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아, 너.. 이 안에만 있어!

슬픔아, 너.. 이 안에만 있어!

#1. “남을 만족시키는 게 아닌, 나를 만족시키는 인생을 살자!” 어떤 치어리더의 좌우명이다. 대부분의 인간이 직업을 통해 얻고자 하는 ‘나의 만족’. 치어리더는 남의 만족을 위해 일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면 천만에다.

#2. 우느라 사진 한 장 못 찍었다. 지난 7월 27일, 경북 포항 오천읍에 위치한 신병교육대에서 해병대 입영식이 있었다. 35도의 땡볕 아래 연병장에서는 약 5천여 명이 작별 인사를 나눴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여러 장면이 떠올랐다. “가기는 싫지만 가야 한다면 제대로 하고 와야겠다”며 해병을 지원한 막내가 어느새 이렇게나 커버렸나 싶었다.

너무너무 슬픈데, 기쁘게 보내주래

국방의 의무 축하해(feat.병무청)

국방의 의무 축하해(feat.병무청)

2011년 도입된 ‘현역병입영문화제’는 입영 현장에서 문화예술 공연과 함께 가족`친구와 기념사진 촬영, 격려와 다짐의 편지쓰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해병대는 2012년 6월부터 부대 연병장에서 입대하는 입영문화제를 진행하고 있다. 슬프기만 했던 이제까지의 입영식 대신에 가족, 친구들에게는 입영자와 함께 추억을 만들고 기쁘게 헤어지자는 의미에서다. 현역병들에게는 병역 이행에 대한 자부심 형성과 부담감을 해소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하지만 입영문화제가 매번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7월 27일 입대한 1200기에 올해 두 번째 문화제가 열렸다. 즉 운 때가 맞아야 행사를 즐길 수 있다. 이날 포항은 낮 최고기온이 35도였기에 연병장이 아닌 대강당(김성은관)에서 입영식이 진행됐다. 쾌적한 환경을 준비한 해병대의 배려가 돋보였다. 입구에서 ‘해병대 미래는 이곳에서 시작된다’ 라고 쓰인 빨간 간판과 언덕 너머로 보이는 탱크들을 마주했을 때의 두려움도 잊혀져 갔다.

소심이 들어가고 기쁨이 올라와~

소심이 들어가고 기쁨이 올라와~

문화제는 2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먼저 해병대 밴드인 레드왜건이 첫 무대를 꾸몄다. 밴드 활동에 관심이 있는 군인은 복무 중에도 취미를 이어갈 수 있다고 한다. 김진호 교육단장의 환영사와 경북도립예술단 모듬북 공연, 부자`모자`커플 행사도 이어졌다.

기쁨이 올라오라고!!!!

계속되는 게임과 토크 진행 덕에 긴장한 우리 가족은 웃으면서 막내를 떠나 보낼 준비를 했다. 1부가 끝나고 10분간 쉬는 시간을 가졌다. 진행자는 “2부에서는 분위기를 밝게 바꿔보도록 하죠”라며 이어 외쳤다.

“삼성 라이온즈 치어리더의 무대입니다!”

군 입영식에서 치어리딩?

군 입영식에서 치어리딩?

EXID의 <아예>를 시작으로 함성과 함께 4명의 치어리더들의 공연이 펼쳐졌다. 건물 밖에 있던 몇몇 현역들과 입영자들이 들어와 강당 통로를 메웠다. 이전의 포항 지역 소개 무대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걸그룹 댄스에 가까웠던 안무로 구성된 세 곡의 무대를 마치자 진행자는 막간 게임을 시작했다.

“오늘 입대하는 친구들 중에 ‘치어들’과 같이 춤을 추고 싶은 친구 네 명 나오세요. 선착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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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입대를 몇 분 앞두고 춤을 출 속 좋은 아이들이 있으랴마는 곧 두 명의 입영자가 무대 위에 올랐다. 두 명에게는 각각 함께 춤을 출 치어리더 파트너 2명을 고를 선택권이 주어졌다. 입영자 A가 대각선 방향에 있던 치어리더 두 명을 선택했고, 입영자 B는 나머지 두 치어리더와 함께 팀이 구성됐다.

