 행동하게 되어있습니다.”

7박원순이 바꾸려 했던 청년의 인생이란 무엇이었을까. 여전히 정규직으로 기업에 입사하여 임금 노동자가 되길 바라는 청년의 눈높이를 낮춰주겠다는 것이었을까. 청년이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직종을 알려줄 테니 블루오션을 개척해보라는 것인가.

사실 박원순의 인생을 비추어보면 그의 말을 이해할 만한 건덕지가 생긴다. 한국 전쟁을 겪은 어르신들이 “요즘 청년은 유약하다”며 나무라는 것과 같은 이치다. 괜찮은 직업을 내던지고 비영리 기업 아름다운 재단을 창립해 성공시킨 그에게는 일률적으로 ‘취업을 준비한다’는 학생들이 못마땅했을 테다.

박원순 시장도 결국엔 새로운 꼰대의 한 유형이다.

꼰대는 “나 때는 말야…”로 말문을 트며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젊은이의 인생에 훈수를 두려는 사람 정도로 정의된다. 기존에 숱하게 봐왔던 꼰대는 본인의 훈수가 젊은이에게 전혀 공감되지 않았음에도 “왜 이해하질 못하니”라며 고집을 부린다. 최경환, 김무성 뿐만 아니라 김난도 교수나 한비야 국제구호전문가와 같은 자기 확신에 가득 찬 사람들이다.

새로운 꼰대의 길을 개척한 박원순 역시 “나 때는 말야…”로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살짝 결이 다르다. 기아 선동렬 감독은 야구 천재다. 그에게는 스트라이크로 투구를 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기아 선수들이 자꾸만 볼카운트를 높이며 투구를 하는 모습이 선 감독에게는 답답하게 느껴질 것이다. 쉬운 스트라이크가 있는데 굳이 볼카운트를 내는 일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박원순 시장도 비슷하다.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다 감옥에 가는 바람에 입학한 지 수 개월 만에 서울대에서 제적당했고 단국대를 학사 졸업한 이후 검사와 변호사를 거쳐 황무지에서 비영리 재단을 일궈냈으며 지금은 서울시민 천 만명의 시장이 되었다. 이러한 삶의 경륜 덕에 젊은이들의 존경심이나 공감대는 이끌어내지만 오히려 자신의 경륜에 비추어 현재의 청년 실업난을 이해하지 못하는 새로운 유형의 꼰대가 되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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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서 참.. (한숨)

시장님, 시장님, 우리 시장님

박원순에게 갖는 기대가 컸던 이유는 그동안 그가 보여준 행보 때문이다. 박원순은 항상 청년 문제를 적극적으로 고민하는 것처럼 보이는 정치인이다.3)박원순 “청년 취업 적극적으로 개선하겠다“, 뉴시스, 2012.8.21. 무수한 고민은 수많은 청년 정책을 낳았다. 올해 4월에 발행된 서울시 청년 정책 보고서에 따르면 관련 정책만 4개 분야에 걸쳐 31개 사업이 진행, 구상 중이다4)2015년 청년정책 추진 계획, 서울시청 홈페이지. 시 정책 가운데 많은 예산이 쓰이는 사업은 창업 정책에 쏠려있다. 청년공간 무중력지대5)금천구 가양구에 위치. 청년들의 자유로운 활동.배움의 공간, 커뮤니티.복지지원 기능. 사무공간은 물론 간단한 식사 등을 할수 있는 공간, 청년허브6)은평구에 위치. 청년 위한 커뮤니티ㆍ네트워크 장 제공, 일자리정보ㆍ멘토링, 아이디어 공유, 청년창업을 지원하는 챌린지 1000프로젝트7)청년 예비 창업자에게 유휴 공간, 시설, 장비, 운영비 등을 지급, 청년 뉴딜일자리8)아동시설이나 평생학습관과 같은 공공서비스 분야에서 최대 11개월의 일자리를 참여자에게 제공함으로써 민간일자리로 연계되도록 돕는 프로그램. 등에 그동안 약 780억원이 넘는 예산을 배정했다.

