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30일 자 한국경제에 ‘내성적인 직장인 성공하려면’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다. 평소 스스로를 ‘내향적인 사람’이라 여기는 내게 흥미로운 기사 제목이었다. 기사의 결론은? “일단 행동부터 바꿔보고, 외향적인 사람이 되라. 물론 오래 걸릴 수도 있지만, 효과를 보려면 실천부터 해라.”였다.

예…? 나는 벙쪘다.

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막막하다

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막막하다

외향성이 내향성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외향성 지향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한 기사가 국내의 메이저 경제 신문에 올라왔다는 사실은 물론 당황스러웠다. 외향성을 더 지향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기 위해 여기저기서 억지로 끌어온 연구 결과를 입맛에 맞게 짜깁기한 부분도 설득력이 떨어졌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를 난감하게 한 것은 한국 경제가 외향성과 내향성에 대해 제대로 된 이해 없이 ‘내향적인 사람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는 기사를 냈다는 점이었다.

대개 신문 기사들이 ‘내향적’이라는 말과 ‘내성적’이라는 말을 혼용해서 사용하는데, 사실 ‘내성적’이라는 단어 역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에 부적절하다. ‘내성적’이라는 말에는 ‘성격’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데, 성격은 ‘바뀔 수 있음’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내성적인 사람’을 종종 ‘소심한 사람’으로 받아들이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소심함과 내향성을 모두 가진 사람이 있을 수는 있으나 내향적인 사람 중에도 대범한 사람은 있다. 심지어 외향적인 사람에게는 ‘외성적’이라는 말은 쓰지 않으니, ‘내성적’이라는 단어에서는 차별적인 시선도 읽어낼 수 있다.

‘내향’‘내적으로 향해 있다’는 말이다. 내향성을 가진 사람은 본능적으로 외부 세계보다는 내부 세계에 더 많이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외향성을 지닌 사람은 외부 세계로 마음이 더 많이 향한다. 내향성은 바뀔 수 있는 성격이라기보다는 개인의 삶의 방식과 상황을 대하는 데에서 확연히 드러나는 기질이다. 기질은 큰 트라우마나 인생의 큰 사건을 겪지 않고는 크게 바뀌지 않는 개인의 정서와 자극에 대한 반응성, 자기 통제 등의 개인차를 일컫는다. 한 사람의 자아를 형성하는 데 큰 기여를 하고 개인의 노력 여하와 상관없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누군가에게 ‘기질’을 바꾸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내향성은 성격이 아니니 바뀔 수 없다. 그리고 내향적인 사람은 자신의 내향성을 바꾸고 싶지 않다.

내향성은 성격이 아니니 바뀔 수 없다.
그리고 내향적인 사람은 자신의 내향성을 바꾸고 싶지 않다.

앞서 언급한 한국경제의 신문 기사에는 ‘타고난 성격이나 유전적인 특성과 무관하게 외향적으로 행동하려고 노력하면 행복감을 더 느낄 수 있다’는 문장이 있다. 우선 이 문장은 모순이다. 이 문장은 내향적인 사람이 행복해지는 방법이 아니라, 외향적이지만 소심한 사람이 행복해지는 방법이다.

내향적인 사람에게 자신의 기질에 반하는 외향적인 행동은 스트레스다.

참고로 신문 기사에서 쓰인 ‘외향적인 행동’이라는 말 역시 애매하다. 도대체 무엇이 외향적이라는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는 행동은 외부 세계로 향하니, 무조건 외향적일까? 기사에서는 ‘다른 사람 앞에서 발표하고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는 행위’ 등을 외향적인 행동의 예시로 언급했는데, 내향적인 사람 중에도 발표를 좋아하고 노래방에 가는 일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 내향적이라는 말은 ‘무조건’ 발표하거나 ‘앞에 누가 있든 상관없이’ 노래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는 말이지, 그 행위 자체를 꺼린다는 것은 아니다. 모든 외부적인 행동을 ‘외향적’이라고 규정하는 데에는 억지가 있다. 이 논리 속에서 외향적인 사람은 책도 읽으면 안 되고, 고양이도 기르면 안 된다. (하지만 이런 이미지들은 선입견에 불과하다.)

‘내향성’은 행동 양식과 상관관계는 있으나, 꼭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주변에 내향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사람들에게 서글서글하고 대인관계가 원만한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하지만 자신의 내부 세계에 집중하지 못하게 되면 우울해지기 쉽고, 매번 모임에 불러 다니느라 심적 고통을 호소하는 일들이 있었다.

‘내향성’은 한 사람의 기질이다.

개인의 행동양식이나 생활패턴과 조화를 맺지 못하는 데에는 현실적인 이유들이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랜덤하게 어울리는 파티 자리와 원래 알던 사람들과 소소하게 일상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두 가지 선택안 중에 하나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을 때, 후자를 택하면 내향적인 사람이다. 물론 다른 요인들로 인해 전자를 택하게 될 수도 있지만, 오로지 자신의 기질만 생각했을 때는 후자를 택하기 마련이다. 전자의 파티에 가고 싶지만 자기가 어색할까봐 후자를 어쩔 수 없이 택하는 사람은 내향적인 사람이 아니다. 소심한 성격의 외향적인 사람인 거고, 외향적인 행동을 하려고 노력함으로써 행복해질 수 있다.

내향적인 사람에게 외향적인 행동을 하라고 하는 것은 오히려 스트레스다. 내향적인 사람은 어쩔 수 없이 후자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좋아서 백번이고 후자를 택하는 사람이다. 이 사실부터 인정하는 것이 내향적인 사람을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이 점에서 한국경제의 기사는 내향적인 사람에 대한 이해가 모래알만큼도 없이 쓰였고, 내향성을 가진 한 사람으로서 나는 노트북 앞에서 조용히 마음속으로 분노했다.

내향적인 사람은 외향적인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은데 너무 소심해서 그러지 못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그런 파티들이 시시하고 안 쿨하다고 생각해서 안 할 뿐이다. 진짜 쿨한 거는 집에서 고양이랑 강아지 껴안고 영화 보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니 불쌍하게 여기지 말자.

내향적인 사람은 외향적인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은데 너무 소심해서 그러지 못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그런 파티들이 시시하고 안 쿨하다고 생각해서 안 할 뿐이다. 진짜 쿨한 거는 집에서 고양이랑 강아지 껴안고 영화 보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니 불쌍하게 여기지 말자.

 

편집 및 교정 / 커밋, 저년이

글 / 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