7.27. 해병대 입영문화제

7.27. 해병대 입영문화제

진행은 이랬다. 입영자가 무대 앞에서 춤을 추기 시작하자, (진행자의 말과 행동을 빌려 말하자면) 두 치어리더가 나와서 ‘어깨에 손을 얹었다가 몸을 훑어주는 식’이었다. 심지어 진행자는 치어리더들을 ‘치어’라고 불렀다. “네가 춤을 추고 있으면, ‘치어’들이 나올 거야”라고 말이다.

입영자 A에게는 ‘EXID 위아래’, 입영자 B에게는 비트 음악이 나왔고, 그들은 정말 그렇게 춤을 춘 뒤 악수와 허그까지 마치고 내려갔다. 이어 치어리더들이 세 곡의 공연을 마치고 나서야 문화제가 막을 내렸다.

감정은 완전히 뒤죽박죽

감정은 완전히 뒤죽박죽

무대를 보는 동안 불편했다. 화는 나는데, 곧 입소할 동생 생각에 한편으로는 슬프고. 그런 와중에 현장 분위기는 함성과 박수가 터지는! 며칠 전에 봤던 영화 인사이드 아웃1)7월 9일 개봉한 픽사 애니메이션. 머릿속에 존재하는 감정 컨트롤 본부 이야기다.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 다섯 감정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라일리의 감정을 결정한다. ‘기쁨’의 감정이 항상 답인 것은 아니다. ‘슬픔’의 감정도 함께 할 때에 감정의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줄거리.의 주인공들이 모조리 나와 감정 구슬들을 한꺼번에 작동시키는 느낌이었다.

치어리더의 등장에 왜 화가 났던 걸까? 곰곰이 생각했다. 군 입대하는 친구들 힘 좀 내라고 응원해준다는 게 뭐가 대수였을까? ‘이 정도 행사’를 걸고 넘어지기에는 이미 ‘이 정도 쯤이야’라는 생각이 만연한 사회가 아닌가? 이제 며칠 동안의 묵은 고민을 풀어 놓으려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여기서 가부장 사회의 시작을 봤다.

연병장은 운동 경기장?

먼저 군 입영식에서의 치어리더 공연의 역사와 치어리더라는 직업의 의미를 찾아봤다.

지난 2012년 6월 15일 부터 현재일(2015년 8월 3일) 까지 ‘입영문화제 치어리더’로 검색한 결과 71건의 기사가 보도됐다. 중복 기사를 제외하고 9건의 기사를 분석한 결과, 경남과 충북병무청에서는 NC다이노스가, 해군은 한화 이글스, 해병대는 삼성 라이온즈가 입영문화제에서 치어리딩을 담당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커리어넷 직업 정보에 따르면 치어리더는 ‘운동 경기장에서 흥겨운 음악이나 구호에 맞추어 춤을 추면서 관중의 흥과 응원을 유도하는 일을 담당’하는 직업이다. 치어리딩의 무대는 운동 경기장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연역적 추론의 결과... 군복무는 운동?

그렇다면 연역적 추론의 결과… 군복무는 운동?

군은 어떤 의도로 치어리더의 공연을 문화제로 기획한 것일까. 추측건대 군이야 말로 ‘연병장을 운동 경기장’으로 인식하는 것을 가장 싫어할 테다. 군 생활을 운동으로 생각해서 치어리더의 응원이 필요했던 게 아니라면, 혹시 여성의 응원이 남성의 군 입대에 힘을 불어 넣는다는 생각으로 기획했던 것인지 고민이 됐다.