박원순의 미래에 도전하는 청년에 대한 갈증이 여실히 보이는 대목이다. 문제는 미래를 담보로 청년을 등떠미는 그의 직업관이다. 새로운 일은 즐거울 것이기에 시장실 책장의 먼지를 털며 얼핏 본 문서의 비밀을 보장하며 오로지 도전하는 청년의 힘으로 버티는 삶이 오래토록 행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도우미라는 직업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부잣집이나 시장실을 청소해주는 것이 지금 일자리에 목말라 하는 청년들에게 노동으로서 어떠한 의미가 있는 직업인가. 단순 돈벌이 수단으로만 전락한 일자리가 박 시장이 말하는 대기업의 일률적인 직업들과 어떠한 가치의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이런 게 아닐까? (출처: 2015 서울시 청년정책 추진 계획)

정말 심각한 문제는 이런 게 아닐까? (출처: 2015 서울시 청년정책 추진 계획)

또한 시 정책과 박 시장과의 구상이 양갈래 길목에 들어선 것인지도 의문이다. 보고서에서도 짚었듯 ‘빈곤 청년층이 빈곤 노년층으로 전이되지 않도록 청년 정책에 집중해야’ 하며 ‘현실은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것이 문제’다. 일자리를 만들지 못한 책임을 청년의 도전이 필요하다며 청년에게 전가하면 안 된다. 어쩌면 오래 전 청년과 연대하려던 박 시장의 모습은 홀연히 사라진 것인지도9)박원순 “반값등록금은 사회적 투자” 정몽준 비판, 노컷뉴스, 2014.5.23.

문득 답답해졌다

박원순의 강의는 스스로 장담했던 ‘인생이 바뀌는 극적인 경험’보다는 오히려 고구마만 먹다 온 느낌에 가까웠다. 1시간 30분에 걸쳐 진행된 대학생 정책자문단과의 대화는 일자리 외에 메르스 사태 당시 공무원 시험을 진행했던 이유, 평소 소신과 행정에서의 선택이 다른 이유, 청년 정책, 다산콜센터 하청 문제, 택시 삼진아웃제, 뽀로로 택시와 타요 버스 등 서울시 정책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강의를 비추어 봤을 때 박원순의 행정은 무수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시민정치와 지방자치에 대한 토론과 논의가 오가기보다는 박원순의 업적과 행보 자랑 뿐이었다.

그래서 그의 생각이 우려된다. 대권 주자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박원순이다. 스스로의 업적을 늘어놓고 강의 내내 박수 갈채를 여러 번 받아내는 모습이 능숙한 정치인을 보는 듯했기에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진정 제대로 청년의 입장을 이해한 청년 정책을 구상하는 정치인을 찾는 일은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보다 고된 일인 것인가.

 강의가 끝난 후에 답답한 심정을 담아 찍은 국회

강의가 끝난 후에 답답한 심정을 담아 찍은 국회

 

편집 및 교정 / 커밋

글 / 아니아니

사진 / 보리

   [ + ]

1. “청년 실업이 심각한 건 세 가지 악재가 겹쳤기 때문이다. 첫째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자녀인 에코 세대가 한꺼번에 취업시장에 나왔다. 이전에 비해 10만 명 이상 공급이 늘었다. 둘째 2008~2009년 대학에 입학한 에코 세대는 대학진학률도 사상 최대였다.”, 최경환 “기업인 사면해야 … 청년 일자리 힘 쏟겠다”,  중앙일보, 2015.7.29
2. 김무성 알바발언 “고생은 약, 열심히 해라”…”당신이나 실컷 해” 청춘들 비판에 진땀 해명, 한라일보, 2014.12.30
3. 박원순 “청년 취업 적극적으로 개선하겠다“, 뉴시스, 2012.8.21
4. 2015년 청년정책 추진 계획, 서울시청 홈페이지
5. 금천구 가양구에 위치. 청년들의 자유로운 활동.배움의 공간, 커뮤니티.복지지원 기능. 사무공간은 물론 간단한 식사 등을 할수 있는 공간
6. 은평구에 위치. 청년 위한 커뮤니티ㆍ네트워크 장 제공, 일자리정보ㆍ멘토링, 아이디어 공유
7. 청년 예비 창업자에게 유휴 공간, 시설, 장비, 운영비 등을 지급
8. 아동시설이나 평생학습관과 같은 공공서비스 분야에서 최대 11개월의 일자리를 참여자에게 제공함으로써 민간일자리로 연계되도록 돕는 프로그램.
9. 박원순 “반값등록금은 사회적 투자” 정몽준 비판, 노컷뉴스, 2014.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