만약 그렇다면 입영문화제 기획자의 생각은 이렇게 도출된 걸까. 군대는 남성의 상징이다. 최근 여성의 군입대가 증가하는 추세2)여군·여경 비율 역대 최대 수준…여성 고위공직자도 늘어, 5월15일 머니투데이 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5051507570192007&outlink=1이긴 하지만 여전히 군장교 가운데 여성의 비율은 6.6%다. 육군은 21개월, 해군 23개월, 공군 24개월, 공익근무요원 24개월(현재 기준) 동안 대부분의 남성이 군복무를 하는 대한민국이다. 군대는 전쟁을 준비한다는 측면에서 어느 정도의 폭력성과 공격성, 활동성을 띤다. 스포츠에서도 비슷한 맥락을 찾을 수 있다. ‘스포츠와 사회3)임수원 외, 2006에서는 “과거 스포츠는 남성다움의 상징인 폭력성, 공격성, 활동성이 표출된다”며 “이때 여성의 역할은 단지 남성이 스포츠 활동을 하는 것을 격려하고 응원하는 것뿐”이라고 했다. 아마도 입영문화제 기획자는 이를 군에 대입했던 것은 아닐까. ‘군대에서 여성은 조력의 역할을 한다’고 말이다. 이어 ‘스포츠와 사회’는 “이러한 현상은 우리 사회의 매우 보수적인 남성 문화를 대표하고 사회 내의 주류적 성 논리를 재현ㆍ강화하는 상징적인 영역이 되고 있다”고 한다. 군대는 더욱 그렇다.

사실 굉장히 흔하고도 뻔한 현상이다.

사실 굉장히 흔하고도 뻔한 현상이다.

지금까지 보도된 기사 가운데 군 입대의 치어리딩을 비판한 언론사는 없었다. 오히려 ‘화끈한 입영 축하 공연4)화끈한 입영 축하공연, 5월11일 뉴시스 http://www.newsis.com/pict_detail/view.html?pict_id=NISI20150511_0010928193식의 보도를 통해 입영문화제를 왜곡하기도 했다. 국방일보는 ’다양한 볼거리도 제공됐다‘라며 문화제 본행사 가운데 치어리더를 소개하기도 했다5)무적해병의 길, 즐겁고 당당하게, 7월28일 국방일보 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parent_no=3&bbs_id=BBSMSTR_000000000005&ntt_writ_date=20150729. 보도를 통해 사회의 입영문화제에서의 치어리딩의 인식을 비추어 봤을 때, 치어리더의 입영문화제 참가는 언론사들의 기사 제목대로 ‘화끈한’ ‘볼거리’로 “입대 하루 앞둔 장병들에 기운을 ‘팍팍’6)입대 하루 앞둔 장병들에 기운 ‘팍팍’, 5.15 경북도민일보 http://www.h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266277 넣어주는 역할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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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입영자들 응원 좀 한다는 게 뭐가 대수냐고?

물론 치어리더의 역할이 대중화되면서 종전의 경기장 무대를 넘어서게 된 것이라는 반박도 가능하다. 치어리더의 영역을 경기장으로만 한정 짓는 것은 어쩌면 꼰대스러운 주장일지도 모른다.

치어리딩은 누가 봐도 활기가 넘친다. 보는 이로 하여금 흥을 돋군다. 긍정적 에너지를 발산하는 치어리더는 이미 엔터테이너가 됐다. 1982년 프로야구의 등장으로 치어리더는 직업화되었고 97년 프로농구가 출범하면서 응원 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스포츠 공화국이라고 불리는 대한민국이 되면서 치어리더의 무대는 경기장의 한계를 넘어 확장되었고 심지어 몇몇의 얼굴과 이름은 유명 연예인만큼 알려져 있다. 때로 좋아하는 연예인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위로되듯, 곧 군에 입대하게 될 입영자들의 우울함이 치어리딩을 통해 조금이나마 위로될 수 있는 것도 (당시 분위기를 보아 추측건대) 사실일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입영문화제의 치어리딩은 모순을 지니고 있다. 만약 치어리더의 성비가 혼성이었다면 성 이데올로기 요소7)사회 전체의 이해관계로 확산되어 자리잡은 사회구조적 원리다. 기존의 성생활 체계를 강화하고 재생산, 유지하는 기제로 작용된다.( 현대사회와 여성, 금인숙 외, 1998)를 배제하고 순수한 응원으로만 바라볼 여지가 생길 것이다.  그러나 당시 치어리더는 여성으로만 구성되었다. 그리고 필자는 현장에서 관람석에 앉아 있었던 가족 가운데 한 명으로서 자극적 댄스로 구성된 무대 기획과 모욕적 진행에 불쾌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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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미래에..

굳이 여성 치어리더만의 무대를 꾸몄던 이유는 무엇일까. 치어리더의 특징으로 외형적 섹시함을 꼽을 수 있다. 이날, 입영자들과 현역병들을 포함한 그들의 가족과 친구들은 혼성 치어리더의 활기참이 아니라 여성 치어리더의 외형적 섹시함으로부터 응원을 받았다.

섹시함에서 우러나온 응원을 받는 순간 성에 대한 집단적 이해관계가 생긴다. 며칠 전에 읽은 칼럼에서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는 ‘먼지 차별(micro aggressive)’을 소개했다. ‘미세하지만 깊숙이 스며들어 대응하기 어렵고, 흩어져 있어도 불쾌하고 쌓이면 더 위협적인 미시적 공격’을 말한다. 지난 1200기 해병 입영문화제에서의 치어리딩은 군복무를 위로하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불쾌한 흩어진 먼지다. 위로는 위문의 부분이자 전체다. 흩어진 먼지가 결국 덩어리가 된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위협적인 공격과 가부장 문화, 남성우월주의, 나아가 남녀차별이 되어 나타난다. 나는 군복무가 의무인 남성을 위해 여성이 위문의 도구가 되어 응원을 하는 현상이 아무렇지 않게 용인되고 이해되어 온 이 사회에 분노한다.

비약이 결코 아니다. 남성의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여성이 도구가 되어온 역사가 지금의 가부장주의와 성차별의 튼튼한 기반이 되어왔다.

결코 비약이 아니다. 여성이 남성의 기쁨조 정도의 도구가 되어왔던 역사가 지금의 가부장주의와 성차별의 튼튼한 기반이 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진심으로 입영자들을 응원한다. 가장 젊고 아름다운 청춘들이 나라를 위해 부대에서 훈련해야만 하는 휴전이라는 현실이 절망스러울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군 위문 공연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은 비판받아야 한다. 군에서 설계된 위로 카르텔은 사회로 나와 회사와 같은 조직으로 확장된다. 위로가 극화되어 나타나는 조직 내 성 부조리 뉴스는 우리가 너무 많이 봐왔다. 먼지가 쌓이는 곳에서 가부장 문화가 시작되고 견고해지며 남녀평등은 허물어진다. 군은 입영문화제라는 그럴 듯한 이름표를 단 위로 카르텔을 이제는 그만 둬야 한다.

 

편집 및 교정 / 커밋

글 / 아니아니

   [ + ]

1. 7월 9일 개봉한 픽사 애니메이션. 머릿속에 존재하는 감정 컨트롤 본부 이야기다.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 다섯 감정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라일리의 감정을 결정한다. ‘기쁨’의 감정이 항상 답인 것은 아니다. ‘슬픔’의 감정도 함께 할 때에 감정의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줄거리.
2. 여군·여경 비율 역대 최대 수준…여성 고위공직자도 늘어, 5월15일 머니투데이 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5051507570192007&outlink=1
3. 임수원 외, 2006
4. 화끈한 입영 축하공연, 5월11일 뉴시스 http://www.newsis.com/pict_detail/view.html?pict_id=NISI20150511_0010928193
5. 무적해병의 길, 즐겁고 당당하게, 7월28일 국방일보 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parent_no=3&bbs_id=BBSMSTR_000000000005&ntt_writ_date=20150729
6. 입대 하루 앞둔 장병들에 기운 ‘팍팍’, 5.15 경북도민일보 http://www.h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266277
7. 사회 전체의 이해관계로 확산되어 자리잡은 사회구조적 원리다. 기존의 성생활 체계를 강화하고 재생산, 유지하는 기제로 작용된다.( 현대사회와 여성, 금인숙 외, 